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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서민들을 위한 호민관은 어디에 있는가?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0. 1. 1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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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서민들을 위한 호민관은 어디에 있는가?
[주장] 서민들을 지켜낼 자들, 그러한 정치집단이 필요하다
 
정근

아주 오래된 드라마 사극 중에 “무인시대”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KBS에서 주말에 했던 것인데 고려시대 정중부가 일으킨 무인의난부터 시작해서 최충헌까지의 무인정권시대를 드라마화 한 것이었지요.

제가 역사를 좋아해서 다른 장르의 드라마는 거의 안보지만 사극은 빠짐없이 봅니다. 놓치면 재방송이라도 보고는 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역사와 드라마의 내용을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저는 고려의 무인정권 시대를 좋지 않게 봅니다. 그 동기야 외적과 열심히 싸워 나라를 지켰지만 문신에 비해 그다지 좋지 않은 대우를 받았고 모멸감을 주었기에 일어난 것이지만 그로 인하여 많은 목숨들이 죽어갔고, 무인들끼리의 정권 다툼으로 국력이 쇠하여지고, 그로 인하여 몽골 침입의 빌미를 주어 급기야는 고려가 망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고 생각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것은 백성들입니다. 한 나라가 무너지면 다른 나라가 그 땅에서 세워지지만 그 혼란의 와중에 고통을 받는 것은 그 땅에 살고 있는 민족들, 백성들입니다. 위에 있다고 하는 자들이야 지들끼리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 권력을 쟁취하고, 나라도 세우고 하지만 그 혼란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진짜 그 땅의 주인들은 백성들뿐이지요. 
 
이러한 생각으로 고려의 무인정권을 별로로 보지만 그 와중에 제가 좋게 생각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경대승”이라는 사람이지요. 
 

▲ KBS드라마 <무인시대>     ©KBS


경대승은 정중부와 같이 무인의 난을 일으켜 중서시랑평장사를 지낸 경진이라는 자의 아들로 15세에 아버지의 지위덕으로 음서로 무인 관직에 올라 장군이 된 사람입니다. 아버지인 경진이 권력을 이용해 남의 토지를 무단으로 갈취하였는데, 처음부터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경대승은 아버지 경진의 사후에 그 토지들을 나라에 헌납하고, 청렴한 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무인의 난을 일으킨 정중부등의 횡포에 분개한 경대승은 1179년 명종9년 26세에 허승, 김립등과 함께 30명의 별동대를 일으켜 정중부와 그의 일파들을 제거를 합니다. 이에 명종은 경대승에게 승상의 벼슬을 주려고 하였으나, 정치는 문관이 하여야한다면서 사양을 합니다, 그리고 조정을 무인의 난 시대 이전으로 돌리고자 문관과 무관을 고루 등용토록 합니다. 벼슬을 사양한 경대승은 자신의 집에 도방을 설치하여 무신들의 동정을 감시하고 유언비어를 엄격히 단속하도록 합니다. 

드라마에서 이 도방의 군사들이 권력자들의 재물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는 홍길동과 같은 일을 합니다. 이 와중에 도방의 군사들에게 저항을 한 어떤 사람이 죽고 맙니다. 이에 경대승에게 좋지 못한 감정을 지닌 자들이 경대승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고 임금에게 건의하고, 경대승이 백성들에게 신망이 두터워지자 이를 두려워한 임금도 경대승을 질책합니다. 

경대승도 처음에는 도방의 군사들이 한 일에 대해 분개를 합니다. 뜻은 좋았으나 방법이 옳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지요. 이에 도방을 해체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때 한 스님 같지 않은 스님이 경대승에게 나타납니다.

경대승은 나라가 평안해지고 백성들이 잘 살게 되기 위해서는 무인들이 정권을 잡기 이전의 상태로 나라를 되돌려 놓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왕권을 강화하고, 무인들은 국방을 지키고, 문신들이 정치를 해야만 나라가 평안해지고, 백성들이 잘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한 경대승이었기에 도방 군사들의 행위에 노하여 도방을 해체하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그 스님은 과연 그것이 진정 백성들이 잘 사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왕권을 회복하고, 문신들이 정치를 하는 무인정권시대 이전의 상태로 돌려놓았는데 과연 백성들의 삶이 윤택해졌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경대승에게 임금에게 충신이 되어 백성들의 삶은 돌보지 않는 자가 될 것인지, 임금에게는 난신이 될지언정 백성들을 삶을 돌보는 자가 될 것인지를 묻습니다. 

이러한 질문들을 받은 경대승은 고민 끝에 황궁에 들어가 도방을 해체하지 않고, 조정에는 난신적자가 될지언정 백성들을 지키는 자가 될 것을 선포합니다. 백성들을 괴롭히고, 비리를 저지르는 자는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는 그의 말대로 문관과 무관을 가리지 않고, 비리를 저지르는 자를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30세의 나이로 병사를 하고, 이의민이 내려와 실권을 잡지요.

로마 공화정 시대에 호민관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공화정 당시 집정관2명이 1년간 국정을 다스렸다고 합니다. 이 집정관에 출마하려면 원로원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집정관 자신이 원로원에 속해 있는 자였기 때문에 백성들보다는 원로원 즉 귀족들의 입김에 따라 국정을 운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호민관은 이러한 상황에서 평민들의 집회에서 선출되어 평민들의 권익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자리입니다. 평민들을 위한 법안을 입안하고, 법안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지요. 이토록 평민 가운데 막강한 권력을 행사 할 수 있는 자리였지만 그렇게 권력을 휘두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요, 다만 호민관의 임기가 끝나면 원로원의 의석이 주어졌으므로 평민층의 젊은이들이 원로원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코스로 호민관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 예외적인 인물들이 있었는데 바로 그라쿠스 형제입니다. 그라쿠스 형제는 원래 귀족 출신입니다. 하지만 평민들의 지지를 받아 호민관이 됩니다. 먼저 호민관이 된 것은 형인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입니다. 

형인 티베리우스 그라쿠스가 호민관이 된 당시에는 로마의 근간이 되었던 자작농이 붕괴되던 시기였습니다. 전쟁을 통해 많은 땅을 얻은 귀족들이 노예들이나 일용노동자들을 이용해 대농장을 만들었기에 평민들은 그들과 경쟁을 할 수 없게 되어 빚은 늘어만 가고 , 토지를 헐값에 대농장주들에 넘길 수밖에 없게 됩니다. 자작농은 소작농이 되고, 소작농은 노예가 되는 상황이 오게 됩니다. 

그래서 먼저 호민관이 된 형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토지개혁법안을 입안하여 원로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를 시킵니다. 그가 입안하여 통과한 토지 개혁 법안은 임차 국유지의 상한선을 회복하고, 그 이상의 토지를 임차하고 있는 자는 국가에 반납하고 국가는 보상금을 지불하고 그렇게 돌아온 토지를 평민들에게 분배함으로써 로마 재정의 근간이었던 자작농을 회복하려고 했었습니다. 이에 덧붙여 가난한 자들이 농촌에 정착 할 수 있도록 보조금을 지불할 것을 추가하였습니다. 

하지만 대지주인 귀족들과 원로원들은 개인에게 보조금을 국고에서 보조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를 합니다. 경기도 교육감인 김상곤 교육감이 학교에 무상 급식을 하려고 하자 반대한 이유와 어찌 이렇게 비슷한지요. 그럼에도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끝내 통과를 시킵니다. 

그런데 이것을 실현하기에 임기 1년은 너무나 짧습니다. 그것을 실현하고자 다시 호민관 선거에 나온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그가 재선에 성공하려하자 그의 반대파들이 개표를 중단시키고, 끝내는 몽둥이로 그를 때려죽이고 그의 지지자들도 죽이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동생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다시 형의 뒤를 이어 호민관으로 선출이 됩니다. 그 또한 형이 못 다한 토지 개혁 법안을 실현하고자 노력합니다. 또한 재판에 공정성을 기할 수 있는 제도들을 마련하고, 로마 식민지 속주의 백성들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게 했습니다. 정치 보복의 관행을 막기 위한 제도도 만들기도 했습니다. 

가이우스도 후에 불행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가 호민관의 임기를 마치고 후에 한 호민관이 토지개혁법안과 반대되는 일을 하려고하자 토지개혁법안을 지키기 위해 평민지지자들을 모아 반대 시위를 합니다. 이에 로마군대가 출동하였고, 시위대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협상을 했으나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중무장한 기사들이 시민들을 학살합니다. 가이우스 그라쿠스는 그것을 차마 볼 수 없어 자결을 하고 말지요.
 

▲ 이명박 대통령의 이른바 '친 서민행보'는 현재까지도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청와대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을 살펴보면 로마의 자작농이 붕괴된 것처럼 우리나라도 경제위기로 중산층이 붕괴되어지고, 차상위계층이라는 내 어린 시절 듣지 못한 계층이 생겨날 정도로 빈곤에 몰리는 계층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실업자는 거리에 넘쳐나고, 언제 실업자가 될지도 모르는 비정규직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희망근로나 인턴과 같은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자리나 만드는 것이 고작입니다. 있는 자들의 세금은 감세를 해주고, 유리지갑 직장인들의 내는 세금은 이런저런 명목을 붙여서 늘리고, 서민들의 한숨은 더욱 늘어만 갑니다.  

서민들의 삶은 어떤 정부가 이 땅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심성 복지는 있었을지언정 적극적으로  서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자 하지는 않았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정부는 바뀌었을망정 서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경대승과 같은, 그라쿠스 형제와 같은 자들입니다. 정권이 바뀌고, 정부가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게 서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 서민들을 지켜낼 자들, 그러한 정치집단이 필요합니다. 

저는 묻습니다. 과연   이 땅에 서민들을 위한 호민관은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들짐승도 날짐승도 저마다 보금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돌아가면 마음껏 쉴 수 있는 곳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은 로마 시민들에게는 햇볕과 공기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집도 없고, 땅도 없이 아내와 처자식들을 데리고 헤매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터에서 그들의 지휘관은 그들을 독려하면서, 너희가 적의 공격으로부터 지키는 것은 너희의 가족과 조상의 무덤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고 속임수였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병사들은 조상을 모실 무덤도 없고, 조상을 제사 지낼 제단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용감하게 싸웠고, 용감하게 죽었습니다. 그것은 그들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의 재산과 행운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로마시민은 이제 승리자이고, 세계의 패권자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로마 시민들은 이제 자기것이라고는 흙 한줌 갖고 있지 않습니다. “-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나오는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의 연설문.

기사입력: 2010/01/16 [18:45]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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