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를 아는 사랑
박 종 국
마려(磨礪)는 당여백련지금(黨與百鍊之金)이나, 급취자(急就者)는 비수양(非邃養)이며, 시위자(施爲者)는 의사천균지노(宜似千均之弩)이니 경발자(經發者)는 무굉공(無宏功)이니라.
수양은 마땅히 쇠를 백 번이나 단련하듯이 해야 하고, 손쉽게 이룬 일은 수양이 아니다. 실행은 마땅히 무거운 쇠뇌(여러 가지 화살을 한꺼번에 쏘는 활의 한 가지를 뜻함)와 같이 하라. 가볍게 쏘는 자는 큰 공을 이룰 수 없다.
「법구경法句經」의 가르침이다. 수양이란 몸과 마음을 닦아 지식과 인격을 높인다는 말이다. 빨갛게 단 쇠는 가볍다. 그래서 자기를 수양하는 데 무쇠를 백 번이나 단련하듯이 하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자기 마음을 스승으로 삼고, 자기를 잘 닦아 스승으로 삼으면 능히 얻기 어려운 스승을 얻게 된다.
진저한 수양이란 얼마나 자기를 버리느냐에 달렸다. 자기 수양에 철저했고, 또 모든 실행을 참으로 무거운 쇠뇌와 같이 한 사람으로 우리는 페스탈로치를 든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묘비명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혔다.
"1746년 1월 22일 취리히에서 태어나 1827년 2월 17일 부르크에서 숨진 하인리히 페스탈로치 여기에 잠들다. 노이호프에서 가난한 자의 구조자, 리인하르트와 게르트루트에서는 인민에게 직접 가르친 사람, 슈탄스에서는 고아의 아버지, 부르크돌프와 뮌헨 부후제에서는 국민 학교의 창시자. 이벨돈에서는 인류의 교육자, 인민! 크리스트교! 시민! 모든 것을 남을 위해서 바치고,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그 이름에 은혜가 있기를! 1846년 감사하여 마지않는 아로가우주(州)."
감히 페스탈로치의 삶을 따를 수는 없겠지만, 자기 자신을 갈고 닦기에 냉엄한다면 '미꾸라지 천년에 용 된다'는 우리의 속담이 헛되지 않을 거다. 요즘 하루가 다르게 새내기 가수나 쏟아져 나오고, 아이가 좋아하는 연예인도 줄을 잇는다. 그러나 그들은 불과 한두 달 반짝하다가 우리의 기억에서 쉽게 사라져 버리고 만다. 자기 수양이 덜 되었기 때문이다. 큰 그릇은 쉬 빚어지지 않는다.
염치를 알고, 염치의 깊이를 헤아릴 줄 알아야한다. 유난히 고상하기를 원하고, 남보다 명예를 더 높이려고 아득바득대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다. 누구보다 뛰어나고 싶고, 보다 두드러지고 싶은 게 인간의 그릇된 욕망 중의 하나다. 제 스스로의 그릇을 곱게 부시지 못하면서 그저 남보다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심보는 하찮은 욕심이다.
사랑하는 일도 자기 수양을 쇠뇌와 같아야한다. 쉬 달궈진 냄비가 빨리 식어버리듯이 '개밥에 도토리'가 되거나 '날 샌 올빼미 신세'로, '끈 떨어진 뒤웅박'이 되어서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자기에게 맡겨진 삶은 어떠한 경우에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늘 자기의 부족함을 깨우치고, 자기를 낮추며, 참을 인(忍)자를 마음에 새겨야한다. 이해와 배려의 폭을 넓혀가며 사는 방편도 마찬가지다.
산이 높고 험준한 곳에는 나무가 없듯이 물살이 세고 급한 곳에는 고기가 없다. 사람 사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가장 인간답게 사는 방법은 거창한 몸부림이 아니다. 늘 마주 대하는 사람의 얼굴이 보고, 또 보아도 새롭게 다가선다면, 그것만으로도 자기 수양의 올바른 경지에 다다른다. 그래서 '어떻게 사는 게 옳은가'를 깨우치는 데 전 생애를 필요로 한다.
자기 자신을 존중함과 같이 남을 존중하고, 남이 자기 자신에게 해 주기를 원하는 바로 그것을 남에게 해 준다면, 그는 진정한 사랑을 아는 사람이다. 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한결같다. 사랑은 모두를 다 이룬다. 사랑 안에서는 모든가 자연스레 융화된다. 수십 갈래로 헝클어졌던 그 어떠한 감정도 다만 하나로 이루어내는 게 사랑이다.
사랑의 힘은 놀랍다. 그러나 사랑은 조그만 일 하나도 함께 하여야 빛이 난다. 혼자만의 고집스런 사랑은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할 뿐이다. 아름다운 사랑은 두 사람이 상대를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아야 한다.
「법구경」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되뇌어 본다. 모든 사람이 자기 마음을 도탑게 쌓아서 염치를 아는 사랑으로 몸서리쳤으면 좋겠다. 혼자만의 사랑이 아니라 함께 내달아가는 순정함으로 가득하기를.
염치를 아는 그 사랑에 손 모으겠다.
|박종국에세이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