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국의 글밭 2011-182
호랑이 없는 굴에 토끼가 왕 노릇한다
박 종 국
고학년 학생들이 수련회를 떠났습니다. 학교에는 유치원 꼬맹이들과 1․2학년 아이들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내일 학교는 2학년 아이들이 맏형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부터 짐을 꾸려 수련장으로 떠나는 고학년 아이들이나 먼발치서 부러워하는 눈빛을 보내는 저학년 아이들도 달떴습니다. 담임 마음 같아서는 수련회에 합류시키고 싶었으나 학교교육과정 상 더 이상 욕심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오전 10시 고학년들이 수련장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렇잖아도 많지 않은 학생들 채 서른 몇 정도 남으니까 더욱 휑합니다. 남아 있는 전담선생님과 세분 분의 선생님들의 마음도 많이 허전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교실에 들어서도 선뜻 책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반 아이들도 공부하고픈 마음이 아닌 듯 했습니다. 그래서 특설단원 수업으로 ‘친구의 장점 찾기’를 하였습니다. 거의 매주 월요일마다 돌아가며 친구의 장점을 찾아 말해주기를 하였기에 아이들 조그만 하나도 드러내어 친구를 부추겨줍니다. 자신의 강점이 많은 아이들일수록 다른 친구들에게 긍정의 이야기들을 많이 해줍니다.
그렇게 두 시간 시업을 끝내고 나니 아이들 하나의 제안을 합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관심 갖고 들어 줍니다.
“선생님, 우리 셋째시간에는 밖에 나가 공차면 안 될까요?”
“안 될 거야 없지. 그런데 날씨가 무척 더운데….”
“예, 고맙습니다.”
채 말이 끝나기 전에 아이들은 교실을 박차가 나갔다. 날씨가 무덥다. 아침에는 안개가 짙어 다소 우중충했는데, 지금은 말끔하게 개었다. 운동장에서 뿜어나는 열기가 대단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호랑이가 없는 운동장을 토끼들이 냅다 뛰고 달리고 있다. 여느 때 같으면 저학년 아이들이 운동장을 독차지 하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다. 토끼들을 교실에 앉혀놓고 교과서를 달달 외는 것도 좋지만 오늘 하루쯤은 토끼들이 왕 노릇하게 배려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아이들 하나둘 나무그늘로 안겨든다. 온통 땀범벅이다. 얼굴아 발갛게 농익었다. 날마다 고학년 언니들에 떠밀려 운동장 한쪽 모퉁이에서 공 차던 이력이 넓은 운동장을 감당하지 못하나보다. 숨을 헐떡이며 벤치에 길게 드러누웠다. 잠시 땀을 식혔다가 수돗가로 데리고 가서 얼굴을 씻었다. 하지만 물을 만난 아이들 장난기가 넘친다. 옷을 입은 채 머리를 감고, 숫제 옷을 입은 채로 물 덤벙이 되었다. 물을 튀긴다. 급기야 반 아이들 거의 다 옷이 젖어 버렸다. 그래도 마냥 즐겁다고 깔깔대는 아이들 머리 위로 따스한 햇살이 가득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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