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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춘추]북한 쓰기, 북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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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1. 12. 2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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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춘추]북한 쓰기, 북한 읽기  
김정일 사망, 언론 선정적 글쓰기보다 영리한 북한 읽기 필요 
 
데스크승인 2011.12.21    원용진 서강대교수 | webmaster@idomin.com    
  
김정일이 사망했다. 차분할 거라 예상하지 않았지만 우려대로 언론이 추측 보도를 쏟아낸다. 정보 부재에 시달렸다는 증거가 확실하지만 뉴스 생산에는 거침이 없다. 추측 보도를 경계하는 눈초리들이 있긴 하지만 거침없음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이다.

 

정보 부재인 상황에서 뉴스를 생산하는 요령은 뻔하다. 전문가에 기대어 추측성 뉴스를 생산하는 방식이 그 첫 번째다. 북한 전문가들조차도 정보 부재에 허덕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그들의 입에 기대길 마다치 않는다. 두 번째는 외신에 의존하는 일이다. 외신들도 정보 부재 상태에 놓여 있었고, 오히려 한국보다 전문가 부재에 시달리지만 외신을 옮겨다 싣는 일에 언론은 분주하다. 세 번째는 길거리 여론을 훑는 일이다. 복화술처럼 자신들이 하고픈 바를 길거리 대중의 입을 빌려 뉴스로 변신시켜낸다.

 

이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한국 뉴스는 다시 외신을 타고, 외국 전문가에 읽힌다. 국내외 언론들이 교차 인용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몇 번 인용이 오가면 누가 한 말인지, 그 정보 근원이 어딘지 불분명해진다. 외양으로는 풍성해졌지만 속으로는 책임성 사라진 뉴스가 되고 만다. '집단 지성'으로 만들어진 뉴스가 아니라 정보가 부재한 주체끼리 생성한 '집단 상상'이 될 공산이 크다. 매일 정해진 분량만큼 뉴스를 채워야 하는 숙명의 언론으로서는 그런 방식으로라도 뉴스를 생산하는 것에 익숙해 큰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한국 언론의 무리수를 걱정하는 이유가 있다. 이제 막 시작한 종편은 낮은 시청률에 시달리고 있다. 종편 방송과 자매회사인 일간지들도 신뢰나 영업 면에서 어렵긴 마찬가지다. 김정일 사망과 같은 큰 뉴스는 그들의 부진을 일거에 만회할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놓칠 리가 없다. 어차피 모두가 정보 부재에 시달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놓여 있음에 착안해 안보 상업주의를 발휘할 태세다. 모두를 큰 위험에 빠트릴 호전성까지 내보였던 전력에 비추어 그럴 가능성은 클 수밖에 없다.

 

국내 거대언론들의 안보상업주의와 선정적 호전성을 경계하지만 성공적으로 막아낸 경험은 없었다. 경계하는 눈초리를 거뜬히 넘어서서 거대언론은 그 기획을 펼칠 것이다. 그들에게 아직도 환호하는 집단이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며 정보 부재로 흔들리는 대중을 끌어안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치기 때문이다. 벌써 공명을 일으키듯 남의 초상집에 험담을 퍼붓는 악설들이 여기저기 터져 나오고 있다. 자중·신중·예의를 말하는 쪽에는 이미 험악한 고성의 화살이 날아들고 있다.

 

언론의 뉴스 만들기, 기사 쓰기엔 더는 해줄 말들이 많지 않다. 이미 많은 교훈이 있고, 안보상업주의나 호전성을 경계해야 할 당위성은 충분하다. 그럼에도, 그를 지키려 하지 않을 것이니 만들기와 쓰기엔 부탁의 의지가 서지 않는다. 그래서 뉴스 읽기로 방향을 선회한다. 꼼꼼한 읽기로 상업주의와 선정주의를 외면하고, 신중함과 엄격한 정보중심주의로 돌아서는 독자로 기대의 방향을 튼다. 김정일의 사망은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미래와 관련된 엄청난 사건이다. 그런 사건을 몇몇 거대 언론의 부추김에 흔들려 자신의 의견을 쉽게 던져버려서야 될 일일까.  

김정일 사망 뉴스들을 앞에 펴놓고 천천히 복기해보는 지혜를 발휘해보자. 과거 김일성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우린 어떤 태도를 취했고, 그 태도가 합당했던지를 상기해보고, 북한 관련 큰 보도에 우리가 얼마나 흥분했으며 그로 말미암아 얼마나 이득이 되었던지를 되돌아보자. 흥분되고 선정적 북한 쓰기를 냉소하고 냉철하고 영리한 북한 읽기가 필요한 때다.
 
출처 : 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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