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분과 소요유할 나이
박종국
세수를 하다말고 거울을 보니 앞이마 머리숱이 하얗다. 설마설마 했지만 세월을 비켜갈 재간이 없다. 새삼 나잇살을 생각해 본다.
'나이듦은 무엇을 의미할까?'
현재의 삶을 신중하게 받아들인다는 얘기가 아닐까. 여태껏 맹숭맹숭하게 실타래를 감았다면 이제부터는 좀 더 촘촘하게 감아 제킬 나이다.
그냥 쉬흐르는 일상은 밥벌레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조급할 까닭이 없다. 뉘엇뉘엇 넘어가는 석양을 관조하며, 사색하고, 수분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소요유 하나면 충분하다.
해서 멋지게 늙으려면 중년부터 나이 듦에 철저하게 공부해야 한다. '늙으면 뭘하지?'
단단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괜히 나이 드는 게 억울해진다.
세월은 살같이 빠르다. 그냥 덧없이 흘러가고, 쇠퇴하고, 사라진다면 추운 겨울 낡은 외투를 걸친 사람처럼 얼마나 쓸쓸하랴. 노년은 스스로 인생에 아름다운 여운을 새겨할 나이다.
백세인생에서 중년은 인생의 전환기다. 남은 30년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챙겨보아야 할 시기다.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게 경제적인 자립이다. 또한 사회적 활동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나이가 들면 돈을 지녀야 즐거움을 누린다. 그게 젊음과 나이 듦의 차이다. 여행이나 취미생활을 하는 데도 나이가 들면 더 적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한다.
일상적인 삶에서 은퇴로 노후를 설계한다면 스스로 인생의 끈 놓아버리는 일과 다름없다. 정말 나이 들어 할 일 없이 하루를 보낸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아닌가.
아름다운 노년을 사는 사람은 결코 끈 떨어진 연처럼 세상을 놓아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죽을 때까지 세상일을 꼭 붙들고 산다. 언제나 ‘현역 노인’이다. 그는, 자신의 전문성을 자신하며 일하는 사람이다. 또한 아름다운 노년의 삶은,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이권에 눈 멀지 않는다.
그런 삶은 구태의연한 욕망이다. 하찮은 삶보다는 자기 일을 통해서 경제 외적인 의미로 인생의 깊이를 느끼며 살아가는 노년을 추구해야한다. 때문에 사랑하는 일도 보다 열정적이어야 한다.
그저께 모임 자리에서 '우리 늙으면 뭘하고 살지?' 하는 얘기가 화두가 됐다. 다들 철부지적 동심으로 돌아가 고향에서 사는 게 최고라 입을 모았다. 그렇지만 그게 명답은 아니었다.
농투성이로 태어났어도 타향살이 반백이면 귀농하기 만만찮다. 그래서 그보다 스스로 늙었음을 인정하고, 뭔가 푹 빠질 만한 일을 찾아야한다는 데 공감했다. 바로 인생이모작이다.
제2의 직업은 앞으로 30년 동안 지속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인생의 중턱에 걸친 나이, 이담에 늙으면 무엇 하지? 하는 고민에 닿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 누구보다 행복한 미래를 꿈꿀 나이다.
나에게 그 현답은 십년 전 정년 퇴임한 어느 선배가 롤모델이다. 선배는 더 이상 나이에 구애 받지 않고 열정적인 삶을 산다. 산행도, 여행도, 동호회도, 모임자리도 잦다. 손수 마을꽃길을 가꾸고, 동네일에도 바쁘다. 외려 보면 푼수뜨기 같은 노인네로 보이겠지만. 나의 노년은 그를 닮고 싶다.
|박종국에세이칼럼 202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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