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광장]봄비 내리는 날에는
2004년 03월 19일 (금)
박종국(창녕 영산초교 교사·교사문화칼럼니스트)
이렇게 봄비가 내리는 날. 감사하게 쟁여놓은 소중한 일들 꺼내 보며 아름다움이 솔솔 묻어나는 얘기들 생각합니다.
그런데 연일 매스컴을 통해서 비쳐지는 탄핵정국을 보노라면 우리 사는 모습이 부질없다는 절망감에 아립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차마 막다른 길에서 서로 비키라고 손짓하는 답답함 때문입니다.
그래도 정신 차린 거대야당의 한 국회의원은 대통령 탄핵을 철회하기 위한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져지기에 앞서 전체 국민의 의견을 반추해 보는 정치를 각자의 양심에 촉구 해봅니다. 나부터 자기 방귀냄새 똥냄새를 맡지 못합니다. 자기 구린내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민의를 대변하겠다고 거들먹거리는 게 부끄럽습니다.
자유당 시절도, 무소불위의 군사정권도 아닌데,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일을 서슴지 않고, ‘막가파’식으로 휘젓습니다. 193명의 얼빠진 국회의원들의 양심 그릇이 변죽 끓습니다. 이렇게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가까운 이들과 쐬주 한 잔 나눴으면 좋으련만, 단지 생각뿐입니다. 왜냐고요? 애써 얼굴 맞대 봤자 무엇 하겠습니까. 둘이만 모였다하면 안주 삼아 탄핵정국 깨씹을 텐데….
오늘 반 아이가 국회의원들이 왜 대통령을 반대하느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인데, 텔레비전 뉴스를 보았다네요. 왜 어른들이 길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다니는가 묻습니다. 아이들의 눈에 비친 그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무슨 일 때문인지 알고 싶은가 봅니다. 설명 대신에 씨익 웃고 말았습니다. 제가 우리 반 아이들에게 무엇을 말해 주겠습니까. 헌법에 교원과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고 꽝꽝 못박아 놓았는데 말에요.
초등학교 아이들도 일주일에 한 시간 자치회를 갖습니다. 아마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자기 자신의 의견을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때입니다. 담임으로서 아이들 지도에 가장 신경이 곤두서는 시간입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합니다.
지금까지 보았던 어른들 회의 모습을 얘기하라니까 가장 많은 경우가 반상회고, 부모님들 계모임 기억입니다.
그런데 아이들 눈에 비친 잘못된 어른의 회의 모습은 국회의원들이 다 심어놓았습니다.
물건을 집어던지고, 삿대질하고, 고함치고, 난장판을 만드는 일련의 모습이 어린 아이들에게 너무나 크게 자리잡았습니다. 물론 수준이하의 인간들이 치고받는 모습도 일종의 교육이거니 여기면 상관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디 아이를 바로 키우려면 그렇게 못돼먹은 일이 용납되겠습니까.
아이들에게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러한 어른들은 선생님이 잘못 가르쳐서 그렇다."고. "막돼먹은 욕심 탓에 자기만 최고라고 고집한다."고. 아이들에게 "너희만큼은 그러한 일을 배우지도 말라."고 애써 다짐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 입을 모아 "선생님, 저는 그러지 않겠어요!"라고 당차게 입을 모았습니다.
아이들 눈으로 세상을 삶면 핏대올려 싸울 일이 적어집니다. 자기를 더 내세우려고 스스로의 빈약함을 내보이려는 데서 어쭙잖은 일은 생깁니다.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세요. 아름다운 세상이 다시 보입니다.
이렇게 봄비 내리는 날은 소중한 사람의 얼굴이 생각납니다. 소소한 일에도 모든 열정을 다 쏟는 바로 당신, 그대의 고운 얼굴이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습니다.
ⓒ 경남도민일보 2004. 03. 19.
사족 하나 답니다. 해묵은 글 다시 올립니다. 근데 2017년의 현실도 2004과 다름 없는 판박이입니다. 그저 판돌이들만 깝죽대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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