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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살아나는 말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7. 3. 2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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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살아나는 말


박 종 국

 

엳아홉 살 아이들이 학교담벼락에 모였다. 잔뜩 흐린 날씨인데도 개의치 않고 말 타기에 바쁘다. 또래같지만 개중에는 머리 하나 더하는 아이도 끼었다. 똑같은 조건이나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적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이 생겨난다. 그러니 자연 말품이 거칠어지고, 남 탓도 심해진다. 순간, 서로 치받으며 얼굴을 붉히고 만다.

 

어른의 삶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뻔히 아는 데도 남을 헤아리지 못한다. 칭찬을 하면 말하는 사람의 겸손한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지고, 험담을 하면 그 사람의 거칠고 흉한 모습이 그려진다. 어떤 말이고 말하는 사람의 뜨악한 모습이 서로의 가슴에 깊이 남는다.

 

좋지 않은 말을 하면 나쁜 그림이 그려지고, 결국엔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괴로워진다. 하여 참으로 소중한 말은 '사랑한다'는 말보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배려여야 한다.

 

팍팍하게 살아도 남의 속아지를 더 잘 챙기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하느님은 부자가 천당 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보다 더 어렵다고 했을까? 저보다 못한 사람을 향한 나눔의 손길이 잦으면 스스로 행복해진다. 사람이 아름다울 때는 소중한 나눔이 꽃필 때다.

 

너 나 되어보라고 했다. 서로 상대자가 되어 보면 여태껏 엉켰던 감정의 실타래가 솔솔 풀린다. 입장 바꿔 보면 몰이해의 칼날은 그렇게 날카로운 덫은 아니다. 그러나 비열하게도 우린 사는 세상 일 실로 낯 뜨거운 일이 많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반사되는 내 모습이 나의 참모습이다. 혼자만 판단하고 평가해서 얻은 내 모습은 그냥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남이 그 말 그대로 믿고 따라 줄거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말을 통해 그 사람을 아는 게 아니라 평소 행하는 그의 태도와 행동을 통해서, 그의 평판을 통해 알게 된다. 무시로 쏟아내는 그 사람의 말을 통해 판단한다. 불혹의 나잇살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했다. 그 말은 ‘타아(他我)보다 진아(眞我)를 부시는데 신중하라’는 일침이다.

 

타인을 통해 나를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타인이 나의 거울'이라는 말은 남을 통해 자신을 볼 때 스스로를 더욱 선명하게 본다는 얘기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이기에 좋지 않은 일은 모두 ‘다른 사람의 몫’이 되고, 드러내놓고 싶은 일은 모두 ‘내가 발현한 일’처럼 착각에 빠진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남을 배려하기 위해 빚은 마음의 그릇이 작기 때문이다.

 

흔히 '성공한 사람'을 만나면 그 솔직담백함에 놀란다. 그들은 조그만 일 하나라도 그저 빙빙 돌려서 말하지 않고, 어떤 일이든지 투명하게 말한다. 말이 많다는 사실은 그만큼 가려 쓸 말이 적다는 뜻이다. 인생을 아낌없이 소화하고 산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전부 드러내놓고 쉽게 말한다. 어렵게 살지 않고 단순하게 산다.

 

그럼에도 사랑한다고, 너 없으면 못산다고 목을 매는 사람들이 얼굴을 붉히는 이유는, 자신이 쏟아놓은 말 때문에, 말을 앞세웠던 까닭에 자신을 솔직하게 가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 일 서로의 고통을 헤아려 주는 따뜻한 말 한 마디면 모든 게 푸근해진다.

 

하여 기분이 살아나는 말은 생활 전반에 걸쳐 친밀한 대화의 봇물이다. 말과 행동은 그 자체로 그 사람의 인격이 되고 성품이 된다. 그렇기에 마음과 생각이 곧 말이어야 하고, 자기가 한 말로 인해 다른 사람이 아파하지 않아야 한다.

 

상대를 무시하거나 윽박지르는 말, 상스러운 말을 거두어야 한다.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 한마디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평생을 두고 잊혀지지 않는 감정 응어리로 남는다. '사랑한다’는 말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애써 고민할 까닭이 없다. 내 생각을 그대로 투명하게 전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박종국에세이칼럼2017-16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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