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풍경
주 오 돈(교사, 시인)
여름이 절정에 이른 칠월 말 팔월 초다. 이때면 내가 사는 창원은 일시 도심 공동화 현상이 일어난다. 국내 기계 산업의 주축을 이룬 창원공단은 가동을 중단하고 여름휴가에 든다. 창원 공단은 쇳물을 녹이는 용광로는 없다. 석유화학 산업단지도 아니다. 그래서 공장을 스물네 시간 가동하지 않아도 된다. 설과 추석 명절 즈음 휴무에 이어 여름 휴가철이면 공단은 전면 휴업에 든다.
창원 공단에서 여름휴가에 들면 몇 가지 뚜렷한 표가 드러난다. 먼저 아침저녁 출퇴근 도심 도로의 정체가 없다 마산이나 진해에서든, 창원 시내에서든 도로 어디나 차량소통이 아주 원활하다. 한낮의 도심 도로는 차량 통행이 뚝 떨어져 텅 비다시피 한다. 점심이나 저녁 시간대 식당이나 주점에서도 손님들 발길이 뜸해 한산하기 이를 데 없다. 음식점도 덩달아 문은 닿고 휴가에 든다.
수년 전 한때 예비 전력 수치가 낮아 관계 당국에선 비상이 걸린 적 있었다. 한겨울도 그랬지만 한여름은 더 신경 쓰였다. 한낮이면 일반 가정과 사무실에서 에어컨을 집중해 켜대니 전기 소비량이 일시 치솟았다. 이때 나온 방안이 창원처럼 대규모 공단은 휴가에 들게 해 전력난을 해소하는 방안도 있었다. 창원공단에서 휴가에 들면 비중이 큰 산업용 전력소비량이 크게 줄어 들 테다.
공단에서 휴가에 들면 시내 학원가도 휴가에 든다. 학원은 그 종류가 다양하다. 유치원부터 초중고까지 학교 급별로 다르다. 예체능 학원이 있는가 하면 단순한 국영수 보습학원도 상당히 많다. 일부 상위권 중학생들을 겨냥한 영수 선행학습 학원들도 있다. 고등학생들은 수능과 내신을 대비한 입시 전문학원도 있다. 이런 학원의 강사들도 공단 휴가철에 맞추어 여름휴가에 들어간다.
여름휴가 무풍지대가 일반계 고교 보충수업 운영이다. 시내 대부분 고교가 칠월 말에 여름방학에 들었다. 방학에 들면 희망 학생에 한해 보충수업이 이루어진다. 이걸 방학 들면서 며칠 쉬었다가 하기는 어중간하다. 그래서 방학에 이어 연달아 두 주 남짓 오전에만 보충수업 시간을 편성 운영한다. 학교마다 사정은 다르겠으나 전체 학생의 삼분의 이 정도는 참여하는 게 일반적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여느 학교와 다름없다. 전 학년이 2주간 보충 수업을 하고 남은 방학이 3학년은 사흘이고 1·2학년은 열흘 남짓이다. 그래서 2학기 개학은 3학년은 광복절 이전이고 1·2학년은 광복절 이후다. 나는 평소 학기 중엔 방과 후 보충수업에 들지 않았다. 동과의 다른 동료들만으로 배당된 수업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일과가 끝나면 정시 퇴근하는 자유로움을 누렸다.
나는 근년에 들어 방학 중 보충수업도 참여하지 않아도 되었다. 여름이면 이른 아침 근교 산에 올라 참나무 숲으로 들어 영지버섯을 찾아오곤 했다. 계곡 너럭바위에 발을 담그고 곡차를 들기도 했다. 이러다가 해거름이면 지인 농장을 찾아 안부를 나누고 고구마 줄기를 비롯한 여름 푸성귀를 마련해 나왔다. 드물게 생활권에서 제법 떨어진 경주 친구 산방을 찾아 말벗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 여름은 사정이 달랐다. 내가 평소 수업에 드는 3학년이 아닌 1학년에서 방학 중 수업 일부를 맡아 주십사는 요청이 왔다. 첫 주는 건너뛰고 둘째 주 닷새라고 했다. 나는 방학에 들어 일주일은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산과 들을 누볐다. 날씨가 무덥긴 해도 이른 아침 길을 나서 아침나절만 산에 올라 숲속에서 지내다 나왔다. 어느 무엇과도 바꾸어주지 않을 안식을 보냈다.
그 다음 한 주는 학교로 나가고 있다. 교정에선 만났지만 교실 수업에선 처음 만난 아이들이었다. 정한 교재가 고전소설 영역이었다. 동기유발 읽기 자료로 내가 다녀온 ‘종점 기행’ 탐방기를 나누어주었다. 보충수업이 끝나거들랑 혼자든 친구와도 가보라고 했다. 도서관에서 종일 보내기, 서점에서 반나절 보내기, 기차여행 떠나기, 뒷동산 오르기, 새벽시장 둘러보기 등을 더 추천했다. 17.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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