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일이 없다
박 종 국
열아홉 어린 나이에 장원 급제한 맹사성은 자만심으로 가득 찼다.
어느 날 그가 무명 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그러자 무명 선사가 대답했다.
"그건 어렵지 않지요.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그런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 줄 말이 고작 그것뿐이오?"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무명 선사가 녹차나 한 잔 하고 가라며 붙잡았다.
그는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스님은 찻물이 넘치도록
그의 찻잔에 자꾸만 차를 따르는 게 아닌가.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칩니다."
맹사성이 소리쳤다.
하지만 스님은 태연하게 계속 찻잔이 넘치도록 차를 따랐다. 그리고는 잔뜩 화가 난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허어, 그래요.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걸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사실은 어찌 모르십니까?"
스님의 이 한마디에 맹사성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고,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에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무명 선사의 일침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시대를 달리하여 21세기 약관 20세, 그것도 대학 3학년 때 최연소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소년급제 아이콘. 우리에게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로비사건 수사로, 특수부 검사로 알려진 그 사람. 그도 맹사성처럼 20때부터 ‘영감님’소릴 들었으니 그만한 검찰소환에도 목에 깁스를 한 채 태연자약, 오만 불순한 태도가 당연한 듯 보였다.
근데, 소년 급제하는 그들 무리를 보면 하나같이 시험 잘 보는 능력만 뛰어났지 인간 도리나 사회정의를 세우는 데는 순전히 꽝이 아니었을까? 오랜 시간 동안 검사생활을 통해서 그들은 무엇을 위하고 살았을까? 또 이런 사람만 줄줄이 검사장으로 승진시키고, 하필이면 이런 사람을 골라 민정수석이라는 어마어마한 자리에 앉히는 대통령은 뭐냐 말인가? 비단 그가 아니어도 대한민국 훌륭한 법조인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사람이 없다고 아직도 어린 치기를 떨쳐내지 못한 그를 민정수석으로 앉혔는가?
문제는 이런 정도의 도덕성을 가진 사람이 민정수석을 맡았다는 데 아연실색하게 한다. 손금 보듯 빤하지 않은가? 이런 사람이 민정수석이랍시고 인사검증을 한다? 애초 이건 아니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청와대인사시스템은 결국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낭패를 자초하고 말았다. 유독 지금 정부에 인사사고가 많았던 탓은 공직자를 검증하는 위치에 선 사람을 잘못 썼기 때문이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일이 없습니다!”
이 한마디면 목이 부러지도록 꼿꼿했던 그를 제도하기에 충분하다. 아직도 기고만장해서 제 잘난 맛에 겹다지만, 이미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된 그를 다시 일어서라 부추겨 줄 사람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인생사 새옹지마라지만, 이건 아니다! 정녕 이것은 아니라고 턱턱 가슴을 쳐야 할 때가 머잖다. 결국 ‘칼잡이’도 후배 특수통에게 조사를 받았다. 인사가 만사인데, 만시지탄이다.
ㅣ박종국에세이칼럼 2016-339편
이 글은 2016년 11월 9일 썼습니다. 우병우 일처리가 새로운 국면을 맞아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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