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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묘소에 바친 친일인명사전, 세상에 소금 되다

세상사는얘기/삶부추기는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1. 1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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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묘소에 바친 친일인명사전, 세상에 소금 되다
[현장]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 열려, "역사의 심판은 준엄"
 
김영조

▲ 서울 효창원 백범 묘소 앞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를 하는 모습     © 김영조

친일인명사전이 드디어 나왔다. 그렇게 반발도 심했고, 우익언론의 방해와 심지어 친일파로 거론된 인사들의 후손들이 법원에 “게재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온갖 우여곡절 속에 사전은 드디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11월 8일 늦은 2시 30분부터 효창공원 백범 묘소 앞에서 민족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 주최로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특히 행사장으로 예정됐던 숙명아트센터가 사전발간 보고대회 대관취소를 통보해오면서 예견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트센터의 외부 위탁운영사인 (주)스펠네트웍스 측은 11월 6일 자로 공문을 보내 “행사가 아닌 단체집회로 변질할 우려가 있다. 행사장 아래 1. 2층에 박물관이 위치해 문화재 손실과 관람객 안전을 위해 대관을 취소한다.”라고 통보했다. 

(주)스펠네트웍스 측이 그렇게 밝히긴 했지만 사실은 당일 12시 박정희바로알리기국민모임 외 9개 단체가 행사장인 숙명여대 제2창학캠퍼스(숙명아트센터) 정문 앞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포함하는 친일인명사전 발간 반대 및 민족문제연구소 해체 촉구기자회견”을 연다고 발표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연구소 측은 밝혔다. 이에 연구소 측은 강행 의지를 수차례 밝히면서 양측 간에 부딪힐 가능성도 있었다.       
 

▲ 원래의 행사장 숙명아트센터 앞에서는 경찰의 보호 속에 우익단체의 기자회견이 진행되었고, 행사장은 봉쇄되었다. 동원된 경찰 중에는 부산기동대원도 있다.     ©김영조
 
 
▲ 원래의 행사장 숙명아트센터 앞에서 펼침막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는 회원들 이날 행사장에는 수많은 기자가 몰려 사전에 쏠린 세상의 눈을 느낄수 있다.     ©김영조

하지만, 12시가 되어도 우익단체 회원들은 소수에 불과했고 그들의 기자회견은 경찰의 보호막 속에서 서둘러 마친 뒤 역시 경찰의 보호 속에 황급히 자리를 떴다.  

이후 연구소 측은 1시부터 펼침막을 든 채 서서 무언의 항의를 하다가 2시가 되자 행사장을 포기하고 가까이 있는 효창공원 안의 백범 묘소로 자리를 옮겨 행사를 시작했다.

행사 시작에서 김병상 이사장은 “한민족을 유린한 일제의 침략자들과 손을 잡은 자들로 인해 민족의 피가 더럽혀졌다. 이제 친일사전 발간으로 상처와 아픔을 걷어내고 이 땅을 순수한 혈통으로 가꿔야 한다.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하고 민족정신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이 책이 나오기까지 애쓴 모든 분들의 노고에 감사한다.”라고 인사했다.

이어서 편찬위원을 대표한 친일인명사전 윤경로 편찬위원장은 “반민특위 해체 후 60여 년 만에 이룩한 쾌거이다. 사전에 수록된 4,389명은 역사적, 실증적 검증을 거쳐 친일행적이 명백한 사람들이다. 나라의 큰일이 있을 때마다 외세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우리 자신을 성찰해볼 수 있는 성숙한 내부고백이 필요하다. 일제치하에서 출세, 부귀영화를 누렸을지 모르지만 역사의 심판은 준엄하다는 것을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 보고대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김병상 이사장(왼쪽), 윤경로 편찬위원장(가운데), 이봉원 운영위원장     © 김영조

▲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친일인명사전≫     © 김영조

▲ ≪친일인명사전≫을 국민에게 보고하고, 백범 묘소에 바치고 있다. (왼쪽부터 연구소 임헌영 소장, 윤경로 편찬위원장, 김병상 이사장)     © 김영조
   
이어서 막 찍어 나와 풀도 마르지 않은 친일인명사전을 김병상 이사장, 윤경로 편찬위원장, 임헌영 연구소장 3사람이 참석자 곧 국민에게 보이고, 백범 묘소에 바치는 의식이 있었다. 이때 참석자들은 모두 환호를 지르며, 일부는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이 사전을 백범 묘소에 바친 뒤 맨 먼저 친일인명사전 펴냄의 계기를 만든 임종국 선생의 누이동생 임경화 여사와 현 임종국기념사업회 장병화 회장(광복군 장이호 선생의 아들)에게 드리는 의식도 있었다. 친일청산의 외로운 길을 걸어간 임종국 선생을 뒷바라지한 임경화 여사는 “오라버니도 지하에서 기뻐하실 겁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라고 울먹였다. 

사실 이 사전은 임종국 선생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선생은 평생 일제 강점하의 친일 기록 정리에 바쳤고, 민족문제연구소 출범과 ≪친일인명사전≫ 펴냄의 밑거름을 제공한 민족사가이자 문학 평론가, 시인이었다. 민족정기를 바로잡고 역사 정의를 실현하려면 친일 역사의 청산과 있는 그대로의 역사 기록이 중요함을 깨닫고 목숨이 끊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친일 인명 카드 작성에 매달렸던 올곧은 역사가였다. (참고 ≪임종국, 친일의 역사는 기록되어야 한다, 정지아, 여우고개≫
  
▲ 친일인명사전을 받는 임경화 여사(가운데)와 장병화 회장(왼쪽)     © 김영조
     
▲ 친일인명사전 홍보전단과 사전을 펴게 된 계기를 만든 임종국 평전 표지     © 민족문제연구소

이어서 사회자 박한용 연구소 연구실장은 회원대표기구인 운영위원회 이봉원 운영위원장을 소개했다. 이 위원장은 “그간 고생한 전국의 5천 회원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우리 모두 함께 만세를 부르자.”라며 감격스러운 듯 눈물을 글썽이며 만세를 앞서 불렀다.

사실 사전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에는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을 말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가운데 회원들의 공로를 빠뜨릴 수 없다. 친일파로 지목된 후손들과 각종 우익단체의 온갖 위협과 방해공작에 회원들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특히 정부 예산이 끊겼을 때 성금모금을 이끌어내 사전 펴냄이 무산되지 않게 해준 것이 회원들이었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어떤 이는 위원장만이 아니라 운영위원인 지부장들도 모두 나오도록 해 손뼉을 받도록 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임헌영 소장은 “친일인명사전은 민족의 운명이다. 이 사전이 탄압을 받으면 우리 민족은 영원히 세계로부터 탄압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제는 지배층의 윤리가 바뀌어야 한다. 돈과 권력을 쥔 사람들은 친일인명사전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사전발간은 이제 시작일뿐이다.”라고 강조했다.   

▲ 백범 묘소 석등 구멍 속으로 행사에 몰두하는 참석자들이 보인다.     ©김영조

▲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를 알리는 커다란 펼침막     ©김영조

기자는 행사 뒤 회원 대표인 이봉원 운영위원장과 별도로 잠시 대담을 했다. 그는 “이 사전은 반민족문제연구소가 시작한 1991년부터 18년, 해방으로부터 64년 만에 펴내는 역사적인 것으로 이제 신종 친일세력에 맞설 수 있는 확실한 무기를 확보한 것이다. 사전 펴냄에 공이 있는 모든 분께 감사를 드려야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성금을 낸 3만 명의 국민, 5천 명 회원의 공을 잊으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연구소와 편찬위원회는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이어 일제협력단체사전(국내 중앙편·지방편·해외편), 식민지통치기구사전, 자료집, 도록 등 총 20 여권의 친일문제연구총서를 2015년까지 완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전시·교육을 전담할 역사관 건립과 전문분야별 인물별 연구서 발간, 일반교양 서적 보급도 병행 추진할 예정으로 있어 심도 있는 친일문제 연구와 함께 역사 대중화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전망이다.

이 친일인명사전은 현재 3권으로 발행되었는데 아직 제본 중으로 예약을 받아 이달 말경 보낼 예정이라고 한다. 3권 300,000만 원에 회원가 210.000만 원이며, 민족문제연구소 누리집(www.minjok.or.kr/kimson/home/minjok)에서 구매예약할 수 있고, 동 연구소 전화 (02) 969-0226으로 문의하면 된다. 

이제 친일인명사전은 세상에 태어났다. 정말 많이 늦었지만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소금이 되었지 않을까? 이로써 나라를 배반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 세상이 되기를 뜻있는 사람들은 비손하고 있을 것이다.

기사입력: 2009/11/09 [14:41]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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