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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선수, 더 이상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세상사는얘기/삶부추기는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1. 8. 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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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선수, 더 이상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김진규

'아, 왜 저렇게 서브를 넣는 거야?
야, 더럽고 치사하다.
화끈하게 스파이크 써브 넣어!'

내가 배구 경기를 볼 때마다 혼자하는 소리다.
배구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상대의 주공격수가 후위로 갔을 때, 그 선수 앞에서 뚝 떨어지는 연타 드롭성 서브를 안다
목적타라 하는 이 서브는 우리나라처럼 공격력이
한 선수에게 집중되는 팀에게는 피하기 힘들다.
그러면 주 공격수가 후위로 갈 때 교체해주면 되지
그렇게도 생각할 거다.
용병 선수를 포함 그런 선수도 많다
그러나 배구 공격 중 가장 무서운 공격 중 하나가
백 어택, 후위 공격이다.
아무리 강력한 스파이크라도 네트 앞에서 때리는
공격은 시간과 높이만 잘 맞추면 블로킹으로 상당히 막아낸다. 그러나, 후위 공격은 높이, 시간, 방향 등을 맞추기 어려워 블로킹 수비가 참 어렵다.
이 후위 공격을 제대로 하고, 항상 상대 팀의 수비에 부담을 주려면 주 공격수는 목적타를 감수하면서 수비를 잘 해야 한다.
이런 수 싸움을 보는 게 배구 관전의 포인트이기도 하다.
그러나 스포츠 의학의 관점에서는 이때 집중적으로 무릎 관절이 많이 구부러지며, 반월상 연골 파열 등의 부상 위험이 커지기에 배구 팬이자 스포츠 닥터인 나는 응원하는 선수의 수비 동작 때 가슴을 조아리게 된다.

그녀를 처음 진료실에서 본건 15년전 18세의 나이, 이제 막 고교를 졸업한 신인 선수 연봉 5천만원의 새내기였는데, 이미 스타가 된 이 친구는 점프, 착지를 할 때마다 아파서 뛰기 힘들 정도였다.
약도 처방해주고, 강력한 소견서도 써주어 휴식을
취하게 조치를 하였고, 중대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게 재활 치료를 최소 6주간 하기를 권장하였다.
그런데, 며칠 후 텔레비전을 보니 소리를 질러가며 멀쩡하게 뛰는 게 아닌가?
그것도 그냥 뛰는 게 아니라 그 선수 하나 때문에
인기도 없던 여자 배구가 인기 스포츠로 올라가는 걸 느껴질 정도였다.

김연경 선수!

매 시즌마다 최소 두세번은 병원을 찾는 그녀는
내게는 응원하며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환자였다.
많은 사람이 화려한 스파이크만으로 김연경 선수를 기억하겠지만, 그녀는 공격수 중 가장 수비를 잘하는 선수이자 백어택이 가장 무서운 선수이기도 하다.
그리고 힘든 티, 아픈 티를 한번도 내지 않고 계속 코트에서 소리를 질러대는 사기꾼(선수들의
사기를 북돋는)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빈틈이 없어 상대 팀 선수도 두렵고 존경하는 선수이다.

2년 후인 2008년 호화군단 소속 팀이 거의 전승으로 시즌을 마칠 무렵 나는 부상 중이었던 김연경 선수가 일찍 진료를 보고 쉬었으면 기대하였으나 마지막 경기까지 주 공격수로
시즌을 다 소화하였다.
그후 이어지는 국가대표 소집으로 강행군을 소화하기 어려웠지만, 태극마크 달고 뛰는 경기는 또 다른 힘이 날테니 응원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며칠 후 진료실에 그녀가 나타났다.
MRI를 보니 우측 무릎 관절 안 내측 반월상 연골이 파열되어 무릎 안에 조그만 덩어리가 걸렸다. 그런 상태는 이미 시즌 중에도 발생했던터라 더 악화된 건 아니었다.
잠작컨대 그 큰 키에 수비 동작 때마다 무릎을 급격히 구부리니 견디기 힘들었을 거다.
수술은 불가피했다.
문제는 그 시기, 구단은 국가대표로서의 경기를ㅂ 포기하고 당장 수술을 받기를 원했고, 선수는 자기가 역할을 해주어야 대한민국이 본선 진출을 한다는 확고한 책임감에 불 탔다.

‘너 말고 훌륭한 공격수가 많아 너는 부상이 심하니 치료를 우선으로 생각해야 해’

선수를 보호하고자 하는 주변의 말에도 김연경 선수의 답은 단순했고 단호했다.
‘아 식빵~, 뛰어야지요. 저는 선수인데...,
대한민국 선수란 말이예요 선수는 경기를 뛰어야해요. 아픈 건 언제나 그랬단 말이예요’

난 아직도 이 선수의 그 단순한 말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녀는 단순하고 무식하지 않다.
누구보다 똑똑하고 두뇌 회전이 빠르다.
그리고 누구보다 프로답다.
그래서 그렇게 머리를 굴리게 단단히 훈련이 되었다.

'No problem, Just do it
‘문제 없어 하는 거야!’

결국 그녀는 혼자말로 들리지 않게 ‘식빵 식빵’을
외치며 닭똥 같은 눈물을 조용히 흘리고는 수술 동의서에 싸인을 하였다.
정말 아무 소리를 내지 않는 조용한 눈물이었다.
그후로 난 그녀가 눈물을 보이거나 누구 탓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녀가 몇일 입원한 덕에 대한민국 모든 여자 배구
선수을 다 본 셈이다. 그후로 난 여자배구의 팬이
되었다

이번 올림픽 대표팀은 최근 10년 중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았고, 예선 통과가 어렵다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주공격수 김연경 선수가 팀의 최고연장자가 되어 체력적인 한계가 걱정되었고, 그녀와 함께 원투 펀치를 맡아야 할 공격수가 이런저런 이유로 전력에서 이탈하기도 했다. 최상의 선수진을 다 동원해도 대한민국은 세계 랭킹 14위다.
4위 터키, 5위 일본, 7위 도미니카 공화국을 상대로 승리를 바라는 건 무리였다.
김연경 선수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커다란 감동을 보았다.
믿기지 않는 투혼이다.
김연경, 박정아, 김희진, 김수지, 양효진, 이소영,
염혜선, 정지윤, 박은진….
이제 4강이다!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길 응원하겠다.
더 이상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가 될 지도 모르는 김연경 선수를 위해 박수를 아끼지 않겠다.

|페친 김진규 님 글 담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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