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새날 새뜻 곱게 펴세요

한국작가회의/한빛소리원고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2. 27. 11:14

본문

728x90

새날 새 뜻 곱게 펴세요

사랑과 배려는 선택이 아니라 공존의 원칙이다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이른 아침, 길모퉁이 버스정류장에 엳아홉 살 정도의 사내아이가 칠순의 노인을 부축하고 서 있었다. 노인은 맹인이었다. 하여 몸놀림도 온전치 못했다. 그들의 옷차림이 꾀죄죄한 걸로 봐서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밤새 한데서 얼마나 떨었는지 얼굴이 귀볼 만큼이나 빨갰다. 사내아이는 연방 손을 호호 불어댔다. 새까만 손등은 다 부르텄다. 그러나 사내아이의 태도는 사뭇 당찼다.

 

대체 이들을 어떡하면 좋을까. 하지만 빠듯한 출근을 탓하며 더 이상 눈길을 주지 못하고 버스에 올랐다. 평소 노선버스로 출퇴근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아침저녁으로 버스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거의 눈인사를 하고 지내는 터다. 시골에 살면 자연 어느 집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 훤해진다, 그만큼 무시로 부대끼며 산다. 근데 사내아이와 노인네는 낯이 설었다. 버스는 희붐한 안개를 헤치며 냅다 달린다. 그렇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잠깐만이라도 “무슨 사정이 있느냐?”는 말 붙이를 해보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왜 본 체 만 체 했을까. 그들은 아직도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거리에 당그랗게 남아 돌돌 떨고 있을 것인데….

 

학교에 도착하니 방학 중 특기적성교실 꼬맹이들이 춥다며 발을 동동 굴리고 있다. 연방 언 손을 호호 녹인다. 조금 전에 만났던 사내아이와 또래다. 공부방에는 이미 온풍기가 돌고 있어 사위가 후텁지근했다. 근데도 아이들은 연방 추워서 견디기 힘들단다. 옷을 따습게 입고 장갑모자까지 단장했으면서도. 요즘 아이들, 사는 형편이 나아져 영양도 좋아졌고 몸집도 커졌다. 그렇지만 참을성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런 까닭에 나보다 남을 먼저 헤아려 이해하는 마음도 부족하다. 이는 어른들도 마찬가지리라. 당장에 오늘 아침 나 자신부터 강추위에 몸을 떨고 있는 이들을 보고도 모른 채 하지 않았던가.

 

다들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해

 

세상에는 아름다운 보석이 많다.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은 사랑하는 이들이 나누는 웃음이다. 웃음은 참으로 신비한 힘을 지녔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 내 모든 것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사람들의 웃음을 마음에 담으면 어느새 평안해진다. 불안해질 때마다 나를 헤아려 주는 믿음직한 웃음을 만나면 든든한 힘을 얻는다. 밤새 차가운 칼바람을 맞으며 마음이 허했던 그들도 따뜻한 웃음을 만났다면 얼마나 마음이 푸근했을까.

 

누구나 나를 바라보며, 나의 못난 모습까지도 웃음으로 안아 주는 이들이 있어 세상은 행복하게 느껴진다. 또한 그들에게 함박웃음으로 나 역시 힘이 되고 싶어진다. 배려는 선택이 아니다. 공존의 원칙이다.

 

살면서 우리가 서로에게 해야 할 말은 무엇일까. ‘힘을 내세요.’라는 말이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힘이 난다. 오늘 당장 이 말을 꼭 해 보도록 하자. 그러면 당신도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또 다른 말은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말이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걱정이 사라진다. 오늘 이 말을 꼭 들려주자. 그러면 당신도 걱정이 줄어들 것이다.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용기를 잃지 마세요.’라는 말이다. 누구나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용기가 생겨난다. 오늘 이 말을 꼭 속삭여 보자. 그러면 당신도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조건 없이 용서합니다.’라는 말이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감격하게 된다. 오늘 이 말을 꼭 들려주자. 그러면 당신도 용서를 받게 될 것이다.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이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따사롭고 푸근하게 느껴진다. 오늘 이 말을 꼭 또렷하게 해 보자. 그러면 당신도 분명 감사를 받게 될 것이다.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아름다워요’라는 말이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세상이 따사롭고 환해진다. 오늘 이 말을 꼭 소곤거리보자. 그러면 당신도 아름다워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사랑해요’라는 말이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사랑이 깊어진다. 오늘 이 말을 꼭 해보자. 그러면 당신도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연말연시 어렵고 힘들게 사는 이웃을 돕기 위한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 모든 바탕은 신실한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랑만이 전부다. 한데도 지금 세상은 오직 제 살붙이에게만 더 편하고, 더 많은 것을 주기 위해 고슴도치 사랑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 씁쓸해진다. 그들에게는 돈 없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보이지 않는다.

 

사랑과 배려는 선택이 아니라 공존의 원칙

 

종교인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절실한 때다. 그렇지만 요즘 교회는 덩치 키우기에 바쁘다. 건물이 웅대해야 신자가 많아진다. 성장제일주의에 편승한 결과다. 때문에 그만큼 교회는 일반인들에게는 배타적이다. 예수님처럼 살겠다는 치열함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절도 마찬가지다. 제2의 중건시대를 맞아 산사마다 불사에 여념이 없다. 신축 법당이 웅장하다. 그래야 신도들이 줄을 잇는다. 때문에 요즘은 가난한 절은 거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 또한 부처님처럼 맑고 향기롭게 살겠다는 돈독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사는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꽃밭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제 것만 챙겨드는 천박한 속물들보다는 ‘나보다는 남을 먼저 헤아려 생각할 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길가 자그마한 풀꽃들을 보라. 제 혼자서는 작지만 한데 어우러져서 더욱 큰 꽃이 된다. 남을 사랑하는 울림은 그저 일어나지 않는다. 나부터 먼저다. 오후 햇살은 제법 나긋해졌지만 출근길에 만났던 그들의 모습이 아직도 역력하다. 퇴근 무렵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바람이 닿는다면 허기진 배를 따습게 데우는 고깃국이라도 한 그릇 권내고 싶다. 더불어 다시 맞을 한해는 정말이지 좋은 뜻 곱게 펴며 살아야겠다.

 

/<한빛소리> 2010년 1월호(통권 제163권) 원고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