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公職)의 무거움
한재훈(연세대학교 연구교수)
“국록을 먹고 공직을 맡겠다는 사람들 자세가 저래서야, 저 사람들을 어찌 믿고 나랏일을 맡기겠느냐?”
이는 정통 유학의 마지막 선비이자 개인적으로 나의 스승이기도 한 겸산(兼山) 안병탁(安秉柝, 1904~1994) 선생의 말씀이다. 선생은 대한제국 시기에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나 조선의 정통 유학을 공부하였고, 망국의 백성으로서 상복을 입는다는 심정으로 평생 백의(白衣)만을 고집했던 조선의 마지막 선비였다. 선생은 대한제국의 멸망과 36년간의 일제강점기를 경험했고, 이승만 정부부터 김영삼 정부까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살다 간 대한민국 국민이기도 했다.
향년 91세의 선생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등 여러 번의 공직 선거를 겪었지만 한 번도 투표에 임하지 않았다. 선생이 투표를 거부한 중요한 이유는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저 사람 말고, 나를 뽑아주시오”라고 말하기 때문이었다. 선생에게 이런 모습은 이미 그들 중 누구도 공직을 담당할 자격이 없다는 증거였고, 따라서 그들 중 누구에게 표를 던져 선택한다는 게 무의미했다.
'일'을 공경하라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조선왕조의 건국을 주도하고, 새로운 나라의 철학과 제도 등 운영의 초석을 놓았다. 경복궁(景福宮)의 이름은 물론 그 부속 전각의 이름도 그가 지었다. 그는 근정전(勤政殿)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는 글에서 “천하의 모든 일이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망가지는 건 필연의 이치”라면서 “사소한 일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정사(政事)와 같은 큰일이겠는가?”라고 말했다.
‘일’이란 그 일을 수행하는 자의 행위가 불특정 타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서울에서 강릉까지 3시간 동안 차량을 운전해서 간다고 해보자. 그 행위가 만약에 일상에 지친 어떤 사람이 동해가 보고 싶어서 간 것이라면 일이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승객을 모시고 가는 버스 운전기사라면 그의 행위는 일이다. 일의 성질이 이와 같기 때문에 일을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공(公)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에서 “일을 할 때는 공경할 것을 생각하라”[事思敬] 또는 “일을 집행할 때는 공경하라”[執事敬]고 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공경’은 두려움이 수반된 긴장감과 실수하지 않으려는 신중함이 어우러진 태도이다. 말하자면 ‘얇은 얼음을 밟듯, 깊은 못에 다가서듯’하는 태도이다. 일을 수행하는 나의 행위가 초래할 무거운 결과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이러한 태도로 일에 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삼봉이 말한 ‘부지런함’과 공자가 말한 ‘공경함’은 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선거에도 금도는 있다
우리가 사는 나라는 민주주의(民主主義)를 표방하고 있고,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選擧)’이다. 국민은 주인으로서 선거를 통해 공직을 수행한 사람의 잘못을 직접 심판하고, 더 잘 수행할 사람을 직접 선택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는 과거 임금이 모든 권력을 행사하던 군주주의(君主主義)와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군주주의든 민주주의든 기본적으로 일이 갖는 무거움은 다르지 않으며, ‘일’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선거’도 결국은 공직에 부여된 일을 잘못 수행한 사람을 심판하고, 더 잘 수행할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한동안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과 지역 행정을 담당할 각 단위의 단체장들을 함께 뽑는 선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벌써부터 온 나라가 시끄럽다. 선거에서 선택받기 위해 뛰는 후보들에게 ‘사양지심’을 요구하는 것은 애당초 성립할 수 없는 일이다. 후보들은 각자 주권자의 올바른 판단을 돕기 위해 자신의 장점과 능력을 부각해야 하고, 또 주권자의 잘못된 판단을 방지하기 위해 상대방의 문제점도 지적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금도를 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선거 때마다 더 훌륭한 대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덜 나쁜 대표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 한 재 훈
· 연세대학교 연구교수
· 고려대학교 강사
· 성공회대학교 대우교수
· 저서
「퇴계 예학사상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서당공부, 오래된 인문학의 길>, 갈라파고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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