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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길 위의 삶, 로드무비, ‘노매드랜드’

한국작가회의/영화연극음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1. 5.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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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길 위의 삶, 로드무비, ‘노매드랜드’


 

유럽 최고의 석학인 자크 아탈리는 그의 저서 ‘호모 노마드-유목하는 인간’에서 노마디즘이 미래 사회를 지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마디즘(nomadism)이란 유목민적 삶을 뜻하는 것으로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자아를 찾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15일 개봉한 영화 ‘노매드랜드’는 노마디즘적 삶의 방식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연출을 맡은 클로이 자오 감독은 아시아계 여성 최초로 제78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았으며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등 6개 부문 후보로 올랐다.

 

‘노매드랜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부터 출발한다.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석고공장이 즐비했던 네바다주 엠파이어의 공장들이 폐쇄되자 도시 전체가 무너진다. 직장을 잃은 펀(프란시스 맥도먼드 분)은 남편을 병으로 떠나보낸 뒤, 추억이 깃든 도시를 떠나 작은 밴 차량으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 위의 세상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그곳에서 각자의 사연을 가진 노매드(유목민)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영화는 상실을 겪은 노매드들의 삶을 조명한다. ‘노매드랜드’는 노매드들의 삶의 여정을 담은 로드무비(road movie)다. 로드무비란 장소의 이동을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는 영화를 일컫는데 영화는 네바다주에서 시작해서 아리조나주까지 아마존 물류센터와 관광명소 레스토랑 등 임시직을 전전하는 펀의 여정을 쫓는다. 영화가 기존의 로드무비와 다른 것은, 주인공 펀과 다른 노매드들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그들이 장소를 이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가정과 경제의 붕괴에 있었다. 그들이 밴에서 생활하는 것은 낭만적인 것이 아닌, 각자의 상실을 안고 살아가기 위해 길 위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인생이 곧 길 위의 여정이듯, 길 위로 나선 펀을 통해 절망 속에 빠진 이들의 삶을 바라보고 있다.

 

도시를 떠나 광활한 자연 속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린다. 유목민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낸 영화는 제목에 걸맞게 유목민의 땅을 오롯이 비춘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네바다, 내브라스카, 아리조나의 광활하고 황량한 대자연을 모습은 물류창고에서 퍽퍽하게 일하는 일상과 강렬한 대조를 이룬다. 직장과 가정을 잃은 후 혼란스러웠던 펀은 얽매이지 않는 자연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게 된다. 거대한 나무가 들어찬 대자연 속에서는 기계 문명과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하찮은지를 일깨워 준다.

 

연대와 공동체도 이야기한다. 노매드들은 저마다 상처와 아픔이 있지만, 그들만의 공동체 속에서 서로 연대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가족, 친구, 회사 등 관계 맺고 있는 몇 개의 공동체 안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는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펀은 남편과 직장을 잃으면서 공동체에서 이탈되었으나 노매드 사람들로부터 연대와 공동체를 다시 찾았다. 노매드 사람들과 섞여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는 펀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개인이 아니다. 영화는 삶에 있어서 연대를 통한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 한다.

 

현대인은 복잡한 사회 속에서 다양한 인적관계를 만들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 되고 개인주의가 성행하면서 가족과 직장이라는 공동체는 점차 붕괴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실업이 늘어나면서 직장을 잃고 임시직으로 전전하는 청년들 또한 증가하고 있다. 가족과 직장이라는 공동체로부터 이탈되어 고통받고 있는 삶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영화 ‘노매드랜드’는 길 위의 삶을 통해 이들의 상처와 고통을 보듬으면서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과 삶의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 film10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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