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의 마지막 달력은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처럼 빛바래 있으며 마지막 날은 더더욱 우리의 상념을 깊게 만듭니다. 마지막 날은 다음 해로 들어가는 입구에 다름 아니지만 그 날은 누구나 시인이 되게 합니다. 아주 짧은 촌각(寸刻)에 지난날의 기억과 못 다한 일들을 아쉬워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어쩌면 한해 가운데 가장 긴 날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리의 중심가에서 맞은 마지막 날은 언제나 느끼지만 진풍경이었습니다. 라파예트 백화점 앞은 프랑스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온 관광객들, 이방인들로 북적댑니다.
아빠 어깨 위에 목말을 탄 어린이, 털모자와 두꺼운 장갑을 낀 소녀, 비디오카메라를 들이댄 파리지앵, 모두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 백화점 외벽의 쇼윈도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환상의 무대가 여남은 개 꾸며져 모든 어린이들의 걸음을 붙잡아 매기에 족했습니다. 천으로 만든 커다란 나무 등걸 위에서 곡예를 하는 수십 원숭이 가족들, 아기를 은유한 애벌레가 아래로 드리워지고 손톱만한 북을 치며 원을 도는 곰돌이들, 공중에 매달린 종이박스에서 재롱을 부리는 수십 쌍의 토끼들, 손엔 커다란 깃털을 들고 사다리를 타고 높이 오르는 쥐돌이들, 식탁에서 파티를 벌이는 새끼오리들, 아기천사와 문어들의 행진…. 고가품의 명품을 선전하는 광고판으로 도배를 한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어린이답게 만드는 순수의 바다였습니다. 그곳엔 아귀다툼이나 오만함, 귀족의식을 생산해낼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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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문화가 넘쳐나고 성숙한 삶의 철학이 몸 깊숙이 밴 파리의 중심가는 세계에서 가장 발달했다는 휘황찬란한 조명등의 조화 속에 군밤 굽는 이방인의 모습을 실루엣으로 잔상을 그리며 한 해의 마지막 밤이 깊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