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냉정함이 필요하다
박종국
바쁜 세상이다. 그만큼 부대낌도 많다. 근무지까지 출퇴근 하는 길은 채 20분 거리다. 읍내를 가로질러 언덕배기 하나 넘으면 들판이 펼쳐지고, 산허리를 끼고 돌아 저수지를 뒤로하면 야트막한 고개를 넘는다. 워낙 꼬불꼬불한 길이라 차량마다 거북이걸음이다. 출근시간 상대편 차가 줄을 잇기에 앞지르기는 어림없다. 그래서 세월아, 내월아 쉬엄쉬엄 운전한다. 때론 오금이 저리기도 한다. 초보운전자를 만나는 날은 길게 열대 가량은 줄줄이 사탕이 된다. 덕분에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조망에 계절변화를 맘껏 실감한다.
그저께 그 비좁은 찻길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사단은 반대편 차로를 달리는 차량에서 불거졌다. 진동마을에 이르렀을 즈음이면 길이 병목현상을 빚어 오가는 차량은 암묵적으로 양보를 해야 한다. 수년째 그 길을 오갔어도 아직 자그만 마찰하나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저께 퇴근길에는 진동마을 초입부터 차가 밀렸다. ‘사고가 났나? 왜 이리 꼼짝도 하지 않지?’하며 처연하게 기다렸다. 그런데, 차량 앞쪽에서 된소리가 났다. 누구하나는 족히 까무러칠 할 만큼 고함소리가 컸다.
다들, 뭔 일인가 싶어 차에서 내려 사단이 벌어진 곳으로 모여들었다. 가보니 승용차와 시내버스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쥐락펴락했다. 상대편 더러 먼저 차를 빼라는 닦달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기가 팽팽했다. 쉽사리 풀리지 않을 일이었다. 몇몇 사람이 뜯어말려도 소용없었다. 되레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는 식으로 따져들었다.
그렇게 십여 분이 흘렀다. 더는 떼어놓으려는 사람이 없었다. 서슬이 퍼런 두 사람을 감당할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잠시 후 상황은 전혀 딴판이었다. 양방향에서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나타났던 거다. 자기 식으로 기고만장했던 두 운전자, 완전히 꼬리를 내리고 서둘러 차를 빼려 했다. 하지만 오도 가도 못하는 차량, 결국은 경찰관의 개입으로 일단락됐다. 멀끔한 사내가 엉뚱한 짓을 해서 괜히 퇴근길 사람만 옥죄었다. 이럴 땐 ‘교통혼잡유발죄’를 적용하여 처벌해야 하지 않은가?
때로는 냉정해져야 한다. 이거저거 생각하다 포기하지도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니는 게 얼마나 많은가?인간관계도 그렇다. 아닌 사람을 억지로 내 인생에 넣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흠집만 내는 사람이 많다. 한 번쯤 생각해 보라. 과감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여 쓸데없는 잔정에 끌려 다니는 상황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좋은 사람에게 잘해주며 살아도 짧은 세월이다. 아닌 건 아니다. 과감한 결단력이 필요하다. 주변을 둘러보라. 참 괜찮은 사람이 많다. 아껴주고, 사랑해 주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무지랭이장아찌 속아지를 가진 그들, 지금은 느긋하게 운전하고 다닐까? 괜한 시비 말고 마음하나 똑바로 썼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박종국에세이칼럼 202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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