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위한 소고(小考)
박 종 국
프랭클린이 남긴 말 가운데, "쓰는 열쇠는 항상 빛난다."는 일침은 하나다. 늘 쓰는 열쇠는 손에 닳아 빛난다. 그러나 지하실 창고같이 자주 쓰지 않는 열쇠는 녹이 슬거나 색깔이 변하기 마련이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항상 마음에 두고 자주 만나는 사람, 가까이 지내는 사람과는 감정의 응어리가 쌓이지 않는다. 깨끗이 닦여진 거울처럼 말끔한 얼굴로 만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으로부터 멀어진 사람과는 두터운 정분이 쌓이기는커녕 그 어떤 연줄의 싹마저 메말라 버린다.
친구란 내가 괴로움 속을 헤맬 때에 문득 그리워지는 얼굴이며, 내가 즐거울 때에 함께 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내가 울때 그 눈물을 닦아주고, 환한 미소에 응답할 사람이며, 어디서건 나를 따뜻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친구란 받는 데 기대하지 않으며, 자기의 모두를 주려하는 배려의 존재다.
그렇기에 친구는 나의 아픔, 나의 슬픔을 나눠갖도록 기도하는 사람이다. 내가 좌절할 때 나에게 따뜻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며, 내가 홀로 길을 걷고 싶을 때 나의 그 마음을 아껴주는 사람이다. 친구란 내가 외로울 때에 전화를 걸고 싶은 사람이며, 짤막한 사연을 보내고픈 사람이다.
친구란 내 모두를 품어주는 사람이며, 뜻하지 않은 이별에도 나의 행복을 빌어줄 사람이다. 살면서 그런 친구를 두었다면 더없는 행복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친구를 많이 둘 필요는 없다. 좋은 친구는 단 셋이면 족하다.
친구가 많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자랑거리는 아니다. 많은 친구를 둘 게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신뢰하고, 힘들 때 의지하는 친구 단 한 명이 충분하다. 대인 관계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한 기준은 ‘친구가 몇 명이나 되느냐’가 아니라 ‘그러한 친구와 어떻게 교유하느냐’ 이다. 친구를 사귀는 데 중요한 건 질이지 양이 아니다.
사랑이란 오래 갈수록 처음처럼 그렇게 짜릿짜릿한 게 아니야.
그냥 무덤덤해지면서 그윽해지는 거야.
아무리 좋은 향기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면 그건 지독한 냄새야.
살짝 사라져야만 진정한 향기야.
사랑도 그와 같은 거야.
사랑도 오래되면 평생을 같이하는 친구처럼 어떤 우정 같은 게 생기는 거야.
- 정호승, '연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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