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술시간에 대한 기억
박 종 국
벌써 40년이 후딱 지난 얘기다. 해묵은 일들 들춰내봤자 좋을 게 없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1996년 3월 1일 이후 초등학교라 지칭함)시절, 나는 매주 미술시간에 대한 아린 기억을 가졌다. 그때, 우리에게 미술수업은 그림 그리기 즐거움보다, 산수(지금 교과목의 수학)를 비롯한 다른 교과목 수업 땜질용이었다. 자습을 도맡아 했고, 바깥에 나가 땅에 그림도 그렸다. 잔디밭에 팔베개하고 누워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헤아렸던 시간이기도 했다.
전자의 경우는, 담임선생님이 미술보다 국어수학 등 주지교과에 치중하는 분으로, 성적에 관한 한 매 타작은 기본이었다. 그 분은 매번 평가시험 점수에 연연했었고, 지난달에 비해 반 평균이 오르면 그에 만족하던 분이었다. 그림에 대한 조예가 꽝일 뿐더러, 대부분 풍금도 못탔다. 그러니 그 한 해 동안 미술은 물론, 음악도 아예 수업시간에서 빠졌다.
후자는 더 아린 기억이다. 대개 담임이 햇평아리 새내기 선생님이셨다. 그런데, 코밑이 제법 거뭇거뭇했던 열두세살 우리들 눈에 사뭇 친구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선생님은 매 수업시간마다 열정적이셨다. 마치 하나를 더 가르치지 않으면 죄스럽다는 듯이 좔좔좔 수업에 충실했다. 때론 그 지나친 열정이 우리들을 오줌싸개로 만들기도 했다. 그런 선생님이셨는데, 정작 우리들은 그 바람을 따라 주지 못했다. 특히 미술준비물을 챙겨가는 아이가 채 다섯손가락을 채우지 못했다. 그러니 오륙십명의 아이들 미술 수업은 불가능했다.
그때 그 선생님의 미술수업은 기발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교육과정재구성이었는데, 당시로서는 가히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미술시간이면 딱히 수업을 이끌어갈 방편이 따로 없었든지 선생님은 우리를 운동장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땅에 그림을 그리거나, 교정의 풀꽃나무로 예쁜 동물을 만들게 배려했다. 그 덕분에 바람만 살랑 불어도 쉽게 흐트러지는 풀그림도 수없이 그렸다. 그러다가 무료해지만 교목 느티나무 그늘에 팔베개하고 누워 마른 하늘에 총총 떠가는 구름 속에서 순간순간 탄성을 지르며 동물을 찾아냈다.
현재 교사로서 나는, 그분의 교육 방법을 그대로 따랐던 적이 많다. 소위 밴처마케팅이다. 교과서를 벗어나 아이들과 만나는 제반 활동이 그것이다. 주로 자연과 친화 교감함으로써 감성을 키우는 산행과 면담, 요리실습, 문예활동 등이다. 독서독후활동도 그 중점적인 실천항목이다. 내가 작가로서 글 쓰는 일도 그 분의 덕이다.
연전 몇몇 부랄친구들에게 선생님을 찾아뵙자고 말을 권넸다. 하지만, 정작 돌아가셔서 안타까워하며 그때의 구름밭 하늘을 그리워했다. 개적으로 빈촌에서 태어난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닥치는 대로 무수한 책을 읽었고, 당시 최고 인기경연종목이었던 고잔읽기 대회에서 발군의 재기를 보였던 바탕은 선생님의 엉뚱한 가르침 덕분이었다. 그즈음 교내백일장에서도 제법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교육의 힘은 거룩하다. 교사로 지천명을 사는 감사함이 그 분, 선생님으로부터 본받았고, 문단 말석이나마 이름자를 올려놓은 사실도 선생님의 따뜻한 부추김 덕분이었다(선생님은 지금도 여전히 나의 롤모델이다).
가끔 내 모습을 그려본다. 그때그시절 땅에 그리듯이 종잇장에 긁적거려본다. 순간 나는, 그 무엇보다 하얀 덧니를 내보이며 환하 웃으시던 선생님 모습이 먼저다. 얼굴에 웃음이 없다면 그 어떤 그림을 그려도 초라하다. 더군다나 웃음을 잃고 사는 요즘, 나는 가장 먼저 밝은 웃음꽃 얼굴을 그려 놓는다.
그리고나서 남을 대접하는 따뜻한 손을 그리고, 남의 어려움에 조그만 도움이라도 주는 손, 남의 아픔을 감싸주는 손, 남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을 그려 넣는다. 그러니 그림 속에 부끄러운 손이 그려질 새가 없다.
다음으로 산과 땅과 하늘과 강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듯이 화폭에서 나는, 내 모습을 주위와 어울리도록 그린다. 내 모습이 튀어나와 볼썽사나운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환경에 잘 어울리도록 그린다. 미움과 무관심의 메마른 가슴보다 촉촉한 사랑의 물기가 스민 사랑의 가슴을 넓게 그려 넣는다.
아직 나는, 지천명을 살아도 뭔가 내세울 만한 명예나 사회적 지위를 가져보지 못했다. 그저 질박한 내 모습 그대로 살았다.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거칠지 않고 섬세한 감성을 가진 나, 하고자 하는 일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내 모습에 만족하고 산다. 그것은 아마도 당시만해도 여교사로서 평생 평교사 산다는 게 무척 어려웠을 텐데도 그 외길을 당당하게 걸으셨던 선생님이 표상으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철부지 꼬맹이 시절 내 작은 모습은 다 아름답다. 그 중에서 이태를 함께 부대꼈던 그 분, 선생님과의 소중한 기억들은 이제 교사로서 커다란 그림이 되었다. 우여곡절을 다 겪고 지난해 교감자격증을 받았다. 그렇지만, 난 교감자리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때가 되면 남들처럼 교감발령을 받는다. 그렇지만, 그보다 나는, 교사 그 본연에 만족한다. 해서 올해도 쓸데 넚는 미련을 과감하게 떨쳐내고 4학년 담임을 맡았다.
교단에 선 지 35년 3개월. 그 중 30년을 오직 6학년을 담임으로 살았다. 그렇다고 내가 6학년 전문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아이들의 면면을 살갑게 헤아리는데는 그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는다. 그만하면 나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는다해도 크게 만족할 따름이다.
그리고보면 긴긴 인생항로에서 이제 막 반환점을 돌아선 내 그림들이 반쯤 화폭을 채웠다. 온통 아이들 얼굴만 가득 찼으나, 그 속에서 한 분의 선생님이 웃고 섰다. 언제든 내 반쪽 그림을 쳐다볼 때 나는, 오늘의 당당하게 세우는 웃음 띈 얼굴과, 뜨듯한 사랑, 변함없는 성실, 소요유하는 소박함, 배려와 베품에 대한 감사, 주변 사람들과의 조화를 잊지 않는다.
그게 평생 교사로 사는 내 모습 내 그림이다, 아름답고 소박한.
|박종국또박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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