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벽면서생

박종국에세이/독서칼럼모음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3. 1. 19. 16:14

본문

벽면서생

박종국

벽면서생은 세상일에 어두운 선비를 이르는 말이고, 딸깍발이는 신이 없어 맑은 날에도 나막신을 신는다는 뜻으로, 가난한 선비의 별칭이다. 그러니 맹탕으로 늘푼수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둘다 허구헌날 책만 보는 바보인 나를 지칭하기에 딱 좋다.

나는 지난 40년 동안 일체 다른 일에 기웃대지 않고, 오직 한 우물을 팠다. 그렇다고 크게 이뤄놓은 영광도 없다. 다만 꼬장꼬장하게 살지 않았다는 게 자랑이다. 근데도 모임자리에만 가면 화들짝 놀랜다. 솔솔찮은 씀씀이에 설핏 주눅이 든다. 육십줄이면 모임턱 한 자리쯤은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대개 그게 쉬워 보이는데도.

사회적 지위나 명예도 말석이다. 돈이 권력인 세상에서 초등학교 교감은 변변치 못하다. 개중에는 부부교사로 일찌감치 제테크에 눈을 떠 떵떵거리며 사는 커풀도 많다. 하지만, 손톱만큼도 부럽지 않다. 물욕에 겨워사는 게 행복한 모습은 아니다. 아득바득 그렇게 살아봤자 그다지 명예로운 꼬락서는 못된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

더러 얼 없는 졸부의 만행에 눈살 지푸려진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아도 자기가 득한 정당한 부는 존중받는다. 그럼에도 시도때도 없이 삿된 제 속살을 보인다. 부자로 살아도 결코 천박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더더구나 옹졸함은 궁벽하게 사느니보다 못하다. 세상은 떠벌리고 사는 이에게 후하지 않다. 지고지순한 노력으로 이뤄낸 부(富)는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부정한 대가로 취한 부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사촌이 잘 되면 배가 아프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바로 의좋게 지내는 친구의 성공을 꼴갑게 여긴다는 처사다. 참으로 어쭙잖은 일이다. 나서서 크게 축하해주지는 못할망정 제 뿌리는 건 경우가 아니다. 사람의 근본 바탕은 쉬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의 본성은 인간정리의 기본이다.

그런데 충분한 부유를 겸비했어도 소소하게 사는 사람이 많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연봉 2,3억을 받는 사람은 상위 1%도 안 된다. 한데도 그들은 소탈하고, 따사로우며, 사람을 대하는 마음결이 질박하다. 굳이 누구라고 거명하지 않더라도 일면식이 통할 거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가 바로 그들이다. 개 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는 사람이다.

세상을 빈한하게 사는 게 결코 자랑은 아니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멋지게 잘 살아야 한다. 물욕도, 지위도, 명예도, 사랑도 마찬가지다. 육십줄에 베풂의 미덕을 몸소 실천하는 친구, 완숙한 그의 발치를 열심히 좇는 요즘이다. 딸깍발이 인생도 볕들 날 바람하는 게 사치는 아니겠지 싶다. 세상일 늦었다고 깨달았을 때가 가장 빠른 향유의 시간이다.

그때라면 벽면서생도 자리 툴툴 털고 나서도 좋지 않을까. 머잖아 그런 날 애써 맞으리. 오늘 문득 어쭙잖은 대기만성, 그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박종국에세이칼럼

'박종국에세이 > 독서칼럼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아이가 책을 읽지 않을까'  (0) 2023.03.23
느긋한 책읽기  (0) 2023.03.09
위대한 독서습관  (0) 2023.01.13
독서삼도(讀書三到)  (0) 2023.01.06
그 나이에 공부해서 무엇 하랴?  (0) 2022.12.24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