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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이야기_조경란

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6. 2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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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에세이 / 이달의 에세이
[ 월간에세이 ] 2009년 6월호
조경란의 롤링페이퍼 / 조경란, 소설가
우산 이야기

 어느 목수를 인터뷰하기로 한 날 하필이면 비가 왔다. ‘하필이면’이라는 것은 비가 오는 날보다는 오지 않는 날을 더 좋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전국적으로 가뭄이 극심할 때라든가 농사에 큰 차질이 생길 만큼 비가 안 올 때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어렸을 적엔 변변한 우산이 없어서 비가 오는 날을 싫어했고 커서는 내 머리가 곱슬머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부터 그랬다. 머리를 감고 아무리 드라이를 해 모양을 내도 비가 오는 날이면 금세 머리카락이 부스스해져버린다. 집에 있는 날은 상관없지만 외출해야 하는 날, 비가 오면 이런 저런 이유로 우선 성가시군, 하는 마음부터 드는 것이다.

(......)

지난 해 무슨 축하를 받을 일이 있었다. 어느 날 둥글고 긴 포장에 싸인 우편물이 도착해 풀어보니 박쥐우산이 하나 들어 있었다.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김주영 선생의 우산에 관한 그 글을 읽고 어느 자리에서인가 선생님 저도 오랫동안 변변한 우산 하나 없이 유년을 지나왔어요, 라고 흘려 말했던 것이다. 그때 선생은 그럼 내 우산 중에 하나를 자네에게 주지, 하였다. 그 후로 거의 십 년이 흘렀다. 활짝 펼친 우산을 손에 들고, 그때 한동안 거실에 앉아 있었다. 엄마가 내 손에 들려준 우산처럼 크고 튼튼한 우산이었다. 자동차에 집어넣기는 불편해도 비를 막는 데는 그만한 것이 없을 것 같다.

올 여름 우기가 시작되기 전에 선생에게 받은 그 우산을 잘 찾아봐야겠다. 집 안 어딘가에 내 소유로 된 쓸 만한 우산이 하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이번 여름은 아무리 큰 비가 와도 끄떡없을 것 같은 느낌이다. 오랜만에 ‘우산’ 생각을 좀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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