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국의 글밭 2011-179
아이들이 있는 풍경-1
박 종 국
날마다 출근하면 하는 일이 뻔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은 아니지만 여느 날이나 비슷합니다. 먼저 교무실에 들러 하루 학교일과를 갈무리해두고 곧장 교실로 향합니다(필자는 3년째 부곡초등학교에서 교무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교실을 향하여 긴 복도 끝을 바라봅니다. 저만치서 왁자지껄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먼저 반깁니다.
우리 반 이연서가 칠판에 그린 제 모습임니다
아침 시간 담임이 없는 교실은 그야말로 난장판입니다. 담임이 들어섰는데도 신명나는 아이들의 놀이는 멈추지 않습니다. 열 명이 사용하기에 널따란 교실은 운동장입니다. 축구공 서 개가 굴러다닙니다. 남자아이 여자아이 갈릴 것 없이 공 몰이에 열중하고 있습니다(사실, 우리 반 아이들의 경우 남자아이들보다 여자아이들이 더 공차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지난 달에 생일을 맞은 한 여자친구에게 반 친구들이 축구공을 선물했을 정도입니다.).
우리 반 말괄량이 이연서의 예쁘장한 모습
제지를 시킬 생각도, 뜯어말릴 재간도 없고 해서 내 자리에 앉아 연필을 깎습니다. 어제 또박또박 눌려 쓴다고 닳은 연필 다섯 자루를 다 깎았는데도 아이들은 여전히 공차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그래도 전혀 개의치 않고 내 할 일만 합니다. 그랬는데 반 아이들 중에서 눈치가 예사롭지 않은 연서가 다가와 알랑방귀를 뀌어댑니다(연서는 자그마한 몸집이어도 성격이 시원시원해서 무엇을 해도 막힘이 없고 붙임성이 좋습니다.). 아이들 공 그만 찼으면 좋겠다고 살짝 귀띔을 해주었더니 그새 녀석이 손나팔을 붑니다.
아침시간 제가 깎은 연필입니다
화들짝 놀래킨 아이들은 우당탕 제자리를 찾아듭니다. 교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합니다. 하나하나 눈빛을 마주쳐보지만 녀석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치미를 뚝 땝니다. 어쩝니까. 오늘도 내가 접어주는 수밖에는 별도리가 없습니다. 연필을 깎다말고 동시 한 편을 권냅니다. 오늘 우리 반 아이들이 외울 동시는 강지인 님의 ‘우리 집 밥상’입니다. 아이들 동시를 받아들자마자 햇병아리 같은 입술로 냅다 동시를 외웁니다. 동시 읽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교실 가득 채웁니다.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 집 마루에
낡고 오래된 쪼그마한 밥상,
우리 집 네 식구
밥도 먹고 숙제도 하고
아빠 쉬는 날엔
바둑도 두고 팔씨름도 한다.
튼튼하고 큰 걸로
새로 사야겠다고 하시면서도
삐걱거릴 때마다 아빠는
탕탕탕 못질을 하시고
틈만 나면 엄마는 반짝반짝
행주질을 하신다.
그래서 갈수록
더 튼튼해지고 반짝거리는
낡고 오래된
우리 집 밥상.
_‘우리 집 밥상’ 강지인 모두
참, 저희 반 아이들은 샤프나 볼펜 따위는 쓰지 않습니다. 오직 연필로만 글을 씁니다. 연필 끝에서 전해지는 그 느낌, 그게 바로 감성교육입니다. 그리고 지우개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틀린 글자, 비뚤어진 글자가 있어도 그냥 씁니다. 지우개 똥이 얼마나 해롭습니까. 2011. 0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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