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칼럼]우유로 목욕을 하는 것이 죄인가?
이경석 기자lks@inewsin.com
▲ 이경석 취재부장
대학 초년시절, 지금은 교단에서 은퇴하신 한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시 수업은 기독교의 종교적 윤리에 대한 것이었고, 그 날은 ‘죄’에 대한 강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질문. “우유로 목욕을 하는 게 죄인가? 죄가 아닌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죄가 아니다”라 답했다. 이어지는 질문. “그렇다면, 지구상의 어디에선가 우유를 먹지 못해 굶고있는 아이가 있다면 우유로 목욕하는 것은 죄인가? 죄가 아닌가?”
당시 선생님의 질문은 나름대로 종교적 삶과 윤리의 상층부(?)에 올라있음을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공유하고 있었을 신학도들에게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으로 전해졌다. 십자가 사건에 대한 변명이 신화화 된 ‘원죄’라든가, 주일에 교회에 가지 않는 정도를 종교적 죄악으로 인식하고 있던 당시의 어린 신학도들에게 선생님이 던진 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이후 삶의 방식을 뒤흔들 정도로 지대했다.
최소한의 필요를 채울 수 없어 고난받는 이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필요보다 많은 것을 지니는 것은 분명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 허나 문제는, 오늘날의 사회가 ‘많이 갖는 것’에 대한 신봉이 ‘갖지 못한 이들에 대한 애처로움’을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으로 앞서고 있기에 발생한다. 때문에 무한경쟁과 자본이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세상에서 이런 얘기는 그저 ‘지나던 개가 웃고 갈’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럴 때 오늘의 체제가 내놓는 대안은, 우유로 목욕을 하는 사람이 굶는 아이에게 조금의 우유를 나눠주거나, 아이가 성실히 일을 해서 우유를 사먹으면 될 일이다. 자칫 목욕하는 사람한테서 우유를 강제로 빼앗아 아이에게 줄 경우 ‘빨갱이’가 되기 십상이고, 목욕하는 이에게 “당장 우유로 목욕하는 것을 그만둬라”라고 하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몰지각한 이가 되기 쉽다.
때문에 ‘우유로 목욕하는 것이 죄’임을 느낀 대부분의 ‘우유로 목욕할 수 없는’이들은, 자기들만 먹기에도 모자란 우유를 아이에게 나눠주는 방식을 택한다. 그렇게 조금씩 우유를 못 먹는 아이는 줄어들지만, 그때쯤이면 목욕을 하던 이는 이제 아주 수영을 하게된다. 때문에 한쪽이 나눠도 나눠도 모자를 때, 한쪽은 써도 써도 풍족한 기이한 구조가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우를 당연히 여기거나 더 나아가 “나도 우유로 목욕을 하고 말테야”란 동경을 갖게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뭐가? 당연히 문제를 유발시킨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애당초 ‘우유로 목욕을 하는’이가 없었다면 이런 골 아픈 현상은 일어나지도 않았다. 우유를 마시는 것까지 탓할 수는 없다. 다만, 내 가진 것을 내 맘대로 쓰되 적어도 보편 타당한 윤리적 잣대정도는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나고 다이어트에 혈안이 된 사회구조에서 먹을 것이 없어 죽어 가는 이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무슨 이리 뻔한 얘기를 하냐는 이도 있겠다. 그런데 세상은, 뻔히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도 선뜻 움직여지질 않는다. 때문에 이런 아주 기초적인 윤리를 누군가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꾸자꾸 얘기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나는, 꽤 자주 지난날 선생님의 강의를 떠올린다. 그러면 대부분, 내 삶의 태도가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2006년 01월 25일 (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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