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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은 스승의 날을 왜 고집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2. 5. 1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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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의 일상이야기 2012-123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스승의 날을 왜 고집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박 종 국(교사, 칼럼니스트)


벌써 야무지게 익은 보리 알곡들이 툭툭 불거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들판에 자지러지게 핀 풀꽃들이 조붓한 어께로 다가듭니다. 때맞춰 양파 거둬들이는 일손이 바빠집니다. 못자리 감자밭 건사하랴 부엌 부지깽이도 거들겠다고 나설 참입니다. 무논 개구리 떼 토닥거리는 짓이 사뭇 귀엽습니다.


아이처럼 해맑게 인사를 합니다. 날마다 만나지만 어제와는 또 다른 얼굴입니다. 근데 반 아이 둘이 난 화분을 안기려듭니다. 좋게 얘기해서 되돌려 보냈습니다. 전체 아이들에게도 분명하게 전했습니다. 내일 스승의 날이라고 그 어떤 것도 손에 쥐고 오지 말라고. 내게 스승의 날은 없다고. 굳이 고맙다고 꽃을 선물하려면 내년 졸업식 날 감사편지 한 통 쓰라고 했습니다. 그것이면 난 만족합니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의례적인 겉치레’가 스멀댑니다. 물론 선생님의 가르침에 조그만 정성을 내보이는 게 그다지 나쁠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스승의 날은 아이들 부모입장에서 차마 떨쳐내기 어려운 일입니다. 다행스럽게 제 반 아이들은 그런 담임의 마음을 잘 곧지 듣습니다. 몇몇 아이가 스승의 날을 앞두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또박또박 눌러 쓴 편지를 권내주고는 귓불 붉힙니다. 채 두어 달 같이 생활했을 뿐인데 편지 속에 묻어나는 아이들 마음은 결코 짧은 부대낌이 아니었나 봅니다. 친절하게 챙겨 주셔서 고맙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해마다 스승의 날 교사들은 데면데면하고 불편합니다. 배앓이 하듯 며칠 전부터 속이 좋지 않습니다. 유독이면 스승의 날을 즈음해서 불거지는 잡음 때문입니다. ‘촌지 선물’이라는 능구렁이가 또 너물 댑니다. 아니나 다를까 수구보수 언론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전체 교사를 매도하며 까발립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생님은 그런 것 개의치 않습니다. 이제 교사들은 사회 어느 계층만큼 밥 먹고 삽니다. 한데도 몇몇 덧난 교사들이 교육이란 우물을 흐려놓습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된장 못 담굽니까. 그렇지만 달가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애써 선생대접 받고픈 마음은 갖지 않지만, 교사라는 덤터기로 아닌 밤에 홍두깨로 뒷덜미를 얻어맞는 것 같아 속상합니다.


대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스승의 날을 왜 고집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원래 스승의 날의 제정 취지가 군사정권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듯이 태생적 한계가 께름칙한 틀은 바로 잡아야 합니다. 한때 교사들을 군홧발로 짓밟고, 정권의 나팔수로 길들였던 군사문화의 산물인 스승의 날을 유지하지는 그 까닭을 알 수 없습니다. 교사들은 스승의 날이라며 부추김 받는 것을 달갑니 않습니다. 아예 없앴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만큼 스승의 날 하루가 교사로서 떳떳함보다는 스스로 비굴해지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사회정의가 바로 섰으며, 국민의식 수준은 물론, 자존의식도 높아졌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구태의연한 통과의례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것은 모두에게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이십대 햇병아리 교사가 어느덧 지천명의 교사가 되었습니다. 근데도 아직 우리 교육현장은 그다지 달라진 게 없습니다. 판에 박은 듯한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교육현장은 열악한 모습 그대로 아이들을 강제하며 또 다른 아픔만 더해가고 있습니다. 교육이 변해야 나라가 산다고 했는데 그저 안타깝습니다.


달갑잖은 스승의 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간곡히 바랍니다. 탈 많은 스승의 날을 당장에 없앴으면 좋겠습니다. 대신에 국제노동기구(ILO)에 규정되어 있듯이 ‘노동자의 날’처럼 이 땅의 모든 교사들이 주체적 자존의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교사의 날’을 제정하여 최소한 그 날만큼이라도 교사로서 자긍심을 되새겨볼 수 있는 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스승의 날이란 빌미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자기 직분에 헌신하는 교사들을 욕보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교사로서 사는 삶이 당당했으면 좋겠습니다. 꼭 그런 바람이 이뤄지기를 소원합니다. 2012.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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