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림 떡
주오돈(교사, 시인)
올해 내가 근무하는 학교 문화보건부실 구성원은 작년과 많이 바뀌었다. 내 책상과 위치는 변동이 없는데, 부장과 기획 담당은 다른 실로 자리를 옮겼다. 부장은 음악과라 홀로 음악실로 갔다. 우리 실에 다른 한 분이 더 들어오게 되어 공간이 비좁을까여서다. 이분은 병 휴직을 끝내고 복직한 동료의 도우미로, 장애인협회 소속 생활지원사다. 복직한 동료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휠체어를 타고 근무한다.
작년에 업무 기획이었던 분은 평가부장을 맡아 본부 교무실로 갔다. 대신 그 업무는 육아 휴직에서 복직한 중국어과 선생님이 맡으셨다. 자녀를 돌보느라 두 차례 육아 휴직하고 교단에 되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두 분은 사유가 다르지만, 학교 현장에서 2년 동안 떠났다가 돌아온 분이다. 육아 휴직에서 복직한 여교사는 30대 초반이고, 질병 휴직에서 복직한 남교사는 50대 초반이다.
덕분에 나는 휠체어를 밀어주는 생활지원사와 온종일 함께 지낸다. 이분은 출근하는 복직 동료의 집으로 가서 자기 승용차에 태워 학교로 온다. 수업 시간마다 교실로 이동시키고, 화장실도 동행한다. 점심시간이면 급식소로 가서 식판 배식까지 도와준다. 생활지원사는 하반신을 쓸 수 없는 질병 휴직에서 복직한 동료에게 무척 고마운 분이다.
사실‘생활지원사’라는 제도를 이번에 처음 알았다. 요양보호사와 같은 노인 복지 지원 성격의 일자리였다. 요즘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가질 않고 제가 방문 요양보호사 제도가 도입되었다. 대부분 요양보호사는 여성인데, 생활지원사는 남성도 지원하는 모양이다. 이분은 삼성 조선소에서 정년을 맞은 후, 이모작 인생으로 봉사하며 노후를 보낸다.
올해 같은 실 동료는 특이한 분들이다. 육아에 전념해야 하는 30대 여교사와 중년에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와 굴곡진 여생을 보내야 할 50대 초반 남교사. 인생 이모작으로 전 직장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생활지원사다. 여기에 내년 2월이면 평교사로 정년을 맞는 나까지 끼었으니 정말 특이한 인적 구성이다.
두 분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경력 단절을 겪었다. 출산과 육아를 겸하는 동료 여교사는 다소곳이 예의를 갖추고 표정이 밝으며, 무척 성실했다. 부군이 조선소 설계 분야라고 들었는데, 아내가 복직하자 한 달 육아 휴직을 내어 가사를 도와준다고 했다. 그래서 학기 초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랴 출근도 아주 일렀다. 내가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해 모르는 부분은 친절하게 잘 도와주었다.
50대 초 국어과 동료는 교통사고 후유증에도 긍정적이고 의지가 굳었다. 힘들고 지친 투병 과정에서 드리울 그늘이 드리워졌을 법한데 그런 면을 찾을 수 없었다. 꾸준한 재활 치료를 통해 하루빨리 교단으로 되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린 듯했다. 며칠 지켜본바 불편한 몸인데도 학생들과 밀착 동행하려는 의지가 역력했다. 교단에서 내가 배워야 할 진정한 면모였다.
신학기 열흘 지나는 3월 둘째 수요일이다. 언젠가 방송에 일반 공직사회에서 신규 임용 공무원의 돌림 떡이 뉴스거리였다. 떡값이 부담스러웠다는 건지, 맛이 없었다는 건지 다음 내용은 잘 모른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올봄 동료가 다수 이동하고, 그만큼 새로 전입했다. 새로 부임해 온 교장을 비롯해 경력 교사들이다. 주변 지인이 보낸 떡이 계속해 이어졌다.
각 실로 돌리는 떡의 모양이 떡방앗간마다 달랐다. 고현에서도 보내오고, 지세포에서도 배달이 왔다. 한 번은 통영에서도 왔다. 그건 오미사 꿀빵이었다. 나는 근무 중 커피나 간식을 잘 먹지 않는다. 답지하는 떡을 건네받을 때마다 고맙다는 인사는 깍듯이 했다. 오늘도 전입해 온 선생님으로부터 떡을 두 개나 받았다. 교단에서 받는 마지막 돌림 떡이다. 2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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