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 단상
아침나절 잔뜩 찌푸렸던 하늘, 종일 하얗게 꽃비 내린다.
연사흘 전부터 벚꽃 흐드러지게 폈는데, 꽃 잔치 시샘하듯 비 무겁게 들이친다.
그래도 이즈음의 비는 단비다.
겨울가뭄으로 땅거죽 푸석푸석하도록 갈증에 겨웠다.
하교시간, 마냥 헤헤거리던 아이들 웃음소리가 아직 교실 가득 찼다.
자그마한 웃음 하나하나 야무지다. 티 없이 해맑은 아이들의 건강함이리라.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더니 솨하고 신선한 공기가 들이닥친다.
오전 내내 갇혀 지냈던 답답했던 공기도 이때다 싶었는지 줄행랑쳤다.
덕분에 폐부 깊숙이 꽃향기 머금은 봄기운 실컷 들이켰다.
창밖 벚꽃나무 새하얀 꽃잎을 반쯤 날렸다.
한 무더기 팝콘 같았던 꽃들, 연사흘도 버티지 못하는 걸 보면 역시 사꾸라 답다.
한쪽 목련도 마찬가지다. 마치 꽃무릇 상사화처럼 뭣이 그리 바쁜지 잎도 보지 못한 채 꽃잎 먼저 떨구었다. 물론 개나리 진달래 벚꽃 상사화는 꽃무릇과 다르다.
상사화는 이른 봄 잎이 올라와서 지고난 후, 8월 중순쯤 분홍색 꽃을 피운다. 꽃무릇(석산)은 가을에 잎이 올라와서 월동을 하고, 잎이 지고난 뒤, 추석을 전후하여 붉은색 꽃을 피운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고 해서 상사화라고 한다. 두 종류 모두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함은 같으나, 꽃모양이나 잎이 피는 시기가 서로 다르다. 상사화는 잎이 좀 넓고, 꽃무릇은 잎이 좁다.
아이들 앉았던 의자들이 가지런하게 책상 위에 올랐다.
살포시 쓸어보니 아이들 온기가 아직도 따뜻이 남았다. 바깥에 단비 촐촐 내려도 교실 안은 건강한 아이들이 데운 열기로 따스하다. 한창 다리 근육이 붙여 잠시도 그냥 앉지 못하는 아이들, 그들이 품어내는 향기가 참 좋다.
오후에는 학부모 상담이 예정되었다. 오늘은 어떤 얘기부터 풀어놓을까?
대개 학부모 상담은 어머니 위주나 아빠가 신청하기도 한다.
간혹 곁가지가 나는 일 불거지지만, 아이들 두고 담임교사와 학부모의 대화는 참 미덥게 진행된다. 반 아이 스물 셋, 올해부터는 학부모 상담주간을 3주간이나 길게 짜였다. 그래서 상담을 원하는 날짜와 시간이 충분하게 배려되었다.
담임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부담이 된다. 직장업무관계로 상담이 주로 일과가 끝난 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밤 일고 여덟시까지는 교실을 지키고 않았다.
예정된 1학기 학부모 상담도 낼모레면 다 끝난다.
한 달 여 지켜보았던 아이, 학부모로부터 직접 듣는 양육이 더 많은 도움이 된다.
그 중에서도 ‘아이가 원하는 일 하도록 배려한다.’는 말씀이 내 교육 소신과 꼭 들어맞는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아이는 그 생활에너지부터 다르다.
‘한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온 동네 사람이 다 필요하다.’
이 말이 3주간 상담활동을 줄곧 이어왔던 바탕이었다.
근데, 점심을 단단히 챙겨먹었는데도 왜 배가 고프지, 사발면 하나 삶아야겠다.
아침 출근하면서 챙겨왔던 저녁거리. 그새 창밖이 희끄무레하다.
-박종국또바기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