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쉽고도 어려운 일
박종국
4년전 유월, 급작스럽게 발병하여 한달여 병원신세를 졌다. 워낙 경황없이 닥친 일이라 정신이 혼미했다. 병명은 급성바이러스 침입에 의한 '농흉'이었다. 급격하게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방어능력을 잃고만 거다. 중환자실에 실려갔을 때만해도 생사는 반반이었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눈앞에 펼쳐진 중환자실에서의 그 난감함이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저 막막했다.
병원치레 달포 가량 지났을 때 치유의 변곡점을 만났다. 혈액검사 결과 산소농도가 안심할만한다는 진단으로, 분당 산소투여량을 2ml로 낮추게 되었다. 이는 무얼 말하는가?머잖아 산소마스크를 떼어도 자력으로 호흡한다는 증거다. 그 순간부터 내 삶은 활력에너지는 끝모르게 분출하기 시작했다. 물론 내 삶의 터닝포인트도 그날 변곡점을 찍었다.
병원생활, 훌륭한 의사의 처방도 필요하고, 유용한 약제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보다 살아야겠다는 자기의지와 매사 긍정적인 삶의 에너지가 먼저다. 나의 경우는 병원을 잘 만난 덕분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예후를 겪으면서 생각해보니 툴툴 병상을 떨쳐내겠다는 자기의지가 더 컸다. 병상 동료를 보면 그러한 생각이 확연해진다. 조그만 일 하나도 긍정마인드로 생활하는 사람은 빠르게 쾌차했다.
어렵사리 나쁜 병마를 이겨내고 퇴원하던 날 주치의 선생님이 꼭꼭 당부했다. 앞으로 술담배를 끊고 3년만 예후관리 잘 하시라고, 그러면 더는 병원 안 와도 된다고. 정말이지 간곡하게 설명해주었다. 몸 건강을 회복하는데 그만한 처방전이 없다고 몇 번을 거듭 강조했다. 그때가 2018년 10월 17일이었다.
그런 연유로 일체 술담배를 끊고 산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당장에 몸은 고통스러워도 술담배를 마다하는 일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술자리는 쉼없이 이어졌다. 원래 나는 돈 복은 없어도 술 복은 최고였다. 하나 술자리는 참석해도 단 한 잔도 입에 대지 않고 맹물로 대신했다. 담배도 마찬가지였다. 참으로 인내력을 요하는 사투가 시작됐다.
그렇게 4년여 지금까지 한 모금의 술도, 한 개비의 담배도 입에 대지 않았다. 지독한 자기통제를 계속하는 중이다. 숫제 결사항전의 태세다. 그런 태도를 견지했기에 겉보기에는 멀쩡하게 쾌유했다. 만족한다. 모두의 응원덕분이다.
하지만 음주금연의 뒤끝이 좋은 일은 아니다. 단적으로 그 좋아하는 기호를 잃어버렸다. 그러니 자연 술자리도 멀어지게 되고, 하나둘 술친구와의 연락도 끊겼다. 설령 그 자리 동석한다고해도 찬물만 홀짝홀짝 들이키는 투명인간이 앉을 자리는 없었다. 시계바늘처럼 퇴근해서 좋으나, 꼬박꼬박 끼니를 챙기는 삼식이는 그다지 탐탁치 않다.
간간히 친구의 부름을 받으나 내가 먼저 사양한다. 이제는 2차 3차 술자리 지키는 일이 버겁다. 그런 내 속사정을 술친구는 알까? 그 좋아하는 술을 단박에 끊고 살아야하는 애통함을 십분 이해할까?엊그제 저녁에도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애써 외면하고 산책하러 나갔다. 그래서 지금 내 건강비결은 부단한 독서와, 치열한 글쓰기, 그리고 걷기다.
하루 빨리 건강을 회복해야겠다. 쉽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박종국에세이칼럼 202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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