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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서가의 빈 책장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6. 1. 12.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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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서가의 빈 책장 


핀란드 헬싱키에서 만난 한나 수오넨에게 들은 이야기다.
작은 무역 회사에 다니는 한나는 용돈의 반 이상을 책 사는 데
쓸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
애서가 동호회에도 가입했다. 애서가들의 꿈 중 하나는 이것이다.
‘더 많은 책을 갖고 싶다.’
어느 날 동호회 회장 렌의 아파트에 방문한 한나는,
집 안을 가득 채운 책을 보고 놀랐다.

“이 정도 책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노박 선생님에 비하면….”
얼마 뒤 한나와 렌은 노박 선생의 전원주택에 갔다.
단층 실내는 책장으로 가득했다.
지하실에도 여기저기 책이 쌓였다.

“지난달에 오피스텔을 하나 얻었지. 책 둘 곳이 없어서 말이야.”
“책이 정말 많네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한나에게 노박 선생은 말했다.


“라이넨 교수는 한술 더 뜨지.
3층 건물을 사서 책만 들여놨다니깐.”
한나는 그 건물을 구경하고 싶었다.

며칠 뒤 한나와 렌은 라이넨 교수의 건물을 방문했다.
라이넨 교수는 만날 수 없었지만, 미리 허락을 받은 상태라
여직원의 안내로 건물을 훑어보았다.
서가는 듀이 십진법에 따라 분류되었다.
0은 총류, 1은 철학, 2는 종교….
3층은 역사 서적으로 가득찼다. 한나와 렌은 놀라며 물었다.
“모두 몇 권이나 되나요?”
“4만 권쯤 될걸요.”

하루에 한 권씩 109년 동안 읽을 분량이었다.
건물을 나오려는 그들에게 여직원이 쪽지를 건넸다.
“교수님이 드리라고 했어요.”
쪽지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진짜 장서가는 따로 있다네. 빌렌 선생. 555-1234-5678.”

전화를 걸자, 빌렌 선생은 흔쾌히 방문을 허락했다.
둘은 선생을 찾아갔다.
“어서 오게.”
10평 정도 되는 사무실에는 삼나무 향기가 나는
책장 십여 개가 다닥다닥 붙었다.
그런데 책장이 군데군데 비었다!
빌렌 선생과 두 사람은 책 이야기를 나누며 차를 마셨다.
“책을 좋아한다고?”
“네.”
“다행이구먼. 요즘 젊은이들은 책을 안 읽어. 그런데
나는 책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야. 집과 사무실에
책이 전부지.”

한나는 조심스레 서가를 훑어보았다.
세 번째 서가에 빌렌 선생의 책이 꽂혔다.
“저건….”
“응, 내가 지은 책들이야. 30권쯤 되나?”
“정말 책을 많이 쓰셨네요.”
“그냥, 다 허풍이야. 하하하.”
빌렌 선생은 말했다.
“여기 있는 책들 중 맘에 드는 거 골라서 가져가.”
“네?”
“어서, 나는 또 공부해야 하니까. 힘들 좋으니 10권씩 가져가.”

한나와 렌은 책을 골라 들었다.
고맙다고 인사하며 한나가 물었다.
“이렇게 많이 가져가도 돼요?”
“괜찮아. 위장도 비워야 채우지. 책장도 빈 곳이 많아야
자꾸 새 책으로 채우고 싶거든.”

두 사람은 두둑해진 가방을 메고 건물을 나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나는,
누가 진짜 책 부자인지 알았다.
한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서재를 방문하는 사람에게
책을 나눠 주었다.
진정한 애서가의 서가는, 조금은 비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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