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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서 용 나는 세상 만드는 '교육경쟁'

한국작가회의/오마이뉴스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0. 2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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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서 용 나는 세상 만드는 '교육경쟁'
[주장] 교육 양극화의 악순환을 어떻게 볼 것인가
08.10.22 09:42 ㅣ최종 업데이트 08.10.22 09:42 박종국 (jongkuk600)

그저께 고등학교 총동창회 체육대회에 참석했다. 덕분에 반가운 얼굴들을 많이 만났다. 다들 사는 게 힘겹다는 너스레로 인사치레를 했다. 자주 보이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더러 내리막을 치닫는 경기 탓에 생계마저 저당 잡히고, 어깻죽지가 꺾여버렸다는 암울한 이야기도 풍문으로 전해왔다. 몇십 년 만에 들이닥친 가을 가뭄처럼 삶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동창이면 지천명을 코앞에 두었을 나이다. 그러니 아들딸 교육 문제가 화두였다. 누군 멀리 유학을 보냈고, 또 누구는 이 땅의 대부분 부모가 생각조차 못하는 쟁쟁한 학교에 막내까지 보냈단다. 이도 저도 아닌 나는 힘이 쭉 빠졌다. 그는, 자식들을 위하는 일이라면 '기러기 아빠'도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형편이 되는데 미적거리며 눈치 볼 게 뭐 있느냐는 어투다.

 

자식 위하는 일이라면 '기러기 아빠'도 문제 아니다

 

대단했다, 내 주변에도 기러기 아빠가 있다는 사실이…. 난 아직 단 한 번도 내 아이에게 유학을 보낸다거나 소위 '특목고'에 보내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시골 중학교로 데리고 나와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두고 크게 후회할 것이라고 뜯어말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단호했다. 적어도 내 아이에게만은 입시경쟁의 나락에 빠트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 나의 결심은 분명한 현실이 되었다. 시골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큰 아이는 올해 바랐던 사범대에 거뜬히 합격했다. 그렇게 시시콜콜하게 따져가며 공부하지 않아도 훌륭한 성적으로 제 앞가림을 했다. 그런 까닭에 나 역시 7년째 시골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더불어 지내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교육현실은 어떤가. '교육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학교, 교사, 학생을 성적으로 한줄 세우기가 버젓이 횡행하고 있다!', '고질적인 입시전쟁을 부추기고, 사교육비 폭탄이 떨어지고 있다!'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넘쳐난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가 치러진 지난 8일 오전 서울 미동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가림막을 친 가운데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
ⓒ 권우성
일제고사

일제고사는 '여론조사'... 학부모들, 점수보다 석차에 더 관심

 

며칠 전 마침내 교육 시장화 기제이면서 복고풍인 시험만능주의로 치닫는 '전국일제고사'가 강행되었다.

 

일제고사는 일종의 '여론조사'다. 여론조사가 하나의 이슈에 대해서 소수의 표집만으로 여론을 짐작할 수 있듯이 일제고사는 교육과정의 목표 달성이나 운영의 문제점을 점검하고자 하는 취지라면 당연히 실시해야 하고, 그것은 이제까지와 같은 표집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이번에 실시한 전국일제고사는 표집 학교는 물론, 비표집 학교까지 시도교육청 주관으로 실시함으로써, 이는 결국 교육양극화로 치닫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교사와 학부모의 대응은 변죽만 울릴 뿐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아직도 학부모들은 점수보다 석차에 더 관심이 많은 까닭에 전국일제고사는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 게 무색할 정도로 회자되고 있는 '국제중학교 이야기'다. 정부의 논리에 따르면 국제중학교는 장기 해외 체류 학생들이 국내 교육에 적응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한다. 더구나 조기유학 수요를 줄이기 위해서, 기러기 아빠들의 고적감을 '치유'하기 위해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국제중학교는 어떤 학교, 누구를 위한 학교인가? 뻔하다. 연간 1천만원을 상회하는 사교육비를 거뜬하게 감당할 수 있는 강남 사람(그들은 우리나라의 채 1%도 안 되는 0.3%의 부자)들을 위한 귀족학교, 특권학교, 왕족학교일 따름이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

 

  
초ㆍ중ㆍ고생의 학력 수준을 평가하기 위한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치러지는 14일 낮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무한경쟁교육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청소년들이 시험지와 교과서, 문제집을 이용해 모자이크 작품을 만들고 있다.
ⓒ 유성호
일제고사

대부분 외국의 경우 굳이 별도의 학교를 만들지 않고, 일반학교 방과 후에 그 학생들을 위한 특별교육과정을 편성해서 수요를 충족한다고 한다. 우리의 교육환경은 너무 호들갑스럽다. 물론 교육경쟁이 전면화되고, 상식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는 교육논리가 팽배한 현실에서 돈 있는 사람이야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학교는 돈 잔치를 하는 곳이 아니다. 가진 자의 논리로만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한다면 쓰나미처럼 들이닥치는 반론의 물꼬를 막지 못할 것이다. 그간 우리 교육이 이른바 1%의 전유물이 아니었음은 명백하다. 부자들만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부자들이 조기유학을 보내든, 족집게학원을 보내든, 국제중학교에 보내든지 관심 갖지 않는다.

 

문제는 일부 부자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경쟁의 논리 때문에 일반 서민들의 자녀들이 학교문제로 고통 받고, 성적으로 핍박 받고, 또래집단에서 소외를 당하는 데 있다. 끼리끼리란 말이 있다.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동류의식을 갖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주에서 소리 나지 않게 행한다면 그 일을 두고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고 주접을 떨 까닭이 없다. 지금의 교육현실은 경쟁만 하면 누구나 명문대학에 들어갈 수 없는 사다리다.

 

아무리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고 강변해본들 지금의 교육 현실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누구나 공교육의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지만, 단지 돈이 학벌을 따는 사교육 천지가 된 교육현실에서는 이마저도 소용없는 넋두리다. 참담한 교육현실이 더 이상 불거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 또한 액막이 타령일 뿐이다.  

 

단지 돈이 학벌을 따는 사교육 천지가 된 교육 현실

 

일개 초등학교 교사로서 너무 큰 바람을 갖는 것인가 싶지만, 공교육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대다수 노동자, 서민들의 자녀들도 학교에서 질 높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당장에 어렵고, 못 사는 집의 아이들도 나의 소중한 제자라는 생각에 이르면 교사라는 직분이 아득해진다. 정말 우리 사회의 평등교육의 그날은 요원한 것인가.

 

그날, 몇몇 친구들과 20여 년 전의 교정의 추억을 떠올리며 씁쓰레한 나머지 깡소주 나발을 불었다. 다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날이 저물도록. 안타까운 자녀 교육이야기 해도 해도 결국 맨땅에 헤딩하는 꼬락서니였지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미디어 불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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