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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습작기 회상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8. 4. 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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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습작기 회상

 

박 종 국

 

나는 하루 한두 편 빠짐없이 글을 쓴다. 그런 나를 두고 어느 문형은또바기라는 별칭을 안겨줬다. ‘또바기'언제나 틀림없이 꼭 그렇게' 라는 뜻이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또박'이다. 문단에 등단하고 단 몇 편의 글 밖에 쓰지 못했다고 자괴하는 문사가 들으면 실로 끔찍한 일이다. 어쩌면 글 중독인지도 모른다.

 

문단에 발을 들여 놓은 초기에는 으레 시를 썼다. 그렇잖아도 우리나라는 시인이 대접받는 나라다. 기발한 은유와 유려한 시어로 읊조리는 시상은 독자로 하여금 충분히 감흥하게 한다. 나도 그런 시인들의 일상을 흠모했었다. 근데, 그러한 일은 채 몇 년을 채우지 못했다.

 

뭇 시인들과 교유하면서 딴지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여느 시인이라 밝히지는 못하겠지만, 그는, 서재에 앉아서 온 세상을 노래했다. 불혹 지천명을 살면서 오백 칠백고지 정산을 서 본 적이 없는 그가, 대천명산을 줄줄 읊었다. 아이러니였다. 물론 어느 소설가는 평생 대하소설의 무대를 평생 밟아보지 않고 그 소설을 썼다고 자랑삼았다. 상상의 나래로 글을 썼다는 얘기다.

 

물론 소설가는 이야기 전개 자체가 허구니까 충분히 사료된다. 그러나 시대의 첨단을 서야하는 시인이 은유와 조탁으로 어물쩍 시 한 편 써내는 게 영 께름칙했다. 그렇다고 대부분의 시인들의 시적사유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큰일을 보고 뒤를 보고 뒤를 닦지 않은 듯 개운하지 못했다. 더더구나 문단 말석일 때 동인들 모여 합평을 할 때면 음보니 상징이니 함축미니 시시콜콜 따져가며 죽살이 터졌다.

 

나는 건강한 삶의 글쓰기를 지향한다. 독자가 이해 못하게 시상을 배배꼬아놓는다고 좋은 시가 아니다. 어느 노동자 시인은 그냥 입말로, 처절한 노동을 몸짓을 그대로 옮겨놓아도 쉽게 이해되는 시가 되었다. 시인이란 허세가 결국 시인으로 밥벌어먹지 못하는 형국을 만들어 버렸다. 그래도 시인이랍시고 갈지자걸음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 시를 쓰지 않겠다고.

 

해서 지금껏 18년째 오직 한 우물을 판 게 바로 수필이다. 한데 우리 문단에는 언제부턴가 수필장르를 없애 버렸다. 참으로 고약한 행패가 아닐 수 없다. 문학형식에서 수필이 빠지지 않는데도 유독 단체에서는 홀대를 받는다. 영국 사람들은 셰익스피어만큼이나 수필가 찰스 램과 메리 램을 으뜸으로 추앙한다. 특히 찰스 램은 '엘리에'라는 필명으로 쓴 수필로 훌륭하게 평가되었다.

 

예나지금이나 전체 문인들 중에서 수필을 쓰는 문인이 그리 많지 않다. 다들 문단 습작기를 거치고 나면 알면 글면 여타 장르로 갈아타기에 바빴다. 숫제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게 문사의 재능인양 허허댄다. 반풍수니 목수가 연장 나무라는 꼬락서니다. 지금껏 글을 써보니 이제는 빤해진다. 여기저기 기웃대는 작가치고 변변한 자기목소리를 담아내는 시인묵객이 없다.

 

오늘도 생활주변의 자잘한 이야기들을 쓰면서 생각이 무겁다. 여태껏 한 눈 팔지 않고 줄곧 글을 썼지만, 그다지 때깔나지 않는 변죽만 끓이는 형국이다. 누군 똑같이 문단에 발을 들여놓고도 시류를 잘 만나서 중견문사로 대접받는데, 그에 비해 나는 변방에서 딸깍발이로 줄글이나 쓴다.

 

수필가 피천득 선생은 인연한 편을 두고 16개월이나 탈고를 거듭한 끝에 유려한 작품을 썼다. 그에 따르지 못하겠지만, 나는 익히 알아주지 않아도 긴긴 습작기를 반추하며 오늘도 삶에 밀착한 글을 쓴다. 그게 내 필생을 건 대업이기 때문이다.

 

-박종국또바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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