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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봄바람 저편에 흔들리는 완장 이미지 

세상사는얘기/다산함께읽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7. 4. 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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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봄바람 저편에 흔들리는 완장 이미지 



유 지 나 (동국대 교수, 영화평론가) 

 

    이제 무거운 코트를 벗고 걸어가는 출근길은 봄구경 산책이기도 하다. 큰 가지에서 벗어나 기지개 켜는 목련 봉오리를 지나니 노란 꽃 잔치가 벌어진다. 도처에 늘어진 개나리 무리, 돌 틈새로 피어오르는 민들레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런 다양한 꽃들을 보라고 권하는 ‘봄’을 절감한다. 유독 노란빛이 이 봄엔 강한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천일 넘게 잠겨있던 세월호가 서서히 올라와 진도에서 목포로 가는 여정이 내겐 노란빛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리라. 아파도 절망에서 희망으로 항해하는 노란빛의 변화를 매일 목격하는 새로운 봄이다.

 

국군 아들을 둔 외할머니, 빨치산 아들을 둔 친할머니 

 

   이런 노란 물결 저편에 태극기 완장도 보인다. 연쇄반응일까? 완장 기호가 나부끼는 영화들이 연이어 기억 세포를 자극한다. 먼저 윤흥길의 소설을 각색한 〈장마〉(1979, 유현목)가 떠올라 다시 보았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소년 동만의 시점을 따라가는 이 작품에선, 동만의 서울 외갓집이 시골 친가로 피난 내려가 같이 지내는 장마철 일상이 펼쳐진다.


    ‘우르릉~ 쾅쾅~’하며 퍼붓는 장맛비 속에서 외할머니는 이가 빠지는 악몽을 꾼다. 이어 대나무 숲에서 지내다 국군으로 전쟁터에 나간 외아들의 전사통보가 전해진다. 이 사건 후, “빨갱이는 다 죽으라”는 외할머니의 탄식을 접하며 피난처로 사랑채를 내준 친할머니는 마음이 불편하다. 마을에서 완장 차고 의기양양해 하다가 빨치산으로 떠난 둘째 아들에게 이 저주가 갈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피난처를 내주며 노친네끼리 서로 보듬고 잘 지내자던 호의는 돌변한다. 한쪽은 국군 아들, 다른 한쪽은 빨치산 아들을 둔 사돈지간인 두 할머니는 서로 원망하며 종교적 주술에 의존한다.


    빨치산 아들이 돌아온다는 점쟁이의 예언을 (그 어머니인) 친할머니만 믿는다. 아니나 다를까? 예언의 그 날, 커다란 구렁이가 집안에 들어온다. 구렁이를 아들의 혼령으로 여긴 친할머니는 실신해 버린다. 빨갱이를 저주했던 외할머니는 구렁이를 사돈의 아들로 대접하며, 머나먼 저승길 잘 가시라는 제의를 정성껏 수행한다.


    두 손 모아 비는 외할머니의 소리를 멀리서 들은 친할머니는 그간 내뿜던 증오감을 후회하며 용서를 청한다. 전쟁의 광기가 만들어낸 벽을 허무는 진정한 사과의 효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유신 말기 제작된 영화이기에, ‘반공영화’ 체취가 풍기지만, 이런 결말은 현재진행형 역사쓰기의 희망처럼 보인다. 


완장 권력에 주눅 들지 않는 저항의 힘이 있기에 

 

   〈라콤 루시앙(Lacombe Lucien)〉(1974, 루이 말)도 나치 치하를 배경으로 완장 심리를 해부해낸다. 1944년 프랑스 남부 작은 마을. 라콤은 부모 없이 할머니와 외롭게 살며 레지스탕스가 되려는 욕망을 갖는다. 그러나 레지스탕스는 어리다는 이유로 그를 받아주지 않는다. 그러자 그는 곧 독일경찰 끄나풀이 되어 완장을 두른다. 권력자 무리에 들어선 그는 멋진 양복도 지어 입으려고 재단사 집에 갔다가 재단사의 딸 프랑스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그러나 재단사와 그 딸은 유대인이기에 게토로 가는 기차에 타야만 한다. 패망 직전 나치의 절대권력은 광기를 내뿜는다. 그 와중에 사랑을 위해 완장심리로부터 탈주해야 하는 라콤의 갈등은 긴장감 넘치는 내면심리 변화로 펼쳐진다.


    심리실험극인 〈엑스페리먼트(The Experiment)〉(2001, 올리버 히르비겔)도 인간과 권력의 함수관계를 완장코드로 펼쳐 보인다. 인간의 본성을 연구하는 실험으로 톤박사의 특별한 프로젝트가 기획된다. 이름 대신 번호표를 단 죄수 12인과 그들을 관리하는 간수 8인을 알바로 모집해 14일간 역할수행 심리 구조를 CCTV로 관찰하는 것이다.


    처음엔 시간대비 큰돈을 버는 임시직이니 게임처럼 즐기자던 참여자들은 자신의 복장에 따른 권력에 물들어간다. 실험 2일, 3일…에 접어들면서 이들은 연구자 통제를 벗어나 버리는 위험한 권력중독증을 보여준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이기적 욕망에 따라 순응해 버리는 것이 모든 인간의 본성일까? 물론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77번은 환경에 순응하기보다 저항하는 태도로 자유로운 분위기를 어떻게 해서든 유지하려고 분투한다.

    완장 권력에 주눅 들지 않는 그런 저항의 힘은 미약하게 시작된 노란 물결의 희망에 공명해준다. ‘홀로코스트’ 영화가 주제적 장르로 끊임없이 만들어지듯이, 절대권력 욕망이 낳은 아픈 이야기는 이렇게 탐구 거리로 돌아와 새로운 봄을 보게 해준다.  
 
 글쓴이 / 유지나 
· 이화여대 불문과
· 파리 제7대학 기호학전공. 문학박사
· 영화평론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 세계문화다양성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학술훈장 수상
·〈2005 동국대 명강의상〉수상

· 저서
〈유지나의 여성영화산책〉등
· 2008년부터 ‘유지나의 씨네컨서트’, ‘유지나의 씨네토크’를 영화, 음악, 시가
 어우러진 퓨전컨서트 형태로 창작하여 다양한 무대에서 펼쳐 보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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