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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박종국에세이/[포토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9. 12.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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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박 현(공주사범대학)

 

일본인과 이야기를 나눠본 적 있는가? 대학 재학시절(지금은 군입대 관계로 휴학하고 있지만), 일본인과 같은 수업을 들은 적도 있고, 일본 유학생들에게 학교를 안내하는 자원봉사도 나가본 적 있어서, 여러 대화를 나눠 볼 수 있었다. 일본인은 매우 상냥하다. 자격증은 없었던 나여서, 유학생들과 말문이 잘 통하지 않을 때도, 그들은 따이죠브데스(괜찮습니다)라 격려해주었다.

 

한국에 유학 오게 된 계기를 물어보니 가지가지였다.

 

‘배용준의 나라, 겨울 연가에 반해서 왔습니다!’

‘재일교포인데, 한국의 문화를 알고 싶어서 왔다.’

‘등록금이 싸서…’ ‘해외로 나가는 게 꿈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자유분방해 보이는 나라, 일본이지만, 최근 일본의 젊은 사람들에게는 ‘국가’라는 개념이 없는 듯 했다. 내가 행사 중, 애국가가 나올 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니,

 

‘한국 사람들은 왜 나라에 충성을 강요받죠?’

라 묻는 유학생이 있어 깜짝 놀랐다. 군대 이야기가 나오자 그들의 의문은 더했다.

 

‘일본은 자위대, 자기가 원해서 들어가는 건데, 한국 남자들은 왜 2년을 나라를 위해 보내야하죠?’  

순간 나는 이런 질문에 (일본어 실력이 안 되는 것도 있지만) 대답할 수가 없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군국주의가 중심이 되었던 일본 사회는 관료 중심의 수직 사회였다. 천황에게 온(은혜)을 태어나자마자 받고, 천황의 나라에 은혜를 갚기 위해(보은) 살아가는 것이 일본인의 삶의 자세였다. 국화(사쿠라)는 온/기리/기무 등의 일본인의 정신을 드러내는 상징이었고, 칼은 천황에 대한 일본인의 충의를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자 군국주의는 극에 달했다. ‘천황폐하의 인덕을 사해에 널리 퍼뜨리자’라는 구호를 모토로 전진한 일본군은, 천황에 대한 기리(의리)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신경 쓰지 않고 싸웠다. 가미가제(먼 옛날 고려/몽고 연합군을 몰아내었던 태풍의 이름을 딴 ‘자살특공대’)는 이 기리의 빛을 발했다. 일본군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온갖 잔혹한 참상을 저지르고 다녔다.

 

그러나 B-29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지고, 그들은 패전했다. 패전 이후, 승전국들이 모인 이사회에서는, 일본의 상징인 천황을 처벌하려 했다. 하지만, 천황이 없어진다는 것은 몇 백 년 동안 고정되었던, 온과 기리, 기무(의무)와 같은 일본인의 문화와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대혼란이 벌어질만한 일이었다. 결국 이사회는 천황을 신적인 권력의 위치에서, 일본의 상징으로 바꾸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일본에는 민주주의가 들어오게 되었다.

 

이후 일본은 군국주의의 기반인 애국심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한 예로, 일본교직원조합은 60년대부터 ‘기미가요(일본 국가)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도 폐지되었다. 군대도 없애버렸다. 타국을 침략하지 않고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부대만이 있을 뿐이다. 또한,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된, 그들이 지난날에 벌였던 전쟁 교육(일명 자학 사관)들을 통해, 전쟁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관념이 일본인들에게 박혔고, 일본인들에게는 점차 나라를 사랑한다는 말이 어색한 말로 들리게 되었다.

 

내가 안내했던 유학생들이, 우리나라의 문화에 어색함을 느꼈던 이유는 이런 것이었다. 일본인들은 앞서 말했듯이 누구나 상냥하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 사람이 정말 본심을 드러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흔히 말하는 ‘혼네’(진심)와 ‘다테마에’(겉치레)이다. 학교에서 제공되었던 식사의 맛을 물어보았을 때, 한 유학생이 웃는 얼굴로 ‘하이, 우마이네(네, 맛있네요)’라고 대답했는데, 내가 학교 담당자와 유학생 체크인을 하고 있을 때, 그 유학생이 ‘아노 덴뿌라 스코쿠 마즈캇타요!(그 튀김 정말 맛없었어!)’라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의 심리적 특징이라 불리는 혼네와 다테마에는 과거, 계급 제도 속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천황-영주-사무라이-상인-농민이라는 계급 속에서, 상위 계급에게는 충성을 보이고, 하위 계급에게는 본심을 드러내는 것이 혼네와 다테마에로 불리는 이중 잣대로 발전했다는 이야기이다.

 

혼네와 다테마에는 이후 일본인들의 사고 구조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일본 여행을 갔다 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인, ‘사람들은 엄청 친절한데, 왠지 마음이 담겨있는 것 같지 않아요.’는 혼네/다테마에가 가장 잘 반영된 이야기이다. 일본인들은 친절하나 자신의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으며, 본심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심리 구조는, 히키코모리(방구석폐인)나 니트와 같은 일본 사회의 현대 문제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내가 보았던 유학생은 혼네와 다테마에를 그대로 드러낸 사람이었던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온/기리/기무와 혼네/다테마에는 일본인들의 문화를 파악하고 그들의 심리 구조를 아는데 큰 도움을 준다. 유학생들을 처음 만나서 이러한 일을 겪었을 때는 당황했지만, [국화와 칼]을 읽다 보니 일본인들의 심리 구조를 알 수 있게 되었고. 어떤 연유로 그들이 이런 말을 한 건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미흡한 번역 투의 책이라(일본어식 어투가 조금 많았다) 읽기에는 조금 난해했지만, 내 경험의 의문점을 해결하고, 다른 나라의 문화를 잘 알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어 기쁘다.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하재기 옮김, 서원,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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