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껄끄러운 스승의 날을 보내고

박종국에세이/박종국칼럼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2. 5. 1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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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의 일상이야기 2012-125


껄끄러운 스승의 날을 보내고


박 종 국(교사, 수필가)


스승의 날, 교사인 나에게 평상시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참으로 불편한 하루를 보냈다. 이런 기분은 우리학교 동료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지금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농촌지역 학교다. 으레 시골학교가 그렇듯이 아이들 사는 형편이 비슷해 누구네 집 밥숟가락이 몇 갠지 어느 집 강아진지 손금 보듯 훤히 꿰고 지낸다. 그렇기에 익명성을 요하는 도회지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때문에 어떤 비밀스런 이야기도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학교는 어린이날도 데면데면하게 보냈다. 우리 반의 경우 아이들 선물 하나 없었다. 그런데 스승의 날이라 해서 별스런 일이 생길 까닭이 없는 것이다. 한데도 오전 내내 학교를 출입하는 낯선 사람에게 신경이 쓰였다(모두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전날 억지로 청렴선서를 한 낯 뜨거움 때문이었다. 꼭 그렇게까지 교사의 자존심을 뭉개야했을까? 스승의 날 아이들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온다고? 촌지가 꾸러미로 쏟아진다고? 지레 짐작으로 놀랄 일이 아니다. 덕분에 괜히 마음 조려가며 하루를 보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정말이지 내 반에는 아이들이 건네는 꽃 한 송이, 손수건 선물 하나 없었다).


나는 일개 선생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장이 결정하는 사항에 대해서 갑론을박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하는 마음에 기분이 씁쓰레했다. 대체 우리 학교는 촌지와 전혀 무관한데 스승의 날이라고 해서 의례적으로 단정하는 일에 휩쓸릴 까닭이 없는 것이다. 이는 도회지 학교도 마찬가지 일거다. 특별(?)한 몇몇 교사와 학부모가 암묵적으로 건네는 추잡한 사안을 두고 전체 교사 운운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런데도 스승의 날을 그대로 두어야할까? 국가지정 공휴일도 아닌 별단 행사를 숱한 문제점이 노정하는데도 그냥 방치하는 저의가 있는 걸까? 세상 교사들 다 모아놓고 물어보라. 스승의 날 없애는데 반대하는 사람 있는지. 분명 정부나 교육행정 당국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그 폐단을 간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여 이번만큼은 모르쇠로 일관하지 말고 폐지하는 게 마땅하다. 스승의 날 즈음이면 그 뭐랄까. 마치 뒤를 닦지 않은 것처럼 찜찜하고 불편하다.


오늘 아무 일 없었다. 단지 제자들한테 무시로 문자메일이 이어진 것 말고는, 다행이다(그래도 성장해서 사회일각에서 열심히 제몫을 다하고 있는 제자들은 꽃바구니를 보냈다. 그들은 1989년 담임을 맡았던 첫 제자들로 올해 불혹의 나잇살을 가진 중년 학부모들이다. 그들은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잊지 않고 꽃바구니를 보낸다, 변함없는 그들의 사랑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제자한테 꽃바구니 받은 것도 잘못이라면 죄 값 단단히 받겠다.


이제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스승의 날은 지났다. 후련하다. 하지만 하루 내내 영 기분이 개운치 않다. 아직도 아이들은 스승의 날에는 선생이 선물  받는 날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아이들 무슨 생각하며 하루를 보냈을까. 그나저나 못난 담임 잊지 않고 제자들에게서 전해오는 건강한 안부로 기분이 참 좋았다. 2012.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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