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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칼럼] 빼빼로가 가슴을 찌른다

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0. 2. 21.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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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칼럼] 빼빼로가 가슴을 찌른다  
 
 
 
이경석 기자lks@inewsin.com
 
▲ 이경석 취재부장  

 
지난 11월 11일은 언제부턴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꼭 지켜야 할’기념일이 되어버린 ‘빼빼로 데이’였다. 90년대 중반 부산 및 경남지역 여중·고생들이 ‘다이어트 성공’을 기원하며 날씬한 모양새의 숫자 1이 네 번 겹치는 11월 11일에 롯데제과 ‘빼빼로’를 주고받은 데서 시작됐다는 이 날은 이후 롯데제과가 이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전 국민적 기념일이 됐다.

학생들은 등교 길에 가방 한가득 빼빼로를 챙기기 시작했고, 연인들 사이에선 깜빡 했다간 자칫 큰 화(?)를 면치 못하는 날이 됐다. 직장인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날만큼은 사무실 책상 위에 공공연히 과자가 돌고, 백화점이고 구멍가게고 할 것 없이 쌓아놓은 빼빼로 박스를 쉽게 볼 수 있다. 기념일 특수를 겨냥한 특별한 상품도 등장했다. 그럴싸한 포장으로 치장했거나 유명 제과점에서 수작업으로 만든 빼빼로는 값이 무려 1∼2만원에 달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얄팍한 상술로 잇속을 챙기려는 이도 생겨났다. 지난해에도 이 기간을 노려 유통기간이 1년이나 지난 과자를 유통시킨 업자가 적발되기도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거리에는 국적 불명의 색다른 빼빼로 형(?) 과자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이렇듯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있는 빼빼로 데이의 가장 큰 수혜자는 누굴까. 아쉽게도 날씬한 몸매를 소원하는 여중생도, 사랑에 행복한 연인들도 아닌 과자업계의 큰 손 롯데제과다. 롯데제과의 지난 두 달 간 빼빼로 매출액은 무려 200억원. 연간 판매량의 절반에 달하는 수치며, 여기에 비슷한 모양을 가진 과자들의 매출까지 합하면 시장규모는 약 4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왜 이날 빼빼로를 구입해야만 하는지 알 길은 없더라도, 그저 남들이 다 하니까 그런가보다 하더라도, 몇 백 원짜리 빼빼로 하나에 따뜻한 정을 나누고 잠시나마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나름대로 괜찮은 이벤트라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마음 한구석은 불쾌하다. 이유인즉슨, 학생들의 순수하고 깜찍한 이벤트의 상업적 변질과 사람과 사람의 정을 나누는 기념일까지도 잠식해버린 자본의 놀라운 지배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강력한 선동장치인 미디어를 장악한 거대기업은, 애정과 우정과 존경과 신뢰를 초콜릿 입힌 막대과자로 바꿔놓는데 성공했다. 때문에 날씬 길쭉한 막대과자는, 애정의 상징이기보단 세상만사를 상술로 꿰어내는 날카로운 창이 되어 가슴 한구석을 콕콕 찔러댄다.

‘빼빼로 데이’에 묻혀 영 제 역할을 못해낸 이름이지만 11월 11일에는 ‘농업인의 날’이란 또 다른 이름이 존재한다. 1996년, 대한민국 정부는 ‘농업이 국민경제의 근간임을 국민에게 인식시키고 농업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해’ 매년 11월 11일을 농업인의 날로 제정했다. 국민들의 기억에 막대과자보다도 못한 농업인의 날 이었지만, 빼빼로 열풍의 부작용이 지적되는 통에 곁다리로라도 이름이 알려져 아주 잠깐이라도 이 땅 농가의 고단함이 기억되길 바란다. 평생을 땅과 부대끼며 우리 먹거리를 생산해 온 고향 땅 농부의 거친 손마디와 삶은, 초콜릿 입힌 막대과자보다 당연히 달콤해야 한다.   

 
 
 
2005년 11월 14일 (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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