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요한 자리에 곧잘 지각을 한다. 일찍 가야겠다고 나서지만 그런 날일수록 더 늦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데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차를 두고 출근하는 날도 늦겠다 싶어 택시를 타면 한참을 기다렸던 노선버스가 연달아 지나친다. 버스를 타고가도 출근시간에 늦지 않았을 텐데…. 물론 그것은 징크스가 아니다. 또 완벽하게 챙겼다고 자신하는 일일수록 실수가 잦다. 나의 경우 징크스는 머피의 법칙과 상통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징크스(jinx)’란 말은 고대 그리스에서 마술도구로 쓰이던 새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이는 불길하고 불운을 가져오는 재수 없는 일을 가리킨다. 시험이나 스포츠 경기 등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악운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으레 불길한 일이 벌어질거라는 자기 암시가 징크스의 정체다. 징크스는 거의 모든 문화권에 존재하는데, 특히 운동선수나 장사꾼 등 직업적인 승부사 사이에서는 유독 갖가지 징크스가 떠돈다. ‘아침에 까마귀소리를 듣거나 검은 고양이를 보면 재수가 없다’ 등이 그 실례다.
전문가는 징크스는 일종의 미신이며, 원인과 결과에 따른 논리적 상황보다는 단순한 우연히 겹친 결과에 비과학적 해석과 주관적 의미가 부여된 암시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즉, 징크스는 자신감 부족과 열등감이 빚어낸 산물이며, 심약한 인간이 만든 자기 함정일 뿐이란 얘기다. 그러므로 징크스에 집착하는 수험생은 그만큼 자신이 만든 덫에 스스로 발목을 잡힌 셈이다. 예컨대 그리스도교도 사이에서는 '13일의 금요일'을 불길한 날로 꺼리며, 한국에서는 4자가 죽음을 연상시킨다 하여 병실 번호 등에서 배제하고, 아침부터 검은 고양이가 앞을 지나가면 불길하다고 생각한다.
또, 징크스를 두고 많은 사람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각 팀을 웃고 울린 K리그 징크스는 심리적인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선수나 감독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운동선수나 바둑기사 등 직업적으로 승부를 겨루는 사람 사이에 여러 가지 징크스가 많다. 일종의 미신으로 인과관계보다는 우연의 결과가 더 많다. ‘징크스를 깼다’라고 하면, 으레 질거라 예상했던 승부나,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체념하던 일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극복한 일을 말한다. 이 경우 징크스는 미신이라 무조건적으로 배척하기보다 승부욕을 자극하고 경기에 대한 활력소를 불어넣으면서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참 좋은 징커스다.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펠레가 어느 나라가 승리한다고 예단하면 그 팀은 꼭 진다. 혹자는 이러한 펠레의 예측력이 실제와 매우 다른 이유는, 펠레가 위대한 선수였지만 지도자 경력이 부족하기에 경기를 예측하는 능력이 없다고 단정한다. 한편, 펠레가 세계적 축구 스타이기 때문에 펠레의 예측을 기자가 과대 포장하여 마치 예언처럼 떠받드는 데서 출발한 게 정반대의 결과를 낳아 저주가 되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실제로 펠레 본인도 '펠레의 저주'라는 말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자신이 내놓은 의견이 무조건 틀리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람은 저마다 한두 가지 징크스를 가진다. 또 같은 결과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다른 징크스를 가지기도 한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징크스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생각나는 강박적 증상을 보이는 행동이 대부분이다. 즉 청결을 유지하려는 행동, 확인 행동, 반복행동, 수집행동, 숫자와 관련된 행동 등이다.
강박행동과 유사한 징크스 행위 중 첫 번째는 씻기와 같은 청결과 관련된 행동이다. 자신의 몸을 씻거나 청소를 하는 등의 행동은 질병이나 더러움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예방적 행위로써 청결과 관련된 행동을 통하여 두려움을 없애고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려한다. 몸을 씻고, 세탁하고, 외출 했을 시 용변을 보지 못한데 대한 증상이 징커스이다.
두 번째는 확인 행동이다. 어떠한 사건에 대하여 의심이 생기면, 그것을 확인 해야만 안정이 된다. 또한 강박적 증상을 보이며 확인하는 대부분의 일은 사소한 사항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외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스밸브나 수도, 문단속이 잘 되었는지 의심이 들어 몇 번이고 확인하는 행위나, 가방 속 물건을 몇 번 씩 확인하는 경우, 징크스 행동과 숫자가 관련되어 확인을 몇 번 해야 안심이 된다. 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숫자만큼 반복하는 징크스다.
세 번째로 반복 행동이다. 위의 두 가지 사례에서는 더럽다고 생각해서 청소를 하고, 누가 침입한다고 문단속을 하는 일과 같이 행동의 원인이 비교적 명확하다. 그러나 반복 행동에서의 강박적 사고와 그에 따른 행위의 결합은 위와 같은 논리적인 연계가 아닌 주술적 연계가 따른다는 점에서 위의 두 사례와는 차이가 난다.
나의 경우 확인 행동과 반복행동, 수집행동에서 강박증 증상을 보이는 편이다. 어쨌든 강박증 징크스는 자신의 부족함과 열등감이 빚어낸 산물이다. 또한 심약한 인간이 만들어낸 함정일 뿐이다. 이렇게 단정하고 나면 평소 강박관념으로 세상을 향한 넋두리가 적어진다. 하여 시험이나 돈, 색깔, 취업, 습관, 계절 등에 자신이 만들어 놓은 징크스 철학에서 벗어나 행복한 징크스를 찾아낸다. 한데도 크게 장사를 벌여 놓은 내 친구는 국에 밥을 말아먹지 않는다. 왜냐? ‘말아먹기’ 때문이란다. 그뿐이랴. 배를 타는 친구는 절대로 구운 고기를 뒤집어 먹지 않는다. 왜? 배 뒤집어진다고. 프로데뷔 2년차 선수는 반드시 부상이나 부진에 시달린다고 한다. 엄청난 집단적 징크스 증후군이다.
어떻게 보면 징크스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은신처이자 마음의 덫과 같다. 실패 했을 때오는 좌절감을 막고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잠시 피신할 은신처이다. 그렇지만 계속된 실패의 이유를 자기 자신에게 돌리지 않고, 매번, 매년 되풀이해온 징크스라는 놈 때문이라고 무시하다보면 되레 그에 발목을 잡히고 만다. 징크스 때문에 같은 일을 여러 번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버릇은 분명 문제다. 징크스는 치유 불가능한 병마가 아니다. 우리 사는 세상 분명 살맛나는 세상 이야기가 넘쳐난다. 그 속에서 나만의 행복한 징크스를 찾는다면 그게 합당한 처방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