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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딸내미는 누굴 닮아 저 꼬라지인지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7. 4. 2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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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딸내미는 누굴 닮아 저 꼬라지인지

 

박 종 국

 

요즘 아이들의 성장통으로 부모가 목청을 높이는 일이 잦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되바라진 행동을 두고 부부가 서로 타박하는 볼썽사나운 일이 이어집니다. 아이가 저렇게 행동하는 게 남의 탓이라는 거지요. 어디 자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부부 한 사람만의 책임이겠습니까.

 

친구가게에 들렀더니 다짜고짜로 낯짝을 붉히며 그럽디다.

“저 딸내미는 누굴 닮아 저 꼬라지인지 알다가도 모리것따. 도통 공부라고는 안하고 미운 짓만 골라서 하고 댕기네. 그 놈에 공부하고 무슨 철천지원수가 졌는지 아예 담을 쌓아삐리네.”

“닮기는 누굴 닮아? 자네 딸내미 꼭 자넬 빼다 닮았어?”

“여편네가 집구석에서 무엇을 하는긴지….”

순간 뜨악했습니다. 요즘 세상에 케케묵은 생각꼬리를 가진 사람이 친구라니 말에요. 한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머리 다 큰 딸자식 앞에 두고 남 말하듯이 아무렇게나 내뱉는 친구가 좋게 보이지 않았습니다(사실, 친구는 종갓집 4대째 외동아들로 태어난 까닭에 여성(딸)에 대한 시각이 너무나 굴절되었습니다).

 

자식이 누굴 닮겠습니까. 부모를 속 빼다 닮습니다. 그런데도 눈엣가시 같은 짓을 밥 먹듯이 하는 딸더러 대체 누굴 닮았냐고? 하소연 자체가 부모로서 소임을 방기입니다. 아무리 속아지가 새까맣게 탄다고 해도 결코 내뱉어서는 안 될 말니다. 제 새끼 남을 닮지는 않습니다.

 

자식을 건사는 부모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한 집안 경영도 가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소명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결혼을 했으며, 무엇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을 욕심냈습니까. 자식을 양육하는데 네 탓이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고집한다면 그는 세상을 혼자서 살아야 합니다. 밤늦었는데도 또 아이를 닦달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딸, 딸, 딸이란 차별적인 멍에를 덧씌우는 듯 지켜보기 참 민망했습니다.

 

대개 친구와 같은 남편은 아내가 자신은 물론,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희생과 헌신적인 뒷바라지 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전제 자체는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더욱이 자녀를 차별적으로 양육하는 부모의 태도는 결국 딸에게 무력감으로 길들여집니다. 이는 많은 여성들이 갖는 자신감 부족의 시발점입니다. 더구나 아무 근거도 없이 자행되는 죄책감으로 인하여 은연중에 자기 자신을 희생할 준비를 하며 혹사당하는 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하고많은 아내들은 공통적으로 ‘내 자신은 괴롭더라도 가족의 화평을 위해서 내가 원하는 걸 단념하고 양보하면서 기꺼이 나를 희생해야 한다.’는 케케묵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여성들의 삶이 옥죔을 당합니다. 여성들이 받는 고통은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여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길러지고 보살핌을 받는 게 아니라 길들여지고 사회 통념적인 틀에 짜 맞추어집니다.

 

지금은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남자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씩씩하다’, ‘용감하다’, ‘대범하다’, ‘관대하다’, ‘털털하다’, ‘강하다’, ‘의리가 있다’, ‘힘이 세다’, ‘무뚝뚝하다’, ‘진취적이다’, ‘논리적이다’, ‘책임감이 강하다’, ‘독립적이다’는 존재로 남성다움을 자신하며 자라게 배려 받고 자랍니다.

 

반면에, 여자 아이들에게는 ‘얌전하다’, ‘수줍음을 잘 탄다’, ‘섬세하다’, ‘꼼꼼하다’, ‘깔끔하다’, ‘부드럽다’, ‘아름다움만을 추구한다’, ‘연약하다’, 감정이 풍부하다‘, 소극적이다’, ‘감성적이다’, 순종적이다‘, ’의존적이다‘는 고정관념으로 미화시켜 여성다운 게 자연스럽다는 걸 각인시킵니다. 그런 까닭에 대부분의 여자들은 ‘너무 아까운 여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물론 남자가 남자답고 여자가 여자답다는 게 뭐가 잘못되었냐고 반문한다면 달리 설득할 까닭이 없겠습니다. 그렇지만 남성은 보통 활동적이고, 독립적이며, 거세고, 용감하고, 여성은 보통 수동적이고, 의존적이며, 겁이 많고, 다감하다고 천편일률적으로 여기는 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아무리 남성과 여성이 성격과 능력이 다르고, 사회 여러 분야에서 행하는 일상적인 일처리가 다르다 해도 ‘다르기 때문에 대등’해야 하고, ‘다르기 때문에 동등’하게 인정받아야 합니다.

 

평소 아이들에게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은 단지 성적인 구별이지 차이나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이제는 여성에 대한 시대 덜떨어진 생각들을 바꿔야합니다. 아울러 여성들도 스스로를 존중하고 위하는 만큼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자신에 대한 가치는 자기 자신이 창출한다는 신념과 확신을 가져야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믿어야 하고, 자신이 해 낸 일에 대해서 주의 사람들이 인정하도록 끊임없이 요구해야 합니다. 그런 여성만이 인정을 받습니다.

 

중년 여성의 삶은 소중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을 모두 바쳐 남편을 도왔고, 열심히 가정 살림 도맡아 하며 아이들을 키웠는데, 어느 날 승승장구한 남편이 마음 없이 불쑥 내뱉는 말 한마디에 속이 상합니다. 또 어느덧 머리 위까지 커버린 아이들마저 ‘나’라는 존재를 거추장하고 무시해도 되는 존재로 여긴다면 거기서 오는 허탈감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남편이나 자녀들에게 헌신함으로써 사랑 받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자존감을 실현함으로써 진정한 존경과 애정의 눈길을 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당당하게 섭니다.

 

여자로서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요. 자기 포기를 통해서 남편과 아이들의 애정과 안정된 생활을 얻었다고 행복할까요. 감옥과 같은 부부관계를 유지하면서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습니다. 자신을 되찾아야합니다. 지나칠 정도의 희생적인 자세는 슬픈 결말밖에 보여주지 않습니다.

 

날마다 자신의 흥밋거리나 중요한 일을 찾아야합니다. 스스로 발전해야합니다. 기분 좋은 일을 할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애써 챙겨야합니다. 위험 없이는 성공도 없습니다. 변화의 길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그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다소 두렵더라도, 조금은 힘겹더라도 스스로를 한 인격체로 일어서야 합니다.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이 어떤 삶인지를 진지하게 따져보아야 합니다. 누구나 오직 한번뿐인 삶입니다. 여성들도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가꾸어나갈 줄 알아야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면면히 이어져 온 뿌리 깊은 나쁜 습성들 중의 하나인 여성비하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바꿔야내는 게 먼저입니다.

 

달포 만에 친구에게 전화를 넣어봤습니다. 요즘도 아내타령 딸내미 탓을 하느냐고. 그랬더니 대뜸 “제 버릇 개 주느냐?”며 여전히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그나저나 지천명의 문턱을 넘어선지 남자로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삽니다. 남자들 나잇살 더할수록 마누라한테 찬밥신세 가깝다고 했는데…. 어쨌거나 아내 앞에 당당하게 사는 그가 부럽기는 합니다. 나 역시도 유교적 사회통념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나 봅니다.

 

2011년 『경남작가』 문학 판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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