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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인정하지 못할까?

박종국에세이/박종국칼럼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1. 8. 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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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인정하지 못할까?

박종국(다원장르작가)

풀꽃은 하나의 꽃무리를 고집하지 않는다. 수많은 꽃이 일제히 어울려 핀다. 자연의 존재는 서로 치받지 않는다. 그래서 풀꽃 하나하나가 도드라져 보이고, 하찮은 앉은뱅이 꽃도 제 자리매김을 한다.

다양성은 다 다름을 존중한 결과다. 다 다른 빛깔을 인정하면 삶이 즐거워진다. 때문에 현안 문제를 두고 당리당략에만 목을 매는 정치는 너무 천박하다. 특히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자천타천 후보자가 설쳐대는 작태를 안타깝다 못해 어쭙잖다. 마치 제가 대통령에 당선된양 거덜먹거린다. 대다수의 국민은 그에 관심없다. 어거지도 이같은 어거지는 없다.

왜 우리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인정하지 못하는 걸까. 세상을 훑어보는 시각은 다양하게 열려야한다. 문제 사단을 하나로 챙기는 극단주의는 위험하다.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쭉쭉 뻗은 교통사정에 비해 우리의 토론 문화는 너무나 극단에 치우쳤다. 되레 못난 구태를 답습한다.

이 같은 극단주의는 여러 영역에서 세계 최고기록을 수립했다. 대학입시의 치열함도 세계 최고요, 교통사고도, 유행도 세계 최고다. 인터넷이건 스마트폰이건 뭐든 빠져들었다 하면 역시 세계 최고다. 저질 정치문화도 세계최고를 점유한 지 오래다. 실로 낯뜨겁다.

이렇듯 극단주의가 다른 쪽으로 쏠리면 끔찍한 나락이 또 없다. 세계 최고에서 세계 최저로 곤두박질치는 속도도 가장 빠르다. 오직 최고만을 우선하는 병폐다. 그런 낭패감을 겪는데도 운동 경기를 그냥 지켜보지 못한다. 극단주의 망령이 경기장 내를 어슬렁거린다.

각종 경기나 여러 국제 경기를 보아도 오직 금메달만을, 승리만을 위해 매달린다. 이는 한국인 특유의 동질성과 밀집성으로 결집된다. 군사주의, 성장일변도의 경제논리가 우리 사회전반에 팽배하여 극단에 목을 매는 저급성에 길들여진 결과다. 이는 선거판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당리당략만 따질 뿐 국민도, 상대후보는 보이지 않는다.

정치가 그렇고, 경제도 만만찮다. 교육도 일등이라면 죄다 목숨을 건다. 결국 극단주의는 집단주의와 야합해서 철옹성을 쌓는다. 극단주의 논거 앞에 한국인, 그 누구도 ‘나는 아니다.’고 자신할 수 없다. 참 슬픈 대한민국이다.

한낱 풀꽃도 서로의 존재의미를 존중하며 시새워 핀다. 그런데 왜 우리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인정하지 못하는 걸까?

|박종국에세이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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