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벼랑 끝에선 한국의 교육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청소년과 어린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무엇일까? 가난, 나쁜 건강, 환경오염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겠지만, 나이차에 관계없이 공통으로 지닌 고민은 교육이다.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왜 이런 공부를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늘 안고 살아야 하고, 자녀를 둔 부모들은 ‘어떻게 하면 내 아이를 남보다 뛰어나게 가르쳐서 좋은 대학에 보낼 것인지’가 가장 큰 걱정거리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좋든 그르든 단연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네 살 배기 코흘리개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학교에서 돌아온 초등학생에게 쉴 틈도 거의 주지 않고 피아노, 미술, 태권도 학원으로 보내는 나라가 어디에 또 있을까? 고등학교로 올라가기 전에 중학교 때부터 대학입시에 대비해서 사설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적지 않은 나라가 한국 말고 달리 있을까? 고등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2008년도에 83%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는데, 그렇게 대학에 들어간 학생 대다수가 제 나라 말로 편지도 제대로 못쓰고, 10년 가까이 영어를 배웠는데도 외국인을 만나면 의사 소통이 어려워서 쩔쩔매는 나라가 또 있을까?
한국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
어디 그뿐인가. 부부가 맞벌이를 해도 대기가 벅찬 자녀의 사교육비를 벌충하려고 남편이나 아내가 낮에 일을 마치고 밤에 다시 부업을 나가야 하는 가정이 적지 않다. 서민들은 ‘교육’ 때문에 이렇게 고달프지만 부자들이 많이 사는 서울 강남 지역에서는 한 달에 보통 수백만 원이 들어가는 고액과외가 ‘성업중’이다.
2008년 여름엔가, 텔레비전에서 본 뉴스가 있다. 서울 노원구의 고등학생들이 자정까지 사설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수십명씩 버스를 타고 인접한 의정부로 넘어가는 장면이었다. 무슨 법인가 때문에 서울에서는 학원이 자정까지만 ‘영업’을 할 수 있는데, 경기도는 그렇지가 않아서 그쪽으로 가서 또 공부를 하고 2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간단히 세수라도 하고 나면 2시 반이 될 텐데 얼마나 잠을 자고 몇 시에 일어나서 학교에 간단 말인가? 서울의 모든 고등학생이 그러지는 않겠지만,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요즈음 나라 안팎으로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성장률은 떨어지고 물가는 오르고 실업자는 늘고 환율은 자고 나면 널뛰기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공무원을 줄인다고 나서고, 대기업들은 신입사원들의 봉급을 깎아서 경영난을 헤쳐 나가겠다고 말한다. 이렇게 모두가 줄이고 깎는 마당에 ‘절대로 못 줄이겠다’는 것이 있다. 바로 사교육비이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통계청이 2009년 2월 27일에 발표한 ‘2008년 사교육비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2008년 초·중·고등학생의 전체 사교육비는 20조9,000억 원으로 전년도의 20조400억 원보다 4.3%가 늘어났다. 같은 기간에 물가가 오른 것과 엇비슷하게 사교육비가 올랐으니 가계의 부담은 그만큼 커졌을 것이다.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월평균 23만3,000원으로 전년 대비 5%나 늘었다. 과목별로 보면 사교육비 중 영어가 11.8%, 수학이 8.8% 늘어나서 다른 과목들을 압도했다.
2008 회계연도의 정부 예산은 256조 원 남짓이었는데, 사교육비는 21조 원에 가까웠으므로 예산의 8%쯤 되는 액수이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겠지만, 사교육비 전액을 다른 생산적 부문들에 지출했다면 국민경제에 훨씬 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위의 사교육비 통계수자들은 전국 273개 초·중·고 학부모 3만4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나온 것이다. 물론 정부기관이 지역과 계층을 고려해서 표본을 뽑았겠지만, 언론이 자주 보도하는 사교육 현실과 거리가 먼 수치들이 눈에 많이 띤다.
부모들이 사교육에 큰 돈을 들이는 주된 목적은 자녀의 인성을 함양하고 전문기술을 익혀주기보다는 학교에서 시험을 더 잘 치면서 궁극적으로는 수능점수를 높이 받게 하는 데 있다. 그렇게 해야 이른바 ‘SKY 대학’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서울시내나 수도권에 있는 ‘괜찮은’ 대학에 입학해서 좋은 직장에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SKY(하늘)라는 작명을 누가 했는지 모르지만, 한국사회의 학벌 광풍을 이 말보다 더 극명하게 표현하는 어휘는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아이비 리그(Ivy League: 동부의 뉴잉글랜드 지방에 있는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 8개 사립대학)가 가장 유명한데, 그 나라의 우수한 고등학생들이 그 8개 대학만이 제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보다 나라가 몇 십 배 크고, 50개 주를 중심으로 독특한 교육제도와 재정이 뒷받침을 하는 특성이 있기는 하지만, 예를 들어 캔저스주 전체에서 1등을 한 학생이 하버드대 아니면 안 가겠다고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주립이라서 학비가 싼 캔저스대에 진학해 열심히 공부를 해서 지역에서 지도자로 일하거나 중앙 정치무대나 전문분야로 진출하겠다는 학생이 오히려 정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첫째 S대, 다음에는 K대나 Y대에 들어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 다른 일반적 경향을 보면, S대 자연계열보다는 Y대 의대에 들어가야 더 잘 살 수 있다고 보면서 수능점수가 더 높은 학생들이 후자로 쏠리는 현상도 나타난다. 이때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단순히 의사가 되어 병들어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삶의 보람을 찾겠다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요즈음 대기업에 취업한 공대 졸업생들 중 상당수가 ‘사오정’이 되기 싫어서 의대 입시 준비를 고려한다는 추세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기득권 유지, 신분 상승의 무기가 된 교육
한창 꿈과 낭만에 부풀어서 이웃과 더불어 가치 있게 사는 삶을 설계해야 할 젊은이들이 왜 이렇게 되어가는 것일까? 그들이 어릴 적부터 부모들이 ‘너는 공부를 잘 해서 남보다 좋은 대학, 그것도 제일 좋은 대학에 꼭 들어가야 해. 그래야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주입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리고 학교의 평가라는 것이 성적 우선이라서 처지는 학생들은 사람대접을 못 받기 때문에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강박감이 굳어져서 청년기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21세기가 되기 전부터 그랬지만 이제 한국사회에서 학벌은 상위계층의 기득권 유지와 확대, 중하위 계층의 신분 상승을 위해 가장 필요한 발판이자 사다리가 되었다. <한겨레>가 연재하는 기획기사 ‘살림살이 나아졌나’(2009년 2월 24일자)를 보면 서울 금천구에 사는 한 주부(38세)는 1남2녀(초등학생 2명과 중학생 1명)를 위해 넉넉지 않은 살림인데도 한 달에 100만원 가까운 돈을 들이지만 다른 집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다고 여기고 있다. 모두 가려고 애쓰는 특목고에 보내려면 중학생한테 한 달에 학원비로 60만 원이나 들기 때문에 엄두를 못 낸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한 달에 100만원을 내고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수두룩한 상황이라서 국제중학교는 꿈도 꿀 수 없다고 한다.
위의 기사를 보면, ‘표준 강남 엄마’라고 자처하는 49세 여성은 2008년에 고3이던 딸과 고1이던 아들을 위해 한 달 평균 480만원을 썼다고 한다. 그 엄마는 이렇게 했다.
“둘 다 수학이 약하니까 수학 과외는 기본이고, 언어영역도 전문 과외선생을 붙였어요. 과목당 한 명에 60만원씩이었으니 과외비만 240만원이 든 셈이죠.” 여기에 학원 종합반 수강료가 각각 100만원씩 200만원이고, 입시가 코앞인 고3 딸에게는 불안한 마음에 사회탐구 인터넷 강의(40만원)도 끊어줬다. 남편 한 달 수입의 60~70%를 쏟아부어도 사교육비는 늘 모자랐다. “제가 부동산에서 아르바이트 해서 모은 1천만원도 전부 쏟아부었죠. 거기다가 1천만원짜리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들었어요.”
“그래도 대치동이 아닌 방배동이라 그 정도”라는 것이었다. “아침도 못 먹먹고 늘 시험에 찌들어 있는 아이들을 보는 건 더더욱 견딜 수 없었단다.” “중간·기말고사 2번씩에 3·6·9·11월에 보는 학력평가, 여름·겨울 방학 끝나고 개학과 동시에 치르는 학교 자체 시험이 2번, 간간이 보는 사설 모의고사까지, 모두 합하면 1년 내내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시험을 치릅니다. 애들 잡는 거죠.”
여기까지 인용하고 보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숨이 턱 막힌다. 도대체 제정신 가진 사람들이 ‘교육정책’을 펼치고 있는 나라인가? 이명박 정부 들어 청소년들과 학부모들의 고통은 훨씬 더 심해졌다. 대통령은 ‘공교육 만족도를 두 배로 높이고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낮추겠다’고 공언했는데, 정작 일선의 교육행정은 학교에서 점수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강화하는 현상을 빚어냈다.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초·중등학교에까지 ‘우열반’이 생겨서 학생들을 성적을 기준으로 ‘인종차별’하고 있다. 일제식민지시대의 잔재라는 ‘일제고사’가 되살아나서 일부 학교 교사들이 성적을 조작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점수 위주 교육으로 창의력과 사고력을?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2월 하순 ‘라디오 주례연설’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창의력과 폭넓은 사고력, 예술적인 감수성을 갖춘 사람입니다 (···) 대학입시에서 현재와 같은 점수 위주 선발 방식은 벗어나야 합니다 (···) 대학의 자율성은 사교육을 조장하는 것이 아닌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쪽으로 맞춰져야 합니다.
어린 학생들을 일제고사 성적에 따라 줄을 세우고, 공교육이 암기 위주의 시험을 뼈대로 하고 있고, 입시 강박증이 아이들을 짓누르고 있는데 어떻게 ‘창의력과 폭넓은 사고력, 예술적인 감수성을 갖춘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실제로 나는 2008년 3월부터 두 학기 동안 수도권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쳐보았다. 그들은 대학에 갓 입학한 젊은이들로서 수능 점수를 따진다면 보통 수준일 것이다. 내가 놀란 것은 100명쯤 되는 학생 중에 중·고등학교 시절에 편지를 써본 사람이 대여섯 명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대학에 들어와서 보고서(리포트)를 작성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학생들을 한 학기 15주(30시간) 동안 가르치고 나니 열 명 중 아홉 명 이상이 일기, 짧은 수필, 편지 같은 것을 제대로 쓰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한 마디로 중·고등학교에서 글쓰기는 물론이고 말하기도 전혀 가르치지 않은 셈이다.
근래 우리나라를 휩쓸고 있는 영어 열풍은 어린이들을 ‘문화적 미아’로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 나라 말도 제대로 못하는 나이에 교사가 ‘쇼핑’이라고 하면 ‘아니에요, 샤핑이 맞아요’라면서 깔깔 웃어대는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엄마가 ‘너 오렌지 줄까?’ 하고 물으면 ‘아니, 아륀쥐 줘요’라고 고쳐 말하는 아이들 머릿속에서는 어떤 생각이 자랄까? 우리말보다 영어를 훨씬 많이 공부하다 보면 어린 시절부터 ‘미국이 최고’라는 생각이 굳어질 것이다. 그야말로 문화적 사대주의자들을 대대적으로 길러내는 일 아닌가.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면 영어를 포함해서 미국의 문화를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판단력이 제대로 서지 않은 어린이들에게 그 나라 말만을 가르치는 것은 문화적 주체성을 뿌리부터 잘라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의 교육에서 배워야 할 것들
그렇다면 미국의 문화, 특히 교육과 관련해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미국의 의무교육은 12년으로, 초등교육 6년, 중고등고육 6년이다. 공립학교는 1만6,000여 개의 학군이 있고 사립은 그보다 훨씬 적은 1,000여 개다. 사립학교는 국가의 보조 없이 자체적으로 운영한다. ‘명문 사립고등학교’에 다니려면 한 해 3만~4만 달러가 들어가니 우리나라 돈으로는 한 달에 375만 원(환율을 1,500 대 1로 계산)에서 500만원 가량이 되는 셈이다.
미국에서 대학에 진학하려면 SAT(Scholastic Aptitude Test), ACT(American College Testing), AP(Advanced Placement) 중 하나를 선택해서 치러야 한다. SAT는 한국의 수학능력시험과 비슷하지만 영어와 수학 시험만을 치른다. ACT는 한 해에 대여섯 번 응시할 수 있는데, 여러 과목별로 시험을 보아야 한다. AP는 대학과정을 가목별로 고등학교 때 미리 공부하는 것으로서 일정한 점수를 넘으면 대학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AP와 비슷한 제도가 한국에는 없다.
이 나라 공교육에서 인문계와 실업계 구분이 없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반드시 대학에 가지 않아도 자기만 열심히 하면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나라,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이미지다. 2007년 8월 우리나라에서 학벌위조가 문제 되었을 때 <워싱턴 포스트>는 ‘한국 학벌 위조 파문’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왠지 낯 뜨거워지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학벌 아니면 성공할 수 없다는 사회 분위기, 또 하나는 거짓이 너무 쉽게 통용되는 우리의 허술함 때문이다. (<미국, 명백한 운명인가, 독선과 착각인가>, 231쪽)
미국에도 일부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 ‘아이비 리그 열풍’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처럼 고위 공직자나 대학 교수가 되려는 사람들이 ‘아이비리그 학교’를 나왔다고 졸업장을 위조한 사실이 드러나면 그의 인생과 전문직 경력은 그날로 끝나고 만다.
그런데 학벌보다는 개인의 능력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미국에서 정작 심각한 것은 졸업률이 60퍼센트 미만인 고등학교가 10퍼센트를 넘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다수 학생이 적어도 고등학교만은 졸업하는 현상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는 특정의 소수 대학들을 빼면, 다수 대학은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community college)를 포함해서 입학하기가 수월한 편이지만 졸업하기가 쉽지 않다. 고등학교 때보다 공부의 강도가 높고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2008년 10월 국내 언론매체들에 보도된 재미동포 김승기씨의 컬럼비아대 박사학위논문 ‘한인 명문대생 연구’에 그런 사실이 잘 드러나 있다.
하버드, 예일, 코넬, 컬럼비아 등 미국 14 개 명문대에 입학한 한인 학생 1,400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중퇴율이 44퍼센트나 되었다고 한다. 유태인(12.5퍼센트), 인도인(21.5퍼센트), 중국인(25퍼센트)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왜 그럴까?
이 논문은 “학부모들의 지나친 입시 위주 교육방식이 한인 학생들이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게 하는 주된 이유이며, 이것이 학교생활과 미국사회 진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학생들은 “중학생만 돼도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나 학원에서 보낸다. 그런 환경 탓에 한국 학생들은 자율이 보장되는 대학생활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인물로 성장하기보다 남보다 뛰어난 학생으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어렵사리 미국 명문대에 들어간 한국 고등학교 졸업생들은 군대처럼 일상생활을 통제 당하던 버릇 때문에 무제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곳 분위기에 적응을 못하고 자율적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뒤쳐져서 학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보고 아이비리그 중 한 대학의 입학처장은 “학문적으로 성공한 학생보다는 늘 행복한 학생을 뽑았을 때 커뮤니티 자체가 행복한 캠퍼스로 바뀐다”고 말했다. 요즈음 우리나라 고등학생들 중 진실로 ‘행복한 학생’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교육 부문에서 미국에서 배울 점들은 많다. 가난한 학생이라도 공부를 열심히 하면 정부가 최대한으로 지원을 한다든지, 중고등학교에 가족지원부서가 있어 과외 지도가 어려운 학생들에게 방과 후 수업이나 특기 교육 학습비를 보태주는 것이 그렇다. 특히 교사들이 어린이들을 자상하게 보살피는 태도는 우리나라가 배워야 할 점이다. 방과 후 학교에 남아 있는 아이들이 귀가할 때까지 교사가 지켜보거나 조금만 아파도 부모가 데려가도록 연락해서 다 나아야 등교하게 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제 나라 글쓰기’부터 바로 해야
앞에 썼듯이 대학에서 1학년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한국이 미국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제 나라 글을 제대로 쓰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어서 실행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미국의 대다수 대학은 입학시험에서 ‘에세이’를 요구한다. 단순한 논문이나 수필이 아니라 응시생이 살아온 과정, 특히 어려움을 극복해내던 때의 의지와 정신적 성장, 지역사회에서 또는 국제적으로 봉사한 경험, 창의력을 개발하려고 노력한 사실 등을 스스로 써내는 것이다. 우선 글을 논리적으로 써야 하지만 내용도 중요하다. 요즈음 우리나라 주요 대학들이 그나마 치르던 논술조차 줄여나가고 있는 현상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미국의 대학들은 에세이를 잘 쓸 능력이 없으면 수학능력이 모자라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남이 써준 에세이로 합격한 학생은 대학 수업과정에서 그 사실이 드러나서 자퇴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요즈음 고등학교를 서열화하고 특목고 출신을 우대했다는 의심을 받는 대학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교육계 전체가 아래와 같은 사실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대학 입시는 우리와 많이 다르다. 성적 자체만으로 평가하자면 내신과 SAT가 중요하다. 그중 내신은 ‘성장세’를 가장 높이 평가한다. 1학년에 D를 받았지만 2학년에 B를 받고 3학년에 A를 받을 수 있는 학생, 그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준다. 이 말은 곧 아이의 성적 자체보다 얼마나 발전했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노력하고 공부했는지,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를 본다는 뜻이다. (앞의 책, 273쪽)
버락 오바마는 미국 교육제도의 장점을 잘 활용해서 공부한 사람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친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흑인의 정체성’ 에 관해 고민하면서 술, 담배, 마리화나에 빠졌던 오바마는 어머니의 자상한 배려 덕분에 로스앤젤레스 근교의 옥시덴털 칼리지로 진학한다.
LA 남부에 불규칙하게 퍼져 있는 흑인 빈민가에서는 멀리 떨어진 전원풍의, 나무가 무성한 캠퍼스다. 오바마는 흑인 학생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었다. 그들 중 많은 학생은 빈민가 출신이이었는데 자신들이 자란 모래투성이의 위험한 거리에서 벗어난 것을 즐거워했다. (<버락 오바마의 삶>, 119쪽)
그는 옥시덴탈이 만들어 준 틀과, 자신이 영향 받기 쉽다고 생각한 나쁜 습관과 방종에서 벗어나기로 결정하고 컬럼비아로 옮겼다. 동시에 그는 LA교외의 불규칙한 확장 지구에서 벗어나 ‘진정한 도시의 중심부’에서 흑인 이웃들과 살아보고 싶었다.
(·····)
오바마는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 바와 여자를 좋아하는 명랑한 룸메이트의 밤거리 진출을 거절한 채 공부에 집중했다. “지겨운 녀석이 돼 가고 있구나”라고 룸메이트가 말했다. 오바마는 하루에 약 4.5 킬로를 달리고, 일요일에는 금식을 했으며 성실히 기록을 남겼다. 그가 말하기에는 ‘매일의 성찰과 아주 형편없는 시’였지만, 또한 10년 후 그가 회고록을 쓸 때 자료로 쓰게 될 글들을 쓰기 시작했으므로, 그 말이 사실임을 부인할 수 없다. (같은 책, 131쪽)
우리는 여기서 오바마가 정신적 방황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날마다 자신을 성찰하는 글을 쓰고 건강을 위해 운동과 식생활에 정신을 집중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수업이 없거나 공부를 하지 않을 때는 걸어서 도시 여기저기를 탐색했다. 그리고 실직자와 버림받은 자들의 무리, 노숙자들이 피난처로 사용하는 쥐와 강도가 들끓는 주택, 마약 거래상들이 구걸하는, 눈부신 도시의 ‘콧노래’ 밑에 숨겨진 것을 보았다.”
창의력과 사고력을 기른 오바마의 ‘자기 학습’
오바마는 컬럼비아대에 다니면서 단순히 지식 위주로 공부를 하지 않고 사고력과 창의력을 높이면서, 뉴욕 맨해튼의 ‘막장 인생’을 보고 듣는 산 교육을 스스로 한 것이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시카고로 가서 ‘친구들이 비웃을 만한’ 연봉 1만 달러, 자동차 구입 보조금 2,000 달러의 인권운동단체에 취업한 것은 바로 그런 자기 교육의 당연한 귀결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연방 상원의원 시절 오바마는 교육에 관한 정부의 정책과 조치들을 비판적으로 보면서 개혁의 방향을 제시했다.
(···) 정부는 지난 20년 가까이 쇄신과 개혁 언저리에서 맴돌며 어설픈 시도를 벌이다 평범한 성과에 만족하고 말았다. 이런 결과는 부분적으로 새로운 발상을 하지 못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이념 대립에서 비롯된다.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이런 주장을 펼친다. 학업 성취도를 끌어 올리는 데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고, 공립학교의 여러 문제점은 불운한 관료 조직과 비타협적인 노동조합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해야만 교육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가능하지도 않은 현상 고수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학업 성취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혁이 어떤 것인지 찾아내 필요한 자금을 투입하되, 성과가 없는 개혁은 폐기하는 것이다. (<담대한 희망>, 235~6쪽)
이런 교육관을 가진 오바마 대통령은 낙제 학생 방지법, 영유아 조기교육, 모든 아동들을 위한 유아원 신설, 자녀 및 부양가족 경비에 대한 세제 혜택, 교사 채용과 양성 제도의 개선 같은 정책들을 실행에 옮기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