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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인 세대

박종국에세이/박종국칼럼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2. 1.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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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인 세대

박 종 국

남자 나이 오륙십, 무던히 앞만 보고 아들딸 건사하느라 죽어라 일만하고 살았던 세대. 그러나, 이제 후배에 치여 퇴출에 임박한 나이. 온갖 평지풍파를 다 겪어냈건만, 급변하는 정보화에 떠밀려 그마저도 편승에 녹록치 않다. 지천명, 정말이지 끼인 세대다.

요즘 초등학생만 해도 지들 의사소통은 SNS로 다 해결한다. 채 몇 분 소요하지 않고 하고자 하는 바를 이뤄낸다. 발빠른 정보화의 덕을 톡톡히 누리고 산다. 그에 비하여 매달 갖는 내 또래모임은 문자메시지 하나다. 그것도 태반은 반응이 없다. 젊은이 같으면 카톡으로 실시간 참석 여부를 확인함에도 지천명은 아직도 전화가 빠르다. 어제도 그랬다. 직장내 젊은사람은 카카오벵킹으로 단돈 몇 만원을 장난하듯 이체하는데, 난 그마저도 원만치 못했다(결국 아들이 대신 입금처리해줬다).

다행스럽게도 인터넷이나 SNS 등 정보화시대에 순응(?)한 덕분에 나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페이스북, 블로그 등 정보화기기 운용에 재바르다. 한때 블로그가 대세를 이루더만 이번에는 트위터 페이스북인가 하는 사람이라면 영락없는 지천명 세대다. 아직도 전화가 편한 아날로그 세대다.

또래를 만나 보면 설핏 푸념타령이다. 살면서 지금까지 부모의 뜻을 거스러지 않고 효도가 자식된 도리라고 생각하고, 또한 그렇게 살았다. 그렇지만, 이십대 최첨단 정보화세대로 성장한 아들딸은 부모에게 애틋한 정을 내보이기보다는 쉰(?)세대로 퇴박 놓기가 일쑤란다.

모처럼 가족간에 모여 앉아도 아들딸은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고, 인터넷 바다에 풍덩 빠져산다. 그러니 얼굴 맞대고 대화할 겨를이 없다. 그나마 공부하느라 멀리 떠난 아이에게 전화라도 할양이면 시대 뒤떨어진 부모라 싫어한다. 왜냐? 그들은 이미 전화 통화에서 멀어졌다. 때맞취 부모가 하는 살가운 전화가 귀찮다.

지천명은 직장에서도 딱하다. 끼인 세대이기 때문이다. 상사를 지극 충성으로 모셔도 후배는 시큰둥하다. 업무처리에 꿈 뜨는 탓이다. 젊은 세대야 순간순간 어떠한 업무가 떨어져도 능수능란하게 해결한다. 그러나 끼인 세대는 그렇지 못하다. 날마다 적응되지 않은 게 한둘 아니다. 바이어를 만나도 통역없이 혼자서 다 해결해내는 젊은 세대를 보면 지천명은 그만 기가 죽는다. 이제는 깡심으로 죽어라 일만 한다고 인정받는 세상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지천명 아날로그 세대라지만 현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맨땅에 헤딩을 해도 디지털 세대로 과감하게 편승해야 한다. 노력해도 안 된다는 건 무책임한 자기변명이다. 애써 노력해서 이루지 못하는 일은 없다. 첨단기기에 주눅들 까닭이 없다. 거듭해서 부대끼다 보면 어느새 근접하게 된다. 자식 놈 전화 한 번 받는 걸 귀찮아 한다면 문자로, 트위터로, 페이스북으로 대항하라. 그게 뭐라고. 기를 쓰고 매달리면 단박에 해결난다.

하지만 기막히게 끼인 세대, 지천명의 나잇살은 인정머리 없는 정보기기보다 인간적인 살가움이 먼저다. 뻔히 동승해야 함에도 디지털 문화가 아닌 아날로그에 만족한다. 인간적인 정에 더 호소하고 싶은 거다. 서로 얼굴 맞대고 정담을 나누고, 사람 사는 향기를 나눴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나저나 사람의 존재감보다 문명이기가 우선 대접받는 세상에서 지천명은 기가 막힌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박종국에세이칼럼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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