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을 코앞에 두었다. 사오개월 말미가 주어졌으나 나는 아직 후보를 선택할 생각이 없다. 내 주권을 맡길만한 후보가 없다는 게 그 이유다. 그래서 공식선거 마지막 날까지 빤히 지켜볼 참이다.
어느 때보다 지금 대선 열기는 뜨겁다. 그만큼 양대정당 나팔수는 요란하다. 그뿐이랴. 제각각 허겁 대며 낯짝 들이밀기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권자는 관심없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 냉소적이다. 이는 후보자 개개인이 젯밥에만 관심 두고, 국민의 고달픈 삶에는 진정성을 보이지 않은 까닭이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하나같이 공약(空約)만 남발한다. 게다가 상대방을 폄하하고, 식상하게 까발리기에만 전념한다는 듯 카더라통신이 남발되었다. 제발이지 떳떳하게 정책 대결하는 후보자를 만나고 싶다. 구태를 벗고 참신한 대선후보자를 뽑겠다는 출사표가 무색하다. 얼마나 국민을 몰짝하게 봤으면 그러고도 표 달라고 손 내밀까?
어제 저녁 무렵, 읍사거리에서 그를 만났다. 순간, 찜찜했다. 그는 평소에 쥐 죽은 듯이 지내다가도 선거 때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패기에 찬다. 옷차림부터 다르다. 때깔 좋은 양복보다 점퍼 차림이다. 구두도 벗었다. 말씨나 걸음걸이마저도 다르다. 어떤 힘이 그를 이처럼 살아나게 했을까. 고난도의 퍼즐문제를 풀듯 그 속내를 가늠하기 어렵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완장’ 덕분이 아닐까. 나긋나긋한 그 품새로 보아 확실하다. 그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선도부와 학도호국단의 완장을 차고 거만했었다. 그때나 지금, 완장은 그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해서 칼자루를 쥐어주면 썩은 동앗줄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그것에만 관심 둘 뿐이다. 그런 부류가 이번 대선에도 줄을 섰다.
한참을 얘기하던 그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명함 한 장 권넸다. 가칭 ○○○선거대책위원회 □□지역본부장이란다. 그 후보는 이미 내 마음 속에서 지웠던 인간이다. 다들 자기 후보에게만 힘 모아달라고 애걸하는데, 대체 누구를 밀어줘야하나?지역 국회의원, 지자체의원 선거 때도 그랬지만, 하루에도 몇 장씩 원치 않은데도 쥐어지는 명함을 들여다보면 입맛이 쓰렸다. 이번에도 그 꼴인가. 대체 누구를 찍어야하나?
인터넷 사이트도 군불을 지펴놓은 듯 뜨겁다. 네티즌의 관심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지만 주권을 맡길만한 대표가 없어 그저 막막하다. 두 눈 부릅뜨고 후보자의 면면을 훑어봐야 하는데 그마저도 심드렁하다. 하릴없는 일에 신경 쓰기 귀찮다. 이는 필시 나 혼자만의 고민일까. 현실과 동떨어진 대선 후보자의 정책대안이 공약(公約)이 아닌 공약(空約)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지금의 선거 양태는 분명 진흙탕이다. 마치 사투를 벌이는 듯 막말을 내뱉는 후보자를 온당하게 평가하고, 치우침 없이 의연하게 대처하는 유권자는 얼마나 될까. 이번 선거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지연과 학연, 혈연,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않을까. 쉽지 않을 게다. 그것을 타파하지 않는 한 우리의 민주주의 맹아는 또다시 부실한 싹을 틔울 게 불 보듯 빤하다.
어쨌거나 그들 중 한 사람은 선량(?)이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된다. 그 엉터리 같은 밑그림을 그리고 나니 대한민국의 미래가 너무 암울하다. 그래도 투표는 꼭 해야겠다고 마음을 푼다.
"정치란 덜 나쁜 놈을 골라 뽑는 과정이다. 그 놈이 그 놈이라고 투표를 포기한다면 제일 나쁜 놈이 다해먹는다." -함석헌
|박종국 다원장르작가 2021.11.09.
* 막상 이 글을 써놓고보니 지금의 대선 자체가 개탄스럽다. 이 얼마나 국민을 몰짝하게 보고 덤벼드는 허튼수작이냐?하는 짓을 보면 마루밑 개가 들어도 웃겼다. 각 정당 선거대책위원회는 후보자의 품격을 진작하라!낯짝 부끄럽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