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23.수요일
파토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애들은 시끄럽다. 어디로 튈지 통제되지 않는다. 천사 같다가도 갑자기 마귀처럼 돌변하기도 하고, 뭐가 안전하고 위험한 일인지 개념도 없이 마구 행동하고, 책임감도 없다. 하지만 말 안 듣는다고 툭하면 소리를 지르거나 마구 때릴 수도 없다.
그래서 옛날의 나는, 가급적 결혼도 하지 않겠지만 아이는 더더욱 가지지 않는다는 신념에 가까운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반드시 아이라는 종족 자체가 싫어서만은 아니었다. 나름 추구하던 자유로운 삶과 사고에 지장이 될 거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것만도 아니었다.
난 아빠가 될 자신이 없었다.
특별히 어디가 어때서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고민은 항상 두 가지 관점에서 묵직하게 나를 따라 다녔다.
일단은 생물학적 부모가 되기는 너무나 쉬운 반면,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너무 어렵다는 사실을 주변을 통해 봐 왔기 때문이었다. 나이와 무관하게, 부모가 될 준비가 전혀 안된 사람들이 여차여차하여 애를 낳고 부모로 살고 있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 이들을 보면 부모 되는 것도 몇 년간 학교에서 공부를 시키고 자격증을 발급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저 섹스의 결과로 혹은 ‘아이를 원래 좋아해서’ 덜컥 부모가 되어 버리는 생각 없는 이들이 너무 많다. 나 역시 자칫 그런 무책임을 반복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 다음은 세상 때문이었다. 난 과연 행복한가? 지금도 그때그때 변하긴 하지만 특히 질풍노도의 젊은 날에는 (머 그 기간이 남들의 3배 정도 오래 간 것 같긴 하지만) 도무지 긍정적인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험난하고 허무한 세상에 굳이 또 하나의 생명을 만들어 내 놓는다는 것… 과연 내가 동물적으로 그럴 능력이 있다고 해서(글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확신 없이 할 일일까?
혹시라도 그렇게 난 아이가 내 유전자를 쏙 빼 닮아서 어려서의 고민과 혼란을 그대로 답습하면 그 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나. 와중에 내가 가진 바탕의 낙천성은 또 갖지 못해서 진짜로 고통과 불행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그렇지 않다 한들 혹시 사고라도 나거나, 나쁜 놈들을 만나거나 해서 변을 당한다면…?
애를 아예 낳지 않는다면 이런 고민은 처음부터 불필요한 거다. 세상에 대해 발언하기도 바쁘고 내 앞가림 하기도 벅차다. 안 그래도 터져 나가는 지구, 인구 한 명 더 늘려서 식량 줄이고 탄소 배출 늘릴 것 없다. 늙어서 자식 덕 볼 것도 아니고.
굳이 머하러.
영국에서 키운 고양이 오이
그리고는 십여 년이 흘렀다.
2001년에 결혼을 했으니 그리 늦은 나이에 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는 이후 5년간 외국에 나가 있었다. 바쁘고 힘들었다. 와중에, 외국 나가있어서 좀 덜하긴 했지만, 또래들과 옛날 친구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들은 대개 비슷한 경로를 겪었다. 아빠가 되고, 동시에 타락하고.
부모가 되는 것이 가정에 대한 금전적인 책임은 지울 망정 반드시 윤리적인 성숙함까지 주는 것은 아니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이상하게도 내 주변에서는 일찍 결혼하고 애 낳은 녀석일수록 더 빠르고 심하게 망가졌다.
서른도 안되었던 무렵, 10년 만에 연락이 닿은, 이미 결혼하고 애 낳은 중학교 동창들을 만난 일이 있다. 녀석들은 길에서 나를 차로 픽업해서 바로 룸싸롱에 데려갔다. 친구들이 ‘본전’ 뽑는 동안 옆에 앉은 여자와 조근조근 이야기하다가 분위기 깬다고 욕 먹고, ‘뿜빠이’라는 단어도 그날 처음 알았다. 그 녀석들이 서로간에 상대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거짓말로 전화 해 주고, 그 중 한 녀석은 새벽에 거기서 나와서도 집에 안가고 바로 다른 애인 집으로 향한다.
바람을 피워도 나름의 도가 있는 거지 이건 좀 너무 뻔뻔하다. 게다가 중고등학교 때 함께 사회와 철학, 종교, 음악을 같이 논했던 녀석들이 아닌가? 이런 경험은 내게 다시 한번 경계심을 불어 넣었다. 빨리 ‘어른’이 되려 하지 말자. 서두를 것 없다…
그렇게 하여 내가 아이를 가질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세월이 한참 지나고, 결혼한지 만으로 6년이 넘어서였다. 좀 이상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내가 아빠가 되기로 생각을 바꾼 계기는 고양이의 죽음과 관련이 있었다.
원래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는 영국에서도 동물보호소에서 길고양이를 데려와서 키웠다. 두 달도 안된 예쁜 아기 고양이이였고 이름을 ‘오이’ 라고 붙였다. 하지만 막상 키우다 보니 오이는 글 쓰랴 기타 연습하랴 예민한 상태에서 끝없이 나를 괴롭히는 타고난 말썽꾸러기에 반항아였다(어려운 곡을 한창 연습하고 있는데 불시에 뒤에서 아킬레스 건을 물리는 걸 상상하면 된다). 그래서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야단도 많이 쳤지만, 와중에 오이는 아내보다 나를 훨씬 더 따랐다. 정은 들었지만 때로는 솔직히 너무 귀찮고 힘들어서 도로 갖다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오이 것까지 귀국 비행기표도 다 끊고 난 영국 생활의 막바지에, 얘가 그만 불치병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얼마 전까지도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해 보였는데 알고 보니 심장에 날 때부터 기형이 있었던 거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엑스레이를 찍고 검사를 받았는데, ‘6주’라는 시한부 선고가 떨어졌다. 의사와 상의했으나 여행의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비행기 속에서 죽게 될 것이란다.
그래서 결국은 안락사를 시킬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나름 담담하게 안락사 일정을 잡은 순간부터 내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하는 거다. 에이 귀찮은 것 차라리 잘됐다… 라고 털어버릴 수 있길 바랬지만 그게 아니었다. 정해진 죽음이 하루하루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해졌고 고문과도 같은 혼란에 빠져 들었다. 그러다가 결국 내 품에서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의 그 모습…
한달 여 후 한국에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별로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내 영국에서의 마지막 기억은, 그저 평소에 잘해 주지 못하고 병도 고쳐 주지 못해 불쌍한 오이를 죽이고 말았다는 아픔뿐이다.
…그 정도로 큰 타격을 받을 것 같지는 않았는데 왜 그렇게 고통스러웠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니 실은 오이가 죽는 과정에서 저절로 깨닫게 됐다.
고지식하고 경직된 나는 그 애를 사랑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거다. 매일 싸우고 지지고 볶았지만 이미 가족 같고 자식 같은 사이가 되었던 건데, 사랑은 원래 그런 건데, 그 귀찮음과 피곤함을 그만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착각했던 거다. 그런 나의 못남을 그애의 병을 계기로 깨달으면서 마지막이 더 힘들고 미안했던 거다.
그 일을 겪고, 깨우치고 후회하고 또 마음의 정리를 하고 1,2년이 지나고, 나는 비로서 오이가 떠나면서 나에게 준 마지막 선물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스스로 되뇌였다.
이제 나도 아빠가 될 준비가 되었구나...
(눈 이렇게 작지 않다... 플래시에 눈 부신 상태임)
지금 내 딸 배추(본명 아님. 그렇게 잔인하진 않다...)는 15개월이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다가 요즘은 좀 뛰기도 하고, 엄마 아빠 어설픈 발음으로 말도 한다. 티비에서 내가 좋아하는 소녀시대가 나오면 몸을 흔들기도 하고 빙글 한 바퀴 돌기도 한다. 웃고 울고 행복해하고 우울해하고 삐지고… 얼마 전만 해도 요람 속에서 꼼짝도 못하던 것이 이제 사람 할 일은 다 흉내 내고 있다.
옛날의 두 가지 고민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내 딸이니 언젠가는 얘도 근원적인 문제로 고민하고 좌절할 것이다. 얘가 살게 될 세상이 지금보다 과연 나아지긴 할지, 나아지면 또 얼마나 나아질지도 알 수 없다. 그저 아빠로서, 또 미미하나마 세상에 발언권을 가진 사람 중 하나로서 최대한 노력할 뿐이다.
아이를 보면서 여러 가지로 배우는 게 많지만 그 중에서도 과거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한 가지 깨달음이 있다. 시체의 부분들을 끌어 모아 인간을 조립하려고 했던 소설 속의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천하의 바보라는 사실이다. 우린 이미 이렇게, 훨씬 쉽고 간단하게 완벽한 인간을 만들어 낼 능력이 있지 않은가?
이 아이는 내가 조립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내가 (물론 아내와 함께) 만든 존재다. 그리고 그런 내 속에는 오랜 진화의 산물로서 스스로 전혀 느끼지 못했던 이런 엄청난 능력이 있었다. 아이를 볼 때마 생각이 든다. 인간은, 아니 생명은 얼마나 위대한가. 그리고 스스로 그런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고, 때론 자신을 망가뜨리고 학대하는 우린 또 얼마나 바보인가.
그런 의미에서 내 딸은 내가 만들었지만 나만의 아이는 아닐 거다. 결국은 세상에 나가야 하고, 사람들과 관계해야 하고, 갈등과 번민과 고뇌와 싸워야 하고, 부정함과 불순함을 극복하고 유혹을 이겨내야 할 것이니 말이다.
그 모든 일들에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고,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다치고 때가 묻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통해 나도 세상도 다시 한번 꿈을 꿀 수 있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 설사 아이의 꿈이 나와는 다른 것이라 한들, 그렇게 허무는 극복되고 세상은 이어진다.
이 아이가 없었다면 내가 과연 이걸 느낄 수 있었을까?
더욱 신기한 것은 그 시니컬하던 내 눈에, 이제는 내 아이 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보이기 시작한다는 거다. 여전히 아이들은 시끄럽고 어디로 튈지 모르고 오락가락하고 말도 안 듣는다. 하지만 그건 이제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저 애들의 얼굴 하나하나에 깃들여 있는 것들, 내게서는 조금씩 사라져 가는 ‘시간’ 이라는 것. 그들에게 그것이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 모두에게 미래가 있고, 무엇을 향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희망이 남아 있는 거다(덧붙여서, 예전 같으면 손발 오그라들 이런 생각과 말을 내 입으로 하게 만드는 힘도 있다).
내가 좋은 아빠인지는 아직 애가 너무 어려서 잘은 모른다. 하지만 만약 이 애를 낳지 않았다면, 다른 표현으로 말하자면 지금 이 애가 세상에 없다면 나는 어떤 상태일까, 내게 세상은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 보곤 한다.
...하지만 상상이 전혀 되지 않는다. 부모라면 다 마찬가지겠지만.
(댓글에서 약간 논란이 있는 것 같아 덧붙이자면 이 글은 나의 성향과 경험 속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찾은 의미에 대한 이야기일 뿐, 특정 형태의 삶이 정답이라고 주장하거나 나와 같은 길을 강요하기 위한 목적은 추호도 없음. 수필은 수필일 뿐 오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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