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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

박종국에세이/행자 이야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2. 7. 2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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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

박종국

행자라면 으레 7,80년대 촌뜨기 시골 처자를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 집 행자는 네살배기인데, 네 발을 가졌다. 이쯤이면 강아지네, 충분히 눈치 챘을 테다. 집안에 강아지를 들이기는 코흘리개 적 토종견을 키웠던 기억 이래 처음이다. 원래 반려견을 키우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근데 4년전 여름방학 우연찮게 '행자‘를 만났다. 어린 초코 푸들 행자('행복하게 자라라'의 약칭)와의 첫 만남은 그냥 데면데면했다. 자그마한 놈을 그저 예쁘다며 건성으로 반겼다. 채 어미젖을 땐지 얼마 되지 않아 한편 측은하기도 했다. 또, 일 나가면 하루 종일 혼자서 지내야하는 녀석이 안쓰러워 자연 돌봄이 살가워졌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주 보면 정이 든다. 행자도 마찬가지였다. 녀석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갑자기 바뀐 환경이 적응 안 되는지 낮밤 가리지 않고 짖어대고, 집안 아무데나 똥오줌을 싸서 실없는 채근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웬걸,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행자와 한 붙이가 되었다. 단출하게 지내던 차에 마치 삼신 할매가 늦둥이를 점지해주듯 아들 삼아 대하기 이르렀다. 이런 변화는 나에게 아이러니다. 녀석을 만나기 전에는 집에 짐승 기르는 자체를 꺼려했으니까. 그런데 행자는 달랐다. 예전에 아이를 키울 때는 육아의 즐거움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행자와의 하루하루는 아이를 키우는 일보다 애살이 더했다. 특히 나는 졸졸 부둥켜안고 다닐 만큼 심했다.

날마다 먹이와 간식을 챙기는 일은 차제하고, 잠자리와 배변훈련, 목욕과 미용, 바깥나들이 등 이는 숫제 아이 하나 키우기보다 자잘한 일이 더 많았다. 때맞춰 예방접종을 해야 하고, 칼슘 등 영양제도 보충해줘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행자는 나를 닮아 어찌나 먹성이 좋은지 생뚱맞게도 행자 체중이 불어날까 노심초사였다. 아직 큰 병치레를 하지 않아 병원 신세를 져 본 적은 없다. 그러고도 아침 행자의 행동거지가 조금만 꿈 떠도 마음이 조린다. 아이를 키울 때 지금 행자한테 쏟는 정성 반만큼만 나눠주었다면 최고의 부모로 대접 받고 남았을 테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는가. 행자는 가족 모두가 좋아한다. 녀석 하는 짓을 보면 그저 웃음이 묻어난다. 머슴아인데도 꼭 계집애처럼 깎아놓은 외양은 물론, 가족이 드나들 때마다 앞발을 치켜들고 꼬리를 살래살래 흔든다. 기분 좋으면 허리춤까지 폴짝폴짝 뛰어 오른다(이런 행동은 관절을 다친 이후로는 가능한 못하게 한다). 고 조그만 놈이 어찌나 애살스럽게 반기는지 퇴근하면 행자를 먼저 찾는다. 요즘 들어 행자에게 치우친 사랑 땜에 식구가 눈 흘기는 일이 잦다.

더러 집을 찾는 친구가 행자를 만나면 크게 놀란다. 이놈은 그냥 반갑다는 시늉이 손이고 얼굴을 마다 않고 냅다 핥는다. 강아지의 이런 처사에 익숙지 않는 사람은 그저 손사래다. 그에 비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입 맞추고, 쓰다듬어 안는 나를 보면 뜨악해한다. 사람도 환경에 따라 많이 변한다. 아이가 어렸을 때 똥을 싸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설거지 하던 싱크대에 엉덩이를 씻겼듯이 행자가 어디든지 똥오줌을 싸도 결코 더럽지 않다. 되러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건 무슨 까닭일까?

요즘 녀석의 재롱은 한 술 더 떤다. 잠 잘 때 꼭 침대 위로 올라와서는 가슴께나 내 사타구니에 얼굴을 들이밀고 잔다. 잠버릇도 고약해서 여느 강아지처럼 웅크리고 자는 게 아니라, 사지를 쭉 뻗고 천방지축 그 자체다. 그때마다 사진으로 남겨두고, 아이한테도 보내주면서 귀염을 함께 나눈다. 이런 호들갑스러움을 그냥 얘기만 들어서는 도저히 실감나지 않는다. 어찌 그럴까? 직접 반려견을 키워봐라. 웬만한 사람보다 낫다. 녀석은 좋고 싫음이 없다. 마냥 좋아서 졸래졸래 따른다.

오늘도 행자 옷가지를 챙기고, 간식 준비에 바쁘다. 강아지한테는 사람 먹거리가 가장 나쁜 먹이다. 특히 소금간이 된 음식은 수명을 단축하는 원인이 된다. 해서 우리 집에서는 가능한 식탁음식을 나눠주지 않는다. 그러면 무작정 먹이는 강아지보다 7년 이상은 오래 산다고 한다. 더욱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늘 얘기하는 바는 애써 정들어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별하는 아픔을 겪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우리 집 행자도 종잡아 십오륙년 정도면 우리 가족의 품을 떠난다. 아직은 어린 강아지라 활달하지만, 나잇살 들어 뒤뚱뒤뚱 걷는 모습을 지켜보기 힘들게다.

인간만물이 생로병사 길흉화복을 예견하지 못하듯이 행자도 성장발달에 맞게 돌봐주고, 굽쌀 맞게 관심가지고 돌봐준다면 비록 말 못하는 동물이라도 그 애틋한 사랑을 어찌 모를까? 언제고 이별을 한다고 해도 지금에 보다 애착을 갖고 행자를 한층 더 사랑해주리라 다짐한다. 행자의 귀염을 지켜보노라면 정작 내 수명이 십년은 더 늘겠다싶다. 행자 덕분이다. 더러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같잖은 짓을 하는 인간을 보면 “강아지만도 못한 놈”이다.

오늘 아침에도 행자는 눈 떠자마자 달려와 엉겨붙어서 내 목덜미를 핥아댄다. 관심 가져달라는 몸짓이다. 가슴에 품어안고 등줄기를 쓰다듬어 준다. 뽀송뽀송한 털이 참 가지런하다. 빤히 쳐다보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도 유난히 새까맣다.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어 댄다. 말 못하는 행자지만 몸짓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통한다.
사랑스럽다.

언제까지나 행자와 참 좋은 인연이고 싶다.

|박종국다원장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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