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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노명박론에 대한 반론

세상사는얘기/삶부추기는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2. 2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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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노명박론에 대한 반론


2009.12.23.수요일

뚱딴지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나와 직접적으로 아무 관계없는데도 어떤 단어를 들을 때 불쾌해지는 기분. 동성애하는 놈들은 다 정신병자, 라든가 용산사태 그거 뻔한 거 아냐? 돈 더 달라고 지랄하다 죽은 거잖아, 같은 말. 모두 나와 직접적 관계는 없지만, 상당히 불쾌하다.

이 말을 들을 때도 그렇다.


노 명 박.

 


이명박을 만들어 낸 것은 바로 노무현이라는 논리. 또는 노무현도 이명박과 별 차이 없는 인간이라는 결론. 최근 곳곳에서 들려오는 저 말을 들으면 공연히 불쾌해지고 나아가 수치심, 또는 모욕감까지 느껴지고는 한다.

왜 그럴까?


이글은 바로, 그 단어를 들으며 느낀 불쾌감과 수치, 모욕의 감정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에 대한 뚱딴지의 내면분석보고서 정도 되겠다.


 

1. 노무현은 진보인가?

 

다들, 이라면 과장이겠고 많이들 그러겠지만, 나 역시 노무현을 진보로 보지 않는다. 개혁에 실패했으므로 개혁적 정치인이라고도 보지 않는다. 그저 건강하고 상식적인 개혁적보수주의자 정도랄까? 그러나 나는 그를 지지했었고, 대통령으로 만들었었다.

그리고 참, 좋았었다.


더불어, 역시 많이들 그랬겠지만, 이라크 파병에 성질냈었고 한미FTA, 신자유주의에 반대했었고 또 많이들 그랬다시피 동시에, 탄핵에는 반대했다가 대연정 운운할 때는 절망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역시 많이들 그랬겠지만, 그의 죽음에 분통이 터지고 속상해 했었다.

아주 많이.


더 이상 구구절절한 사연은 생략하자. 또 노무현과 이명박이 어떻게, 어떤 부분에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별로 따지고 싶은 마음 없다. 내가 궁구하고 싶은 것은 정치가 인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특히 진보가 추구하는 지향과 그 방법에 대해서이다. 


진보가 추구하는 가치는 옳다. 또한 진보의 지향점은 당연히 그 가치가 이루어진 세상을 향해 있다. 하지만 그 길을 가는 방법은 다양하다고 생각하며,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진보가 나아가는 길이 오로지 일직선뿐이라면 그건 이미 진보의 노선에서 이탈한, 진보의 허울을 쓴 보수에 가깝다.


비유하자면 이런 얘기다. 80년대 중반에 태어난 청년이 있다. 진보가 어떻고 보수가 뭔지 잘 모르는 청년이다. 부모도 그렇고 그 청년도 그렇다. 요즘 그 또래가 거의 그렇듯 정치나 사회문제보다는 스펙 쌓기에 정신없는 그런 청년. 그런데 그 청년의 말 한 구절에 문득, 멍해진 적이 있었다.

 


‘난 대통령은 당연히 다 그런 줄 알았어요. 김대중이나 노무현같은, 그랬는데....’


그가 사춘기에서 청년기를 거치는 기간에 본 대통령은 그 둘이었다. 당연히 대통령이라면 그런 정도의 지식과 품성, 내용들을 가지고 있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대통령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촛불집회에도 나가고 관련 카페에도 가입하고 하다가, 지금은 다시 팍팍한 일상으로 돌아가 있다.


하나 더 하자.

다르지만 비슷한 인물의 이야기.

 

죽지 않는 돌고래가 인터뷰한 용자의 가족사에 이런 부분이 있다. 자식이 촛불집회에 참석하다보니 좆선열독 보수였던 아버지가 오마이를 보게 되고, 끝내는 좆선을 끊게 되고, 조심스럽게 한국일보까지는 나아가더란 말. 그 가족 구성원의 놀라운 진보. 그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변화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둘의 지향점은, 좀 막연한 대로 어쨌든 진보를 향하고 있다. 위 두 사례는 모두 2009년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정치적 변화도 중 일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 부모들은 분명 군사독재와 80년대의 그 격랑을 헤쳐 나왔을 테지만, 그 시기에도 정치적 각성은 거치지 않고 그저 열심히 살아왔을 뿐이다.

그리고 전형적 보수주의자가 되었다. 


반면 그 자식들은, 부모들과 비슷한 성향을 지니고 있음에도 단지 태어난 시기가 그 때였다는 것만으로 그 정도의 인식체계를 갖게 되었다. 나아가 부모를 변화시키는 정도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여기서 그들이 어느 정도나 진보적인지 그 수위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적어도 그들은 보수적 환경에서 진보적으로 변한 인물들이라는 게 중요하니까.


두 사례 모두 대한민국이란 특성이 만들어 낸 가족이고 정치수준이다. 이런 미묘한 전개와 변화, 이런 방식의 각성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 것이다. 비슷할지는 몰라도 분명 차이는 있는 것이다. 틀린 게 아닌 다른 것, 차별이 아닌 차이는 인간관계에서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각 민족, 각 국가 간에도 적용된다.


 

2. 모두 다르다.


이데올로기의 구분이나 적용, 진보나 보수의 규정이나 판단은 인류에게 공히 통할 수 있는 절대적 도그마일까? 말하자면 노무현과 룰라를 비교하며 이야기할 때 룰라는 개혁을 성공하고 있지만 노무현은 그렇게 못했으니 실패한 것이라는 식의 단순비교는 적확한 것일까? 수많은 수치로 보아 노무현은 자본의 친구이자 서민의 적이 틀림없는 걸까?


우리의 롤 모델이 유럽식 사민주의라고 가정할 때,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정책을 핀란드나 스웨덴처럼 바꾸고 그대로 따르면 되는 걸까? 그렇게만 하면 우리의 진보주의자들은 만족하고 아무 불만이 없을까? 아니 그 전에, 그 체제는 과연 우리에게 맞춤옷처럼 딱 맞는 것일까?


가본적은 없지만, 핀란드에 대해 잘 아는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곳에서는 어두워지면 도무지 할 일이 없다고 한다. 다들 집에 들어앉아 책을 읽거나 또는 나름대로의 취미생활을 하거나 하겠지만, 한국의 밤 문화에 익숙한 사람은 도대체 심심해서 살 수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며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대부분이 그렇겠지, 하고 짐작했었다.


남미도 가본적은 없지만, 그곳 역시 여러 면에서 우리와는 다를 것이다. 당연히. 그렇다면 이런 차이들은 이데올로기나 정치체제와 전혀 무관할까? 관계가 있다면 어느 정도이며 영향을 미친다면 어느 정도일까? 서구의 논리적 사고와 합리적 검증 속에서 발전해 온 정치체제들은 동양의 도덕적 가치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에 단순이식이 가능한 걸까?


북쪽의 누군가처럼 우리 식의 어쩌구 하는 얘긴 아니지만, 하다 보니 비슷하긴 하다. 이데올로기든 체제든, 진보든 보수든, 용어는 같지만 그 적용에 있어서는 모두 달라야 하고, 그 다른 적용이 옳은 것이다. 스칸디나비아의 사유재산 개념이 우리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 교육에 대한 감정과 영향이 우리와 같을 수 없다.


남미 역시 마찬가지다. 그곳의 노동조합이 우리의 노동조합과 같은 정서를 지니고 있을 리 없으며 그곳의 노인들 삶이 우리 노인들의 삶과 같을 리 없다. 이것은 정치체제 이전에 민족전통의 문제고 문화의 문제다. 그러므로 어느 체제가 있다면, 그 적용방식 역시 달라야 한다. 다르게 적용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어떤 체제가 우리의 현 체제보다 우월하다고 하여 단순비교로 평가해 버리면 올바른 답을 얻기 힘들다. 우리가 입 아프게 떠들어대는 진보도 마찬가지. 우리가 나아가는 진보의 길은, 다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방식일수도 있는 것이다. 즉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며 평화롭게 공존, 공영할 수 있는 세상을 추구한다면. 지향점이 거기라면.


 

3. 노무현과 이명박

 


 

생략한다, 고 했지만 역시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에 대해, 그리고 노무현과 이명박에 대해. 처음 열거한 많은 못마땅한 점들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그런 고민을 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자들까지도 지지 세력으로 안으려고 한 부분들.


자신은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지만 여러분들은 반대하는 것이 옳다고 한 말이 그저 말장난이 아니라, 대통령의 위치에서 우리를 이해하며, 우리의 위치에 자신을 놓고 설명하는 진솔한 고백이라는 걸 느꼈을 때. 대통령노릇 못해먹겠다, 는 말에서 지도자가 아닌 우리와 같은 국민의 입장을 부러워하는 것을 느꼈을 때.


봉하마을에 도착해 야 참 좋다, 라고 소리치는 목소리와 얼굴에서 그가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우리를 상대해야 하는 입장에서 우리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으로 돌아온 걸 정말 좋아하고 있구나, 하고 느꼈을 때.

그 진정성이 와 닿았을 때. 


그럴 때마다 노무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동의하지 않은 정책들이었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모두 나름대로 고민한 선택이었다는 것. 나아가 그 고민들은 모두, 그가 선택한 진보의 방식이었을 거라는 것. 나는 진보가 아니라고, 개혁도 실패했다고 하지만, 우리의 역사적, 시대적 상황에서 그가 한 것은 분명 진보라는 것.


반면 이명박은, 완전히 그 반대다.


가장 먼저, 이명박에게 국민은 함께 고민하고 소통하며 공감하고 공존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자신을 싫어하며 못미더워하고 거부하며 감시하는, 매우 거북하고 불편한 무리일 뿐이다. 따라서 자신이 대통령으로서 할 일은, 어떻게든 그 무리가 틀렸고 자신이 옳다는 걸 확인시키는 것, 그게 전부다.


그러기 위해 강을 파야하고 그러기 위해 행복도시를 바꿔놔야 한다. 반대를 하던 욕을 하던 그런 건 상관없다. 새로울 거 없으니까. 하지만 두고 봐라. 결국엔 내가 옳다는 게 증명될 테니까. 그러다보니 측근들도 그렇게 채울 수밖에 없다. 자신의 편으로만. 자신의 편이 아니면 지금은 같이 할 인물이 아니고, 나중에 비웃어 줄 대상이니까. 


다음으로 민족이나 문화.

이명박에게 그런 것들은, 도무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왜 중요한지도 알 수 없는, 막연한 어떤 것이다.


민족 = 그냥 우리 민족.

문화 = 한 달에 한 번 정도 영화 보고 음악회 가고 그러는 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내용이거나 외국의 누군가가 칭찬하거나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오바마와 나눈 교육에 대한 이야기 다들 알 것이다. 사실 이 얘기를 이명박은, 자랑한 게 아니라 부끄럽다는 의미로 한 거였다.

이건 좀 자세히 디벼볼 필요가 있겠다.


오바마: 한국 교육정책의 과제는 무엇인가?

이명박: 한국은 부모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자식 교육은 시킨다. 부모 교육열 때문에 많은 아이들을 좋은 교육을 받게 되고 그 결과 대한민국이 발전하고 가난한 가정이 가난의 대를 끊고 잘 살게 됐다. 그런 극성스러운 부모들이 초등학교 1학년생도 영어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해 어쩔 수 없이 수천 명의 원어민 교사를 들여올 수밖에 없다.


문제의 대화내용은 이거였다.

이명박은 부끄러웠다. 오바마는 자기와 다른 진보적 인간인데, 이 영어몰입교육은 우리나라에서도 오지게 욕을 먹고 있는데 저 미국의 진보적 대통령 오바마는 오죽할까. 이명박은 이 부모들의 교율열 얘기를 자랑으로 한 게 아니라, 그 때문에 쪽팔리는(오바마가 당연히 비웃을 거라 짐작하고) 영어몰입교육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리고 사실 교육얘기를 물어왔을 때, 영어 외에는 할 말이 없기도 했다. 시험성적위주의 주입식 교육방식, 사교육의 만연과 공교육의 붕괴 등 교육정책 전반을 설명하는 건 너무 힘들기 때문에. 그래서 손가락을 오므리고 혀를 날름거리며 힘들게 얘기했는데, 근데 오바마는 그걸 칭찬해대고 있으니, 가장 놀란 건 누구보다 이명박이었다.


그 뒤 툭하면 오바마가 미국에서 자신이 했던 그 이야기를 한다, 는 이야기를 하며 자랑했다. 하지만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 자랑은 자랑도 아니고 뭣도 아닌, 마치 똥을 싸놓았는데 누군가가 똥 색깔이 참 아름답다고 하자 얼굴 붉히며 비시시 웃는, 그런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듯 이명박은, 우리 국민이나 민족, 문화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남의 시선과 평가가 중요한 인물이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외국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얼마나 인정받는지가 중요할 수밖에 없고 활동의 대부분도 그에 맞춰지는 것이다. 그리고 더 앙증맞은 건, 자신이 그렇게 인정받으면 국민들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믿는다는 것.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이 국민이란 족속들은 참으로 답이 안 나오는 존재들일 수밖에 없다.


젠장, 노무현과 이명박의 차이를 주절거리고 있자니 갑자기 병신스러워져 그만 해야겠다. 

이정도로 마치자.

 

웃는 인상부터가 다르잖아.

아무튼 다 집어치우고 이명박과 노무현을 같은 인간이라고 우기는 건, 인간의 보편적 판단기준에 대한 모독이다. 그러므로 저 노명박이란 말을 들으면 불쾌해지고 수치와 모욕감까지 느끼는 내 감정은, 온당하다.

뚱딴지

 

입력:2009.12.23 06:0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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