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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사소한 일에 분개하는가

박종국에세이/박종국칼럼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2. 5. 1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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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의 일상이야기 2012-120


나는 왜 사소한 일에 분개하는가


박 종 국(교사, 수필가)


아침에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아름다운 글을 만났다.

가슴이 찡하다. 부부가 서로를 지극히 이해하고 배려하는 삶이라면 세상 그 어떤 게 부러울까?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종잡아야 하는 부부와는 확연히 다른 삶의 태도다. 자기 방편만을 먼저 챙기는 부부는 오래 가지 못한다.  

 

출근길에 있었던 일이다.

옆 차가 바짝 붙어 지나가면서 내 차 문짝을 ′찌익′ 긁어 놓고 말았다.

나는 즉시 차를 멈추었다.

상대편의 차를 운전하던 젊은 부인이 허겁지겁 내리더니 내게 다가왔다.

많이 놀랐는지 얼굴빛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미안합니다. 제가 아직 운전에 서툴러서요. 변상해 드릴게요.˝

그녀는 잘못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자기 차 앞바퀴가 찌그러진 것을 알게 되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틀 전에 산 새 차를 이렇게 찌그러뜨려 놓았으니 남편 볼 면목이 없다며 계속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도 그녀가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사고 보고서에는 운전면허증과 보험관계 서류 등에 관한 내용들을 함께 기록해야 하기 때문에 그녀는 필요한 서류가 담긴 봉투를 꺼내려고 운전석 옆의 사물함을 열었다.

그리고는 봉투 속에서 서류들을 꺼냈다.

  ˝이건 남편이 만약의 경우를 위해서 필요한 서류들을 담아둔 봉투예요.˝

그녀는 또 한 번 울먹였다.

그런데 그 서류들을 꺼냈을 때 제일 앞장에 굵은 펜으로 다음과 같은 커다란 글씨가 적혀 있는 게 아닌가.

  ˝여보, 만약 사고를 냈을 경우에 꼭 기억해요. 내가 가장 사랑하고 걱정하는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라는 사실을.˝

그녀의 남편이 쓴 글이었다.

내가 그녀를 다시 쳐다보았을 때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남편의 무한한 사랑이 흠뻑 느껴지는 글이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읽으며 낯 뜨거워진다. 예전의 나는 분명 물 텀벙 같이 너그러웠다. 근데 지금 바늘 하나 꽂을 데도 없을 만큼 냉정하다. 사는 게 팍팍해서가 아니다. 내 속아지가 간장종지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결코 같잖은 일을 두 번 다시 번복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봄철답지 않게 비 흩뿌리던 하늘이 말갛게 개었다. 그런 까닭에 오늘 아침 출근길은 기분이 상쾌했다. 길섶에 활짝 팬 찔레꽃잎이 유난히 하얗게 도드라져 보였다. 교실에 들어서자 반갑게 맞아주는 아이들의 웃음이 유다르다. 이런 맛에 사는 거다.


잠시 일과를 준비하면서 상념에 젖는다. 한동안 찜찜했던 기분을 다 접어두고 좀 더 느긋하게 마음 추슬렀다. 우선 나한테 너그러워져야겠다. 자신을 비하하고선 남을 존중할 수 없다. 세상을 보다 미덥게 살아야겠다. 창밖 느티나무 이파리가 눈이 시리도록 짙푸르다. 그 싱그러움으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 어떤 해묵은 분개함이 삭혀지지 않는다. 2012.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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