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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다시 한 번 영화 ‘허브’를 눈여겨보시라

한국작가회의/한빛소리원고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1. 2.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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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다시 한 번 영화 ‘허브’를 눈여겨보시라

 

그 동안 아이들과 함께 장애인의 일상을 다룬 영화를 여러 편 보았다. 청각 장애인을 그린 ‘홀랜드 오퍼스’, 다운증후군을 그린 ‘제8요일’, 정신지체 장애인을 그린 ‘레인맨’, ‘포레스트 검프’ 등은 여러 유형의 장애인을 조명하면서 그들의 삶을 현실성 있게 그려낸 영화다. 또한 ‘말아톤’과 ‘맨발의 기봉이’처럼 본인과 주위의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인간승리를 경험한다는 영화도 있다. 손 펜이 중등도 정신지체 장애인을 연기한 ‘아이 엠 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2007년 개봉된 영화 ‘허브’는 장애인에 대한 베풂이나 동정심보다 정신지체 3급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세상에 홀로서기를 하는 모습을 그린 일상 이야기다. 주인공의 자립의 필요성을 구축하고, 장애인의 독립과정을 일깨운 영화로 어느 장애인 영화보다 강한 느낌을 준다. 특히 상은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슬프면서도 밝은 톤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므로 ‘허브’는 기존의 인간승리의 패러다임에서 탈피하여 정신지체 장애인의 사실적인 삶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 일어서려는 장애인의 노력이 돋보인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영화들이 인간승리를 다루면서도 ‘그 현상’을 끝난 것과 달리 ‘허브’는 스스로 일어선 주인공의 ‘밝은 미래’를 암시하며, 장애인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도록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 일어서는’ 장애인 캐릭터의 모습은 실제로 장애인이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설 수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

 

영화 ‘허브’, 정신지체 3급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세상에 홀로서기를 하는 모습을 그린 일상 이야기

 

때문에 장애는 더 이상 ‘보호 받아야할 대상’도, ‘동정 받아야할 대상’도 아니라는 인식의 틀을 새롭게 하고 있다. 장애인의 삶을 비하하거나 왜곡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이 어떤 분야에 가장 불편해 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별로 따뜻한 더듬이를 갖고 있지 않다. 게다가 장애인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의 차가운 눈총이 많다.

 

21세기는 IQ(지능지수, Intelligence Quotient)나 EQ(감성지수, Emotional Quotient)의 시대가 아닌 NQ(공존지수, Network Quotient)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 성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공존지수(NQ)뿐만 아니라 사회성지수(SQ, Social intelligence Quotient)와 창조성지수(CQ, Creative Intelligence Quotient)가 필요하다.

 

공존지수는 말 그대로 더불어 사는 이들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이어가는가 하는 능력을 재는 지수이다. 올바른 공존지수는 남에게 양보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기쁨을 실천하면서 형성된 '인간네트워크'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잘 살기위해 갖추어야 할 공존능력이다.

 

올바른 공존지수에 터한 아름다운 동행은 함부로 욕심 부리지 않는다. 더디게, 팍팍하게 살아도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함께 간다. 다양한 삶을 인정하며, 공존하며, 다양성을 존중한다. 그렇게 될 때만이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고 이 땅 위에서 너와 내가 아름다운 동행되어 함께 갈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동행은 모두에게 ‘윈-윈 게임이 되는 세상’이다.

 

아름다운 동행은 모두에게 ‘윈-윈 게임이 되는 세상’

장애는 더 이상 ‘보호 받아야할 대상’도, ‘동정 받아야할 대상’도 아니다

 

단지 신체의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거나 불편부당한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떤가. 모두가 아름다운 동행이 되어 윈-윈 게임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성숙되어 있지 못하다. 공공시설과 교통시설은 물론, 각종의 문화·교육·체육시설이 이 땅의 수많은 장애인들이 쉽사리 다가설 수 있는 믿음자리가 아니다.

 

그래서 장애와 예술은 사치다. 그럼에도 더 이상 장애인이 푸대접을 받지 않으려면 냉철한 자활의지로 맞서야한다. 그 중심은 재활 패러다임보다 자립 패러다임 의식으로 곧추서야한다. 그래야 장애와 예술, 그 간극과 소실점이 분명해진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어야한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 모두 인간으로서 존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편애하고 가름 짓거나 우열을 가리는 사람들이 진짜 장애인이다.

 

그대여! 정말 자투리 시간이 나거든 한 번 더 영화 ‘허브’를 눈여겨보시라.

 

/<한빛소리> 2009년 11월호 게재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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