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태영 선생 의거비에 쓰인 '아드흐'를 아십니까? | ||||||||||||||||||
[문화기행] 곽태영 선생 의거비와 박정희 사단장 관사 기념관을 돌아보다 | ||||||||||||||||||
이날 함께 했던 효창원을 사랑하는 사람들 김용삼(61) 회장은 “곽 선생이 안두희를 응징한 것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김구 선생의 비원을 암살하고도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춤추듯 행동하던 자를 응징한 사건이며, 해방 후 최초로 민족반역자를 응징함으로써 교훈을 남긴 사건이다.”라고 강조한다. 당시 안두희를 응징했던 상황을 직접 곽 선생에게 ![]() “1965년 12월 중순, 선생은 안두희 실물 사진을 품은 채 혼자 행상차림을 하고 강원도 양구로 향했다. 안두희가 운영하는 군납공장을 살필 수 있는 민가에 장사하러 온 사람이라고 하여 하숙을 얻었다. 실제 장사꾼처럼 보이려고 민가에 물건을 팔면서, 안두희 공장에도 들러 노동자들에게 양말 장갑 등을 살 것을 권하는 한편, 안두희 군납공장과 사는 집의 구조를 살폈다. 그렇게 여러 날 동태를 살피던 중 운명의 1965년 12월 22일 오전, 하숙집에서 군납공장을 내려다보니 안두희가 타고 온 것이 분명한 지프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온몸이 떨렸다. 동네 청년처럼 보이도록 흰 와이셔츠 차림을 하고, 주머니에 칼과 자백 받을 필기도구를 넣고 두부 공장으로 향했다. 문 앞마당을 들어서서 우물가에 세수하러 나와 있던 안두희에게 ‘김구 선생님을 살해한 민족의 원수야!’라면서 격투가 벌어졌다. 엎치락뒤치락하던 중 선생은 그의 배에 올라타고 돌을 집어 얼굴을 내려치고 칼로 찔렀다. 마당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공장 직공들이 몰려 와 나를 사정없이 때리기에 너희 사장이 누구인지 아느냐, 김구 선생을 살해한 민족의 원수다. 나를 때리지 말고 경찰에 신고하라고 하였다.”
이때는 선생의 나이 29살 백범 선생 묘소에서 암살자 응징을 약속한 지 10년째 되는 마지막 해였다고 한다. 이 사건은 전국에서 60만 명이 넘는 국민이 곽태영 애국 청년을 석방하라는 서명에 참여하는 등 폭발적인 반향으로 선생의 아버지는 아들이 장한 일을 했다는 1만여 통의 격려편지를 받아야 할 정도였다. 또한, 아버지는 아들이 자랑스럽다며 마을 사람들에게 술을 사는 등 잔치를 벌인다. 이러한 국민의 열화와 같은 노력으로 선생은 사건 8달 만인 1966년 7월 30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선고를 받고 석방되었다.
이렇게 민족의 혼을 보여준 곽태영 선생을 추모해 남궁경(74살, 원주 거주)이란 분이 의거비를 세웠다. 하지만, 그 의거비를 세웠을 때는 전두환 군사정권의 살벌한 분위기를 용기로 감내해야 했다. 곽태영 선생 양구 의거 비석에는 음각으로 “아드흐”라는 글씨가 새겨 있다. 무슨 뜻일까? 알아본즉 의거비를 세운 남궁경 선생이 안두희가 천추에 씻지 못할 대역죄를 저지른 사람으로 이름을 제대로 써줄 수 없다며, 일부러 받침을 뺐다고 한다. 그 뒤 어떤 이가 안두희 이름을 잘못 썼다며 받침을 새겨서 지금은 서툰 글씨의 안두희로 되어 있다. 또 비석 옆면에는 “33-33-3. 3-21”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김구 선생이 돌아가신지 33년(1982) 되는 해에 글자 33자로 3월 3일 21시에 비석을 세웠다는 뜻이다. 반대편 옆에는 또 다른 암호 같은 글자 “ㅁㅇㅇㅂ”가 새겨 있는데 아는 남궁경 선생의 이름 아래 받침 “ㅁ ㅇ ㅇ”과 세울 립(立) 자의 받침 “ㅂ"을 새긴 것이다.
여기 곽태영 선생 양구 의거비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날 모임에 함께 한 이들로 김영진(63) 전 양구주민연대 대표를 중심으로 김창현(74, 농업) 양구주민연대 회원, 조인선(37) 공무원노조 양구비상대책위원장, 한명희(41) 양구여성농업인센터 대표가 그들이다. 그들을 중심으로 해마다 8월 15일 20여 명이 의거비에 모여 김구, 곽태영 선생을 기리며 민족에 대해 생각을 한다. 여기에는 양구주민연대와 양구공무원노조를 중심으로 양구농민회, 전교조 양구지회가 힘을 보태고 있다고 전한다. 이날 김영진, 김창현 씨 등은 양구군에서 예산을 들여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제5사단장 시절 관사로 쓰던 집을 관광자원화한 것을 두고 개탄하기도 했다. 또 이 자리엔 의거비를 세울 때 땅을 내주었던 홍주범(96) 선생이 아직 정정한 모습으로 자리를 함께해 참석한 이들의 마음을 다잡게 해주었다. 한편, 임사연 운영위원들은 전날 김좌훈 운영위원(인제신문 대표)의 팬션에서 하룻밤을 묶으며, 모꼬지를 했다. 이들은 내년 봄쯤 임시정부가 걸어간 길을 따라 답사하는 일정을 계획해 놓고 있다. 민족, 겨레 생각은 우리가 늘 잊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화두이다. 특히 근대사에 겨레를 위해 온몸을 불살랐던 백범 선생, 또 백범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를 찾아 응징했던 곽태영 선생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
기사입력: 2009/10/20 [18:54] 최종편집: ⓒ 대자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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