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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때도 없이

세상사는얘기/삶부추기는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3. 6. 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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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때도 없이

박종국

  ‘시도 때도 없다’라는 말, 그 말의 뜻이 지리다. 평소 나는 별다른 취미 없이 산다. 숫제 책만 보고 산다. 딸깍발이다. 그러니 밋밋하게 산다. 육십 평생을 살아도 지위나 명예, 물질적인 부를 쌓는데도 바지런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단 하나 귀가 얇고, 궁둥이가 무거워 어느 모임 자리고 마다하지 않고 분주하게 쏘다녔다. 그 결과, 중병을 앓았고, 지금 일체 술담배를 끊고 산다.

 

두어 달 중환자실과 일인 병실, 일반병실을 전전하다가 호전이 되어 퇴원하는 날 주치의가 말했다.

  “종국 씨, 축하드립니다. 용케도 건강을 되찾아 퇴원합니다. 앞으로 몸조리 잘하시고, 술담배를 일절 끊도록 하세요. 건강도 건강이지만, 사람에게도 술담배는 총량제가 적용되는 겁니다. 종국 씨는 평생 자실 술담배를 이제 다 드셨어요. 명심하세요. 다시 병원에 입원하시면 걸어서 못 나가요.”

  ‘허 참, 이런 낭패가 어딨나?’ 그 좋아하던 술을 끊어야 한다니? 건강이 회복되어 퇴원한다는 기쁨보다, 당장에 술친구(?)를 다 잃게 된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더 컸다. 그러잖아도 병문안 왔던 친구들이 측은하게 누운 나를 위해 한마디씩 거들었다.

  “박 선생, 자리 툴툴 털고 일어나 한잔해야지. 뭐 한다고 이렇게 누웠다. 정말 어울리지 않네. 까짓거 거뜬히 이겨내고 다시 예전처럼 감아 붙이자고. 그게 박 선생답다.”

정말이지 남의 속사정으로 모르고 시도 때도 없이 두주불사를 외치는 친구다. 입원 전 내가 그랬듯이 그들은 아직도 여느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예순의 나잇살을 가졌지만, 전혀 상관 안 하고 오늘도 병나발을 분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나는, 달리는 열차에서 그냥 뛰어내렸다는 심정이다. 기분이 참 묘하다.

  까닭 없이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내 마음을 분탕질하는 친구 때문이다. 벌서 이태 전에 퇴직해서 산천을 주유(周遊)하는 친구라 마치 럭비공 뛰듯 전국을 섭렵하고 다닌다. 오늘은 동해안 묵호 앞바다라고 자랑질이다. 사진을 보니 싱싱한 횟감에다 술 한 상 가득 차렸다. 젓가락 놓인 걸 보니 혼자는 아니었다. 그저 행복하다는 친구의 얼굴을 보니 아직도 컴퓨터 앞에서 결재하는 숫제 9급 공무원(?)인 내 모습에 측은지심이 역력하다.

 

 

마침 또 한 친구가 전화를 했다. 오늘 저녁 마산에서 깜짝만남을 한단다. 신마산 통술집 거리, 예전에 내가 즐겨 찾던 곳이었다. 안주 한 상을 주문하면 육해공군이 기다렸다는 듯이 쫙 진을 펼쳤다. 그러면 소맥 대폿잔으로 한꺼번에 일갈했다. 아, 그 장엄한 승전보를 다시는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참석을 마다했다. 다들 장비만큼 두주불사하는데, 냉수만 꼴깍꼴깍하고 앉아서 배겨낼 수 없는 탓이다.

  나랏일이 불량하여 경기가 좋지 않은데도 연일 술자리는 겹친다. 그러나 나는, 이제 시도 때도 없는 술자리는 안녕을 고했다. 하여 퇴근하면 아들 앞세우고 조촐하나마 밥자리 마련하고, 아들 술 시중이나 들어야겠다. 아들은 유전적으로 나를 닮지 않아 고작 맥주 두 병이다.

/박종국참살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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