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채우는 그릇
박 종 국
공자(孔子)는 나이 들어 《역(易)》을 좋아하여 〈단(彖)〉,〈계사(繫辭)〉,〈상(象)〉,〈설괘(說卦)〉,〈문언(文言)〉을 지었다. 그런데 오직 《역》만은 가죽으로 엮은 끈이 여러 번 끊어졌다.
“나에게 수년의 틈을 준다면, 내가《역》에 정통하겠다.”(孔子晩而喜易, 序彖繫象說卦文言. 獨易韋編三絶. 曰, 假我數年, 若是, 我於易則彬彬矣.)
출저,《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
고대의 책(冊)은 대나무를 직사각형으로 잘라 여러 장을 가죽 끈으로 엮어 만들었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다 보면 가죽 끈이 끊어지기도 했다. ‘위편삼절’이란 가죽 끈이 여러 차례 끊어졌다는 뜻이다. 책을 ‘위편삼절’할 정도로 읽어야 비로소 문리가 터졌다. 30년 독서력을 가진 나는 아직도 도대체 몇 번이나 읽어야 그렇게 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마음이 헛헛할 때 어떤 일로 속을 채우는가? 나는 채근담을 읽는다. 교실 내 책상에 놓은 놓은 책은 겉표지가 닳아 나달나달하다. 그것을 통해서 마음을 비우는 지혜를 배운다. 영혼이 따뜻해지는 글을 읽을 때면 항상 감사하게 느낀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낮추고, 사소한 데 자기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속내를 감추기 때문이다.
책은 읽는 사람에게 우정을 나누주고, 배신하는 법이 없다. 책은 충고와 기쁨을 주는데도 인색하지 않다. 위안을 주고, 사랑을 주며, 지혜를 준다. 그래서 책을 읽는 일은 곧 엄청난 즐거움 속으로 들어가는 시작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사람은 참된 벗과 친절한 충고자, 유쾌한 반려자, 충실한 위안자의 결핍을 느끼지 않는다.
사람은 부단한 연구에 의해서, 독서에 의해서, 사색에 의해서, 추위와 더위의 구별 없고, 행운과 불행의 차이 없이, 어린애같이 스스로를 즐겁게 하며, 유쾌하게 지낸다. 인체는 공기를 필요로 하듯 정신은 지식을 필요로 한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배우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맹자는 배움을 일컬어 우물을 파는 일과 같다고 했다. 끝까지 노력하여 샘에 이르지 못하면 우물을 파지 못한다.
또 J. 러스킨은 교육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하도록 강청(强請)할 뿐만 아니라, 착한 일을 하는 그 자체에서 기쁨을 발견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교육이 사람들을 결백하게 만들고, 그 결백함을 사랑하도록 하며, 정의를 지키게 하고, 정의에 대해서 목마르게 희구(希求)하게 만든다고 했다. 교육이 지향하는 바와도 그와 같다.
요즘은 너무 편리한 사회라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책을 읽기보다 더 흥미를 끌고, 기쁨을 주는 놀이가 많아졌다. 예전 같으면 여럿이 어울려야 놀이가 되고, 서로 힘을 모아야 신명이 났다. 그러나 지금의 아이들은 컴퓨터 하나면 혼자서도 잘 논다. 첨단정보화 시대에 자질구레하게 책을 읽는다는 게 꾀죄죄하게 보인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까지 곰팡내 폴폴 풍기는 책 읽을 거다. 사람 사는 도리를 아는 데 책을 읽는 만한 비책은 또 없다.
개미는 작아도 탑을 쌓는다. 날마다 깨우쳐 사는 삶이야말로 진리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일이요, 참으로 좋은 향기 나는 인생을 꾸려 가는 길이다. 하나의 옥돌이 다듬어져 훌륭한 그릇이 되기까지는 각고면려(刻苦勉勵)의 수고로움이 따라야한다. 온마음을 던져 책을 읽는 만큼 아름다운 일은 없다. 책은 마음을 채우는 그릇이다.
박종국에세이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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