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저, 저, 저…거시기!

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2. 13. 00:08

본문

728x90

[ 월간에세이 ] 2009년 12월호
김홍신의 toc toc toc / 김홍신, 소설가
저, 저, 저…거시기!

우리 아버지가 애들한테 할아버지 소리를 들을 무렵, 어머니에게 사소한 걸로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버지가 옷장을 열고 뭔가를 찾다말고 어머니를 부른다.
“거시기 어디 있는 겨?”
“뭘 찾으시는데요?”
“거시기 있잖여.”
“그게 뭔데요?”
“아, 거시기 말여!”
아버지의 언성이 높아지면서 내 얼굴에 웃음기가 돌게 된다. 어머니의 평소 성품대로라면 대뜸 “거시기는 귀신도 모르는 거잖아요.”라는 소리가 튀어나올 참이다.
“지갑 찾아요?”
“어제 가져온 거 있잖여!”
“뭘 가져왔는지 알아야 말이죠.”
“에이, 거시기 있잖여! 거시기!”

(......)


나는 이 작은 일화를 몇 차례나 들먹여 그를 놀리곤 했다. 잃어버렸다던 자신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휴대폰을 두고 왔으니 찾아서 가져오라니 어찌 웃음이 터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2년도 채 안되어 나도 별 수 없이 그 양반처럼 놀림감이 되고 말았다. 외출하려고 현관을 나서는데 휴대폰이 진동했다. 얼른 전화를 받으며 자동차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았다. 차가 막 출발하자 나는 급하게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핸드폰 두고 왔네.”
그리고 부리나케 현관문을 열면서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오른손잡이인 내가 현관문에 달린 번호 키의 숫자판을 누르려고 오른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왼손으로 옮기며 계속 통화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결코 자랑일 수 없는 이 어처구니없는 건망증을 우스개 삼아 털어놓으면 사람들은 와르르 웃으며 경험담을 털어놓는데 내 휴대폰 사건은 애교 있는 건망증에 불과했다. 휴대폰을 냉장고에 넣고 못 찾았다거나 행사장에 리모컨을 들고 와서 숫자판을 누르며 휴대폰이 고장 난 줄 알았다는 정도는 건망증 축에도 못 드는 세상이 되었다. 부인과 함께 모임에 참석했다가 쉬는 시간에 에스컬레이터에서 부인을 보고 “여긴 웬일로 왔느냐?” 물었다는 저명인사의 경험담을 듣다가 마시던 커피를 내뿜은 적도 있다.
이런 건망증증후군의 근원을 전문가들은 여러 갈래로 설명한다. 나이 먹은 것도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걸 도무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건 나만의 심정은 아닐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이거 유전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들 녀석이 나이가 차 사랑하는 여인이 생겨 내게 선을 보였다. 그 후 몇 번 상면했음에도 머릿속에 뱅뱅 도는 아들의 여자 친구 이름은 그냥 ‘거시기’였다.
그날도 아들 녀석과 대화중에 예비며느리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해 하다가 난 이렇게 내뱉고 말았다.
“저, 저, 저, 저, 저…거시기!”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