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집권세력의 의도에 따라 검찰권을 남용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상실했던 것을 반성하고 ‘국민의 검찰’이 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무리한 수사와 기소는 피의자들의 명예훼손과 인권침해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공정한 검찰권 행사의 중요성을 다시 새겨야 한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이 1심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직후 참여연대가 내놓은 논평의 일부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검찰은 참여연대의 지적대로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정권교체 뒤 ‘공기업 비리를 척결한다’며 칼날을 벼렸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에 대한 강경 진압에 가세했다. 또한 공영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정연주 전 KBS사장과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MBC TV 'PD수첩‘ 제작진을 기소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서거로 이어진 박연차 게이트 수사와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한 ’먼지 털기‘ 및 ’가지 치기‘ 수사 등은 전형적인 정치 검찰의 행태로 지적받았다.
▲ 법원이 지난 8월 정연주 전 KBS사장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리자, 언론시민단체는 일제히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맹성토하고 나선 바 있다. © CBS노컷뉴스 (자료사진) | | 검찰은 특히 정치적 성격이 짙은 사안에 대해서는 ‘묻지마 기소’로 일관했다. 수사 배경이나 과정, 법 적용의 문제점을 따지기 전에 우선 기소하고 보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처럼 수사 과정에서 ‘언론 플레이’로 혐의내용을 부풀려 수사 대상자를 파렴치범으로 몰아간다. 일단 검찰의 수사대상이 되면 제대로 항변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따라서 검찰의 ‘먼지 털기’ 수사와 ‘묻지마 기소’는 사람들에게 ‘위축효과(chilling effect)'로 작용한다.
검찰의 묻지마 기소는 필연적으로 법원의 무죄 판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 성격이 짙은 사건의 경우 검찰이 완패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무죄판결을 비롯해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김현미 전 민주당 의원, 김평수 전 교직원공제회 이사장, 재미 사업가 조풍언씨 등이 전체 또는 주요 혐의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래서 정치 검찰은 ‘무죄 제조기’란 좋지 않은 별명을 얻었다.
특히 법원은 정 전 사장의 기소 내용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10가지 이유를 들어 검찰의 기소 논리를 배격했다. 정 전 사장이 법원의 조정 권고를 받아들여 세금 소송을 끝냈는데도 검찰이 기소한 것은 당초부터 무리였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가 KBS를 장악하기 위해 온갖 무리수를 두어가며 정 전 사장을 쫓아내는 데 검찰이 앞장섰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권의 의중에 따른 ‘묻지마 기소’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미네르바’ 사건을 꼽을 수 있다. 검찰은 지난 1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모씨’를 허위사실 유포혐의로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그로부터 3개월여 지난 4월20일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박씨는 검찰 수사에서 선고 때까지 온갖 고난을 겪어야 했다. 물론 ‘위축효과’가 작동해 인터넷에선 정부에 비판적인 글이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검찰은 ‘묻지마 기소’를 포기하지 않는다. 검찰은 정권의 의중에 따라 수사팀을 바꾸어 가며 재수사한 뒤 'PD 수첩‘ 제작진을 기소했다. 이에 대해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문제삼아 언론인을 기소한 것은 법리적으로 무리수라는 지적이 많았다. 검찰의 기소는 헌법에 보장된 언론자유를 위축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더구나 피소된 언론인들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검찰 기소에 대응해야 한다.
▲ MBC PD수첩 광우병 보도 사건을 수사해온 정병두 1차장 검사. ©CBS노컷뉴스 | | 검찰은 또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을 벌인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 김성균 대표와 미디어행동단 팀장 석모씨를 공갈 및 강요 혐의로 기소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법원 판결을 무시한 검찰의 만용”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해 언소주의 불매운동에 대해 “광고주 불매운동은 합법”이라고 판결했다. 검찰은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소비자운동을 범죄화한 데다 사법부가 인정한 소비자운동마저 기소한 것이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없었던 무리한 기소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검찰의 ‘묻지마 기소’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린 사건의 수사 검사들이 줄줄이 승진하거나 영전하기 때문이다. 정 전 사장 수사를 지휘했던 검사는 검찰의 핵심중 하나인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영전했다. 미네르바 사건을 지휘했던 검사는 승진한 뒤 청주지방 검찰청장이 됐다. 참여연대는 “검찰권을 남용한 이들이 승진하거나 핵심지위를 차지할 뿐,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검찰이 ‘정치 시비’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도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 검사들이 수사에 대한 상사의 부당한 지시나 간섭을 거부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검찰청 법에 명시돼 있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의 제기’ 조항을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게 수정하는 방안도 그 중의 하나이다. 검찰은 권력자가 아닌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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