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대통령은 말이 없다
미국 사람들은 달러 지폐를 '죽은 대통령'이라고 부른다. 사실 완전히 들어맞는 표현은 아니다. 모두 죽은 건 틀림없지만, 달리 지폐에 얼굴이 실리는 영광은 비단 미국 대통령에게만 돌아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널리 알려진 지폐 100달러에 등장하는 벤저민 프랭크린은 대통령이 된 적이 없다. 그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고, 새롭게 탄생한 이 젊은 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 중의 한 사랑이었다.
1789년 당시 너무 나이가 많고, 조지 워싱턴의 정치적 위상이 너무 버거웠을지는 모르지만, 프랭크린은 위싱턴에 대적하여 대통령에 출마할 만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대통령의 명예의 전당인 달러 지폐에 등장하는 얼굴들 중 가장 의외의 인물은 10달러 지폐에 나오는 알랙산더 해밀턴이다. 해밀턴도 대통령이 된 적이 없다는 데서는 벤저민 프랭클린과 같다. 그러나 그는 인생 자체가 미국 역사의 전설이 된 밴저민 프랭클린과는 사뭇 종류가 다른 인물이다. 밀턴은 다른 등장인물들의 경력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재무장관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기라성 같은 대통령들 사이에서 어떻게 끼였을까?
요즘 미국인 대부분은 모르는 사실이지만, 해밀턴은 현대 미국 경제시스템을 설계한 사람이다. 달러지페에 등장도 그 이유에서이다. 1789년 33세 젊은 나이에 재무장관으로 임명된 지 2년 후, 그는 <제조업 분야에 관한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새로 태어난 조국을 위한 경제발전 전략을 담은 보고서였다.
그 보고서는 보호무역주의적인 주장뿐 아니라, 사회간접자본에 공공 투자가 필요하고, 금융시스템 육성. 국체시장 형성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내용이었다.
1달러 지폐에는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톤의 얼굴이 실렸다. 해밀턴은 미국 독립 전쟁때 조지워싱턴의 부관이였고, 정치적 동반자였기 때문에 그가 경제정책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워싱턴은 잘 알았다. 5달러 지폐에는 링컨이 등장한다. 50달러 지폐에는 율리시스 그랜트가 장식했다.
날마다 수천만 미국인이 택시를 타고, 센드위치를 사면서 해밀턴과 링컨으로 지불하고 거스름 돈으로 워싱톤을 받는다. 존경해 마지않는 이 정치인들이 날이면 날마다 좌파, 우파에 관계없이 미국의 모든 신문 방송에서 공격해대는 그 못된 보호무역주의자라는 사실은 전혀 모른 체 우고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외국인을 차별하는 정책을 밀어붙인다는 기사를 읽으며, 혀를 찰 뉴욕의 은행가들과 시카코 대학의 교수들도 그 기사를 실은 월스트리스 저널을 살 때, 쓴 엔드루 잭슨이 차베스보다 훨씬 더 외국인 차별을 심하게 했다는 사실은 미쳐 깨닫지 못한다.
죽은 대통령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들이 말을 한다면 노예노동에 의존했던 2류 농업 국가를 세계 최강의 산업 부국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자신들이 사용했던 정책들은 21세기 후손들이 신봉하는 정책들과 정반대라는 사실을 미국과 전 세계 시민에게 증언했을 테다.
출처 :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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